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시대

 

많은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이제 세 마리가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다. 그러나 하루에 잠시 시간을 내서 그들을 돌보는 것은,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녀석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다. 그리고 사료와 물 정도 챙겨주고, 가끔 특식 준다고 해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4, 그러나 나에게 생겨난 변화가 작지 않다.

 

제일 큰 건,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매일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명박 시대, 참 어려운 시대였다. 우리는 그가 참 미웠고, 매일매일 그의 친구들을 미워했다. 그리고 돌아서면, 나 자신이 그렇게 무기력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기력한 나 자신을 또한 미워했다. 열 마리 조금 넘는, 내 손을 거쳐간 녀석들과 즐거움과 귀여움 그리고 헤어짐의 아픔을 같이 나누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그 틈 속에 작은 행복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내서 다시 돌아보니, 누가 누굴 돌본 것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그냥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고양이들과 지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더 많은 분노와, 분노급에도 못 들어가는 짜증 같은 것을 내면서, 늘 서러워하거나 안타까워 하면서 명박 시대 5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도 사람인지라, 분노와 무기력증이 생겨나는 것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늘 용기를 내면서, 앞으로 앞으로, 그렇게 기계적인 행동으로만 자신을 위로할 수도 없다. 뭔가 하고 있으면,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니까 분노를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그게 허탈하다는 생각마저도 지울 수는 없다. 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자는 말이 있다. 그 말 그대로, 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 미처 버리게 된다. 명박 시대, 감정에 충실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시기였다.

 

그렇다고 옆으로, 한 발만 더 돌아나가면 이제는 일탈의 삐딱선을 타게 된다. 미치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 소리 안 들을 방법이 없다. 돌봄은 그 사이 어디엔가 있다. 세상에서 아주 눈을 돌리는 일탈의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충실이라는 이름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모두 증오로 돌려버리는 것도 아닌, 그 양 극단 사이에 돌봄이 있다. 이게 누구에게나 유효한 해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에게는 그랬다.

 

왜 고양이를 돌보냐는 사람도 있고, 왜 고양이만 돌보냐는 사람도 있다. 첫 번째 질문은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고양이라도 돌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IMF 이후, 우리는 부자되세요라고 서로에게 인사하는 시대를 지났다. 내가 힘들어 죽겠어, 내가 가난해서 죽겠어, 내가 외로워서 죽겠어, 하여간 죽겠다고 얘기하는 게 미덕인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경쟁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온 사회가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한 부분이고, 인생의 한 파편일 뿐이다. 그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우리가 회피했거나 망각한 삶의 미덕, 그것이 돌봄이라는 개념 안에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 중의 하나이다. 누군가 아프면 같이 아프고, 누군가 배고프면 자신의 마음도 아픈 것, 그런 걸 우리는 귀찮은 것 정도가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절대로 가져서는 안되는 악덕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팬시하지 못한 것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마당 고양이 식구들이 아주 단촐해졌다. 녀석들과 나는,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다시 시작한다.)

 

두 마리의 영화사 고양이들과 봄부터 같이 지냈는데, 한 마리는 벌써 죽었고, 남은 한 마리는 혼자서 1주일간 사투를 벌였다.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스스로 이겨내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었다. 녀석은 살아 돌아왔고, 이제는 며칠 동안 놀지 못했던 것이 억울하다는 듯이 난장을 펼치고 있다.

 

논쟁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논쟁도 있고, 집에서도 논쟁을 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혹은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 누구나 크든 작든 그런 논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 그건 삶의 한 단편일 뿐이다. 누구나 먹어야 하고, 누구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포유류는 원래 그렇다. 알에서 깨어나서, 나오자마자 스스로 걸어가고 먹이를 찾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른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아니 많은 남자들은 많은 것을 자신에 대한 유불리와 소유의 개념으로 사유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돌보아서는 안되고, 일상은 전쟁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사람은 본시 그런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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