간만의 마당 고양이들, 10월 마지막 주

 

 

2013년, 정말로 꼬장꼬장하고 드러운 한 해이다.

 

대선에 지면서 아무 준비없이 시작한 것도 그렇지만, 결국 그러다보니 우리끼리 니가 문제야, 아니 걔가 더 문제야, 그러면서 싸우고 지지리 볶으면서 1년을 보낸 게 더 드러운 한 해다.

 

어쨌거나 시간은 지난다.

 

나에게도 아주 드러븐 한 해였다.

 

9월 이후, 좀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서 지난 한 해와, 내가 살아온 인생을 성찰과 고찰 속에서 - sic! - 맞아볼까 싶었는데,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속 뒤집어지는 일이, 그것도 연타발로 벌어졌다.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분, 표창원 교수가 휴식차 외국으로 떠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아, 부럽다, 정말 부럽다!

 

누군가를 이렇게 강렬히 부러워해본 것은, 정말로 몇 년만인가 싶다.

 

그래도 나에게는 선택이 없다. 아기 키우고, 잔돈푼이라도 벌어와야 하고, 또 동료들과 하기로 한 것들은 일단은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더도 말고, 딱 열흘만 아무도 안 만나고 쉬고 싶다, 표창원 교수의 외국행을 보면서 그 느낌을 받았다.

 

현재 내는, 그럴 수가 없다.

 

도니도 읍고, 시간도 읍고, 여건도 안된다.

 

그리하여 일요일 오후, 그냥 코리안 시리즈, 두산 대 삼성전, 그 3차전이나 보려고 했다. 난 원래 두산 응원하지는 않지만, 유희관은 응원한다. 오늘은 유희관 선발... 그래, 이거나 보고 일요일 오후를 때우자.

 

된장! 안되는 넘은 뒤로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시구가 박근혜 아닌가?

 

뭐야 이거?

 

그럼 오늘 삼성이 무조건 이기기로 된 날 아냐?

 

두산이 져주든, 삼성이 잘 하든, 아니면 오심이라도 나오든, 삼성이 그냥 이길 거 아냐?

 

일요일 오후의 휴식이 기분 팍 잡치면서, 간만에 익숙한 카메라 들고 고양이 사진이나 찍자, 마당으로 나섰다.

 

 

 

이사 오고, 아니 그보다는 이 녀석들 중성화 수술을 해주고 난 후, 녀석들 사진 찍는 것에 대한 재미를 좀 잃었다.

 

마음이 싸하다 할까, 이렇게 살다, 한 넘씩 떠나고, 그러다 보면 이 일가와 결국 떠나게 되겠지!

 

그런 마음 속의 짠함이 있다.

 

그냥 같이 지내면, 새로 태어난 녀석의 등살에 먼저 있던 녀석들이 떠나가야 하고,

 

그게 아니면 지금처럼, 새로 등장하는 녀석은 없고!

 

마침 바보 삼촌이 간만에 몸단장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요 사진은 강북이다.

 

녀석, 태어났을 때에는 정말 몸이 약해보였고, 이 집으로 이사오던 작년에도 너무 호리호리해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싶었는데!

 

지금은 제일 신나게 빨빨 거리면서 돌아다는 중이다.

 

녀석과 같이 태어난 생협이 딱 작년 요맘 때, 비내리고 처음으로 영하로 내려간 날 죽었다.

 

아, 그 때 정말 슬프게 울었었다.

 

그 옆에서 그 밤을 버텨낸 생협,

 

아직 재밌게 잘 살고 있다!

 

 

바보 삼촌은 그새 가을볕에 잠이 들었다.

 

그 옆에서 물끄러미 바보 삼촌, 촌수상으로는 한 해 먼저 태어난 자기 오빠를 바라 보는 생협.

 

(이 사진에는 약간의 연출이 있다. 어이, 여기 좀 보지 그래, 그렇게 돌아보는 순간, 슛!)

 

 

 

한참 몸단장을 하던 엄마 고양이가 하여간 계속 잠만 자고 있던 자기 아들, 바보 삼촌도 같이 몸단장.

 

녀석과 내가 지낸 시간이 벌써 4년이다.

 

사실 이 마당 고양이 세계는 엄마 고양이 월드이다.

 

 

 

담장 위에 서서 잠시 몸단장하는 강북 걸.

 

녀석은 한 번도 아기를 낳아보지 못했는데, 어쩌다보니 이사오면서 중성화 수술을 해서...

 

동정녀 마리아, 그녀를 사랑하시아... 는 아니고, 개구장이 시절의 소녀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게 되었다.

 

몸집이 너무너무 작다.

 

 

엄마 고양이, 도약질 하는 모습을 우연히 잡았다.

 

이게 참, 잡기가 쉽지 않다. 보통의 표준 렌즈로는 택도 없고,

 

망원을 쓰다 보면 늘 광이 부족해서 셧터 속도를 맞추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고양이들이 연출된 자세로, 이래라 저래라 그럴 수도 없으니, 늘상 그지같은 사진만 나오던.

 

하여간 간만에 엄마 고양이의 생동감 있는 도약이 잡혔다.

 

 

 

 

여기가 원래 텃밭이었다. 감자도 심었고, 가을에는 배추도 심었었다.

 

연이나, 이 녀석들이 여기에 부지런히 똥을 싸대면서 어쩔 수 없이 낙엽으로 땅을 뒤덮고...

 

하여간 그래서 개판 아닌 개판이 되어버렸다.

 

원래는 여기가 밭이었다니까!

 

하여간 간만에 편안하게 수풀에서 쉬고 있는 엄마 고양이를.

 

 

진짜, 간만에 아주 길게 마당 고양이들 사진을 찍어보았다.

 

이게 다 대통령님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렇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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