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질꼬질한 5년을 버티기 위하여
대선 선거일, 투표 개표방송을 보러 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난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난 개인이고, 민간인이다. 선거 방송 대신, 난 막 100일을 지난 아기와 간만에 놀아주는 삶을 택했다. 100일된 아기 아빠의 올바른 삶, 그게 아내가 나에게 부탁한 유일한 일이었다.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선거에 이기거나 지거나, 일본에 몇 달 갈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섭섭할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선거 전날, 유세 현장에서 이기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유세, 거기를 쫓아다니면서 바람잡이로 뛰었다. 난 최선을 다했고, 20년만에 목이 쉴 만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기기 어렵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봤을 그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나도 봤고,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주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의견을 구했다.
그날 밤에, 나는 일본에 가기로 한 계획을 취소했다.
그냥 한국에 있으면 꼬질꼬질하고, 구질구질하고, 마음도 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렇지만 그냥 그렇게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5년간, 그렇게 꼬질꼬질하게 살아갈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들에게는 꼬질꼬질함이 기다리고 있다. 명예롭기는 어렵다.
나는 그 꼬질꼬질함을 즐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5년간, 얼마나 많이 감옥에 가야할지 모른다. 차라리 정치범이나 사상범처럼, 그렇게 폼나게 감옥에 가는 것도 아니라 횡령이나 치정 같은 잡범으로 몰려서 감옥에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참 꼬질꼬질할 것 같다.
그 꼬질꼬질함을, 사람들과 이 땅에서 같이 버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긴다는 확신? 그런 건 없다. 나도 민간인이다. 명예? 그런 걸 지킬 자신도 없다. 실속? 난 그런 고상한 단어 따위는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과 꼬질꼬질한 삶, 그걸 같이 나누기로 마음을 먹었다. 5년 내, 내가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것에 대한 자신도 없다. 정말로 꼬질꼬질한 사소한 이유로 경찰서를 들락달락하거나, 검사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5년간, 이렇게 꼬질꼬질하게 살게 될 것인가?
나는 그 삶을 같이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난, 원래도 꼬질꼬질한 인간이다.
별도로, 또 하나 마음을 먹었다.
난 5년간 생활비가 쪼들릴 것이 분명하므로, 앞으로 5년간은 츄리닝 입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방송 나갈 일도 없고, 명예로운 자리에 갈 일도 없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공식 자리거나 아니거나, 그냥 츄리닝 입고 다닐 생각이다.
버티기로 마음 먹었으면... 의식주, 먹는 건 줄일 수 없고, 사는 집도 변수가 아니고, 옷값이라도 줄일까 한다.
그래야 비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꼬질꼬질할 우리의 삶, 그것은 츄리닝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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