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백일

 

아기가 태어난지 100일째가 되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별 의미 없는 행사로 사람들 힘 빼는 걸 아주 싫어한다. 거기에 이사 등 복잡한 일들이 겹쳐서, 아기 백일은 따로 하지 않았다. 장모님이 수수떡을 만들어주셔서, 잠시 밥상 하나 차리고 사진 찍은 게 전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아들이라서 특별 대접을 하거나, 정말로 좋은 것들로 치장해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옷도 거칠게 입힐 생각이고, 음식도 특별히 맛있는 것을 구해다가 먹일 생각도 없다. 다들 산다는 유모차, 아직도 안 샀다. 그냥 아가방 같은, 국산으로 살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유식은 내가 직접 만들어서 먹이려고 한다. 그 정도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만큼은, 내가 직접 해주고 싶다.

 

대치동 교육이라는 게 있고, 목동 교육이라는 게 있다. 물론 그 길과는 반대의 길을 갈 거다. 아기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건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옳지 않고, 길게 보면, 자식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리고 꿈을 가지라는 둥, 희망이 뭐냐는 둥, 그런 택도 없는 얘기를 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하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하고, 아이가 글자를 알게 되면 볼 수 있는 동화책을 쓰려고 한다. 아내가 그런다.

 

지 아버지가 쓴 동화책 읽으면서 크면, 아무래도 좋겠지…”

 

내가 나의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글, 그건 내가 상업적인 고려로 쓰는 책이 아닐 것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장사 속으로 쓴 책을 자기 자식에게 읽히려는 부모도 있는가? 어쨌든 이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써보려고 한다. 그건 내가 아기 백일을 맞으면서 생각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아프리카에, 그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아기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부족 하나가 필요하다고맞는 말이다. 아기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학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 그야말로 개수작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공동체는 복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지금 없으니,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느냐고? 진짜로 개수작이다.

 

백일도 안 했지만, 아내는 돌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다. 하긴 그렇다. 그런 게 뭐가 필요하겠나 싶다.

 

교육과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상식 밖의 일이 너무 많다. ‘88만원 세대에서 인질 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정말로 인질 경제학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인질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듯한 트라우마가 남는다. 그런 트라우마를 일부를 다음 세대에게 줄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 제일 불행한 부모는, 자식을 국제중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다. 그 자식이 불행해지기 전에, 부모들이 먼저 불행해진다. 명박이 죽어라고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국제중학교, 그 동기와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아기 백일에 찍은 사진 몇 장을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잠시 들었다. 이것저것, 조금씩 실천해보려고 한다.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뭘 하면 안 되는지, 그런 건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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