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5년을 지내기 위하여
(정말로 간만에 스냅샷. 지난 여름 이후, 정확히 말하면 아기 태어난 이후, 스냡샷은 처음인 것 같다. 처음으로 아기를 유모차에태우고 외출을 했다. 날이 추워서, 유모차는 아직 못 태웠었다.)
삶에 대해서 누군들 미리 생각하고 살겠나?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고, 이것저것 계획을 많이 세운다. 물론 계획을 세운 대로 늘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빼곡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런 다음 다시 계획을 수정하는 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움직인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학위를 마치고 돌아올 때, 계획과는 달리 먼저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공직을 그만둘 때, 그 때도 별 계획이 없었다. 많은 계획 사이에,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단절 같은 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생겨난 셈이다.
이번 겨울이 그랬다. 대선 이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 이상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대선에서 박근혜가 이길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니면 어떻게 보낼지, 그런 것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난 겨울, 고양이들 돌보고, 아기와 좌충우돌, 그냥 그렇게 시간이 갔다. 너무 추웠던 겨울,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이렇게 긴 시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정말로 내 삶에서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춥던 겨울이 지나고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봄이 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추운 겨울이 지나기는 했지만, 봄이 되면 박근혜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가 임명한 장관들이 활개를 치게 된다. 그렇다고 봄이 오지 않는 것이 좋은가? 누가 뭐라고 하든, 봄은 돌아오고, 또 우리의 삶은 다시 시작된다.
봄이 되면서 간단한 몇 가지 결정을 내렸다. 아침 경제방송에 참가하기로 해서, 아침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오랫동안의 습관을 버리고 아침 방송을 한다. 별로 보는 사람이 없을 듯 싶은 한 구석에서 진행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는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누군가는 떠들고 있어야 할 듯 싶어서.
새로운 책을 기획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건 없다. 작년까지 마치려고 했으나 미처 끝내지 못한 책들이 몇 권 있다. 올해 안에 농업경제학을 출간할 생각이고, 두 개의 정권에 걸쳐서 마치려고 했던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결국 세 개의 정권에 걸쳐서 12권이 나오게 되었다. 일단 시작한 것들은 마치는 수밖에.
'모피아'로 시작한 공무원 시리즈는 3권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다음 얘기인 교육 마피아는 기본 설정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올해 상반기 내에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게 목표이다. 여기까지는 일단 나오기는 할 것 같은데, 토건족 얘기는 소설로 형상화시킬 수 있을지, 아직은 별로 자신이 없다. 나쁜 놈들은 확실히 나쁜 놈들이기는 한데, 너무 소소한 일상적 얘기에 가까워질 위험이 있다 아직은 잘 판단을 못하겠다.
바보 삼촌을 모티브로 한 동화책은 여전히 구상 중이다. 원래의 계획 대로라면 대선 끝나고 한가한 동안에 기본 내용은 정리한다, 뭐 그런 것이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려놓고 지냈던 지난 겨울이 딱 그 기간이다. 당분간은, 모르겠다. 일단 동화책들이나 좀 더 열심히 읽어보고.
(지난 번 집은 마당이 아주 넓었지만, 새로 이사한 집에는 요만한 텃밭이 뭔가 해볼 수 있는 땅의 전부이다. 앞으로 5년,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려고 한다.)
앞으로 5년,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절, 결국 이명박과 박근혜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어쨌든 이명박 5년을 뒤로 하고, 또 다른 박근혜 5년을 참고 버텨야 할 생각을 하면, 정말로 아찔하다. 꼬질꼬질할 것이 분명한 시절, 나도 그냥 꼬질꼬질하게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시기에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내가 그들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매일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운명, 그것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마음 아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도 한 시대의 선택이고, 이것이 바로 구조인 것을.
홉스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말을 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렇다. 그나마 정정당당하게 게임을 해볼 수 있다면 덜 억울하기라도 할텐데, 지금의 룰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아예, 미안해, 우리는 귀족이야, 이렇게 얘기를 한다면 또 다른 보상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일은 알아서 하자, 그러면서도 결국은 너무 많은 것들이 출생에 의해서 결정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본격적으로 '양반'들이 한국의 지도자로 공고하게 자리를 잡을 5년, 박근혜가 장관이라고 집어든 자들이 대부분 그런 자들 아닌가. 노무현 시대가 좋았던 것 중 제일 큰 것은 상고 출신들에게도 희망이 생겼다는 것 아닌가? 박근혜 시대, 상고생들의 시대는 언감생심, 육사의 시대가 돌아왔다. 그뿐이랴? 땅투기는 기본이고, 온갖 양아치 짓은 전부 하던 사람들이 ‘충일한 안보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관대직에 오르는 시대! 그것이 우리가 보게 될 앞으로 5년의 밑그림이란 말인가!
새로 이사한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아무 것도 없다. 그 위에 뭘 심을지, 아직 생각해둔 것도 별로 없다. 체리와 앵두 한 그루씩을 심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제 봄의 기운이 오르기 시작한다. 앞으로 5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찾아보려고 한다. 시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았던 시대가 찬란하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우리는 늘 가슴이 아팠고, 늘 무엇인가 안타까왔고, 그리고 늘 졌다.
앞으로 5년을 버티기 위해서, 이제 겨우 눈이 녹고 막 맨살이 드러난 작은 텃밭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내 삶의 모습이 저 맨땅과 많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은 또 지날 것이고, 우리는 그 5년을 또 버텨낼 것이다. 이제 새로운 삶을 일구어보려고 한다. 언제고 명랑한 마음을 잃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뭔가 다 잘 되기 때문에 명랑하려고 했던 것인가?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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