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연출되지 않는 것
올해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떤 여자 어린이가 있다. 이제 학교에 좀 익숙해질까 싶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학교는 쉬운 걸 무섭게 가르치는 곳이예요.”
‘무섭게’, 이 단어가 가슴을 쿵하고 찔렀다. 이 어린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넓게 보면 강남의 한 언저리에 있는 학교이다. 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의 여자 어린이에게도 무서운 곳으로 느껴졌나보다.
아기 고양이들은, 이제 슬슬 젖을 뗄 때가 가까워졌다. 한 달 내내 광과 뒤뚤에 숨어 지내다가 요즘은 마당 앞으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캔에 든 고기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새끼용 사료를 조금씩 물에 불려서 줘보는데, 어른들이 먹은 건지 얘들이 먹은 건지, 그건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아기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에게 앉겨 젖 먹는 것을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 정도이다.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들을 품에 앉고 젖을 먹일 때,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문득 “학교는 쉬운 걸 무섭게 가르치는 곳”이라는 어느 어린이의 말이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학교에서 행복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행복이라는 것이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아예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선생님한테 칭찬 듣고, 공부 잘 했다고 칭찬 듣고… 그런 건 행복이 아니다.
성취와 쟁취, 그런 걸 행복과 동의어로 알고 세상을 살게 되면, 결국 어느 순간 행복에 대해서 너무너무 무감각해지거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치명적 인간이 되지 않을까?
돌아보면, 나도 행복을 제대로 배웠던 기억이 잘 없는 것 같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불행하지 않을지 몰라도, 행복을 배우지 못한 것은 정말로 불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손에 쥐고 과시하는 것, 그건 행복 아니다. 누군가의 눈을 통해 투영되는 찰라의 화려함, 그것도 행복 아니다.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품에 앉고 젖먹이는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게 행복을 배우는 첫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가끔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을 돌보면서, 누가 누구를 돌보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행복은 연출되지 않는 것, 그런 걸 가끔 녀석들을 보면서 배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고양이들의 사진은 연출할 수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찍는 거다.
사진은 빛을 가지고 노는 거라, 해 아주 좋은 밝은 날 주로 찍고, 걔들이 나와있는 곳에서 찍고, 보여주는 모습대로 찍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행복을 만나게 된다.
행복은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초등학생 때에는 행복해지는 것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배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루에 한 번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삶, 그건 사람 사는 게 아니다.
그건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
더 나이를 먹어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지금부터라도 행복을 배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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