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학자로서 모든 걸 걸었다
(별 의미는 없는 사진인데, 장마비 내리는 동안 아내 기다리면서 잠시. 왠지 몽환적 느낌의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교정 보고 마지막으로 원고 정리하면서 며칠간 밤을 샜다. 어차피 낮에 틈틈이 자니까 밤 새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은데, 너무 오랫동안 집중을 했더니, 몸이 내 몸이 아니다. 긴장이 쉽게 가라앉지가 않는다.
fta에 대한 책은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작년 10월부터 그야말로 모든 일정을 잠시 세우고, 몇 달 동안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게 되었다.
그 동안 수업도 하지 않게 되었고, 강연들도 대부분 정리했고, 신문에 쓰던 칼럼들도 정리했다. 원래도 정리할 생각이 있기는 했었는데, fta 문제 때문에 좀 서둘러 정리를 했다. 그만큼 나는 작업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어쨌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몇 달 동안을 악으로, 깡으로 버텼던 것 같다.
국회에서 날치기가 되던 순간, 발효가 되는 순간, 총선에서 지는 순간, 작업의 방향을 다시 잡고, 새로 시작하다시피 해야 하는 순간이 세 번쯤 있었다.
총선 끝나고서는, 접으려고 했었다.
도저히 낼 수 있는 결론이 없었고, 정말로 바늘 하나 꽂을 땅도 없어 보였다.
그 동안에 일정은 완전히 개판이 되었고, 책 몇 권이 마냥 뒤로 밀렸고, 셋팅되어 있던 다큐 작업 하나를 날렸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책 한 권도 날렸다.
하여간 일정에 없던 책 때문에, 나름 비싼 대가를 치룬 셈이다. 물론 진짜 대가는 그런 것 보다는 더 하다.
거의 모든 경제학자와 거의 모든 공무원들과 맞서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역시 거의 대부분의 야당 쪽 대선후보들과도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알고는 시작한 거지만, 또 막상 그 상황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싸움이 한미 fta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의 학자로서의 마지막 싸움은 한미 fta가 되었다.
너무 이렇게 극단으로 갈 필요가 있느냐고,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들을 많이 했는데… 뭐, 누군가는 그렇게 시대의 한 극단에 서 있어야 할 것 같기는 했고, 나는 그냥 이걸 나의 마지막 전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된 책들을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내가 기획했던 책이 fta 책이 되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순서상으로는, 이 뒤로도 예전에 했던 작업들을 정리하면서 나올 책들이 좀 더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새롭게 경제학 책을 기획하거나 준비하는 건 없다.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한미 fta가 통과한 다음에, 거기에 적응하는 다음 시나리오를 생각해내고, 또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가 않고,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뒤에 남아있는 책들은, 한미 fta 발효 한참 전에 준비된 거고, 그 때 골격이 잡힌 것들이라, fta와는 별 상관없이 마무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충돌하는 책들은, 이번에 출간 일정 조정하면서 날려버렸다.
그냥 여기에 학자로서의 삶을, 묻기로 했다.
물론 그 뒤에도 써보고 싶거나 만들어보고 싶은 얘기들이 생겨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건 학에 관한 얘기는 아니고, 경제학에 관한 얘기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의 아동들을 위한 그림책을 써보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 내 주변에 내가 아주 좋아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몇 명 있다.
영화에 대한 책이, 아직 구상 중까지 간 건 아니지만, 좀 분석해보고 싶은 게 생겨났다. 조지 루카스에 관한 얘기인데, 이렇게 저렇게, 한 번 꼭 분석해보고 싶고, 다루어보고 싶은 게 좀 있다.
오랫동안 놓고 있던 국악에 관한 얘기도 좀 해보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날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하여간 경제학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테마나 책 혹은 연구과제에 관한 구상은 더 이상 하지 않고, 기획도 하지 않는다. 못하게 되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이라고 하는 걸,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한 다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상황은 나빠지더라도, 그래도 조그마한 전환의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공간의 문제나 부동산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그랬고, 20대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그랬다.
심지어 농업 문제를 다룰 때에도, 지금은 어렵지만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냥 마음만 그렇게 먹은 게 아니라, 요래요래, 조래조래, 요렇게 하면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
Fta에 대한 책 작업을 마치고 난 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앞으로 뭔가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도저히 나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럴 가능성이, 현실이 아니라 이론적이거나 가상적인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좋아질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 fta 문제를 최소한 지금보다는 의미 있게 진전시키기 전에는 말이다.
원튼, 원치 않튼, 결국 한미 fta 문제에, 나는 학자로서의 생명을 걸게 된 셈이다.
그건 정권이 바뀌느냐, 바뀌지 않느냐, 그것과는 또 층위가 다른 문제이다.
어쨌든 남은 대선 때까지, 나도 나의 최선을 다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는 않고, 있지도 않은 희망을 정책에 대한 기술적 문제로 디자인할 그럴 능력이 나한테는 없다.
그래서 여기가 최후의 마지노선이 된 셈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 다음 분석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 셈이다.
한미 fta 문제를 대선을 경계점으로, 극적으로 풀게 된다면?
한국은 적어도 지금보다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여건에서, 새롭게 분석할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시대가 좋아지면, 새로운 흐름도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전혀 풀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추이대로 계속 악화된다면?
그걸 염두에 두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낼 능력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에, 어차피 내가 상상할 수도 없고, 내가 생각해볼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경우에도 나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보는 이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공감해달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마음 속으로 뭔가 느껴지지 않으면, 어차피 서로 하나마나한 얘기이고, 서로 시간 낭비이다.
‘한미 fta 한 스푼’은, 그런 면에서 내가 현역 경제학자로서 가졌던 최대의 낙관 아니면 마지막 낙관일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이 문제가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마지막 페이지에 마지막 글자를 떨어뜨릴 때까지, 놓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명랑함을 잃고 싶지는 않았고, 우울하고 암울하게 미래에 대한 묵시록 같은 얘기를 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fta 한 스푼’은 처음에는 공포 버전으로 생각했다가, 가능하면 ‘스푼’ 버전 같은 형태로 끌고 가려고 노력했다.
내 삶에서도 그러고 싶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도 그렇게 하고 싶다.
늘 즐겁게 살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림책이나 영화에서, 짧게라도 웃음과 명랑을 빈 구석구석 채워넣으며,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미 fta를 그대로 두고, 현 상태에서 경제가 즐거워지거나 발전하는 그림이, 나한테는 안 보인다.
아주 우울한 지지리 궁상 같은 얘기만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차피 생각하고 있던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이제 정리하는 것이 더 편한 선택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없다, 그렇게 지금까지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결국 그렇게 될 것 같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의 99%는 한미 fta를 희망적으로 보았고, 대단한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나도 그들이 인도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는 한데, 그 시기를 경제학자로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럴 자신도 없고.
대선이 끝나면, 태어날 자식이 보게 될 그림책과 동화책 같은 걸 소일거리로 쓰면서 즐겁게 살아갈 자신은 있다. 그리고 정말 즐겁거나 유쾌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영화를 같이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영화에 대한 소소한 것들을 분석하면서 심각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자신도 있다.
사람이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은, 경제학이 다가 아니고, 돈의 세계가 다가 아니다.
경제학자로서, 새롭게 기획을 하는 마지막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쨌든 fta 작업을 마쳤다. 여기가 학자로서의 나의 마지노 선이다.
한미 fta 앞에서, 삭발을 했고, 내 책 중에 가장 잘 팔렸던 책을 절판했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학자로서 나의 삶을 걸었다.
45년간 살아온 인생을 다 걸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시대에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제학자로서 걸 수 있는 나의 모든 건 다 걸었다.
그리고 지금 나와 같이 이 벌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내가 숨을 거둘 때까지, 친구이고 동료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될 것이다.
책은 내 손을 이제 떠났다.
한국에서 내가 한미 fta 폐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던 마지막 경제학자가 될지, 아니면 내 뒤에 또 누가 있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진짜로 지고 싶지 않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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