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달개비의 날들

 

 

 

소설 <자산어보>가 새로 발간이 되었다. 오세영의 소설이었는데, 몇 년 전에 정말 재밌게 읽었었다. 분에 넘치게 재출간을 하면서 추천사에 대한 부탁이 들어왔다. 소설에 추천서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추천사를 쓸 때의 중간 제목은 바다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결국 출간이 되었을 때는 다시 <자산어보>가 되었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에 관한 이야기이고, ‘흑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마 정약전으로 알고 있는데그 유배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최초의 생태학자라고 해도 좋을, 정약전이 흑산도라는 동네에서 정신적 지주로 동네 사람들과 바다 생태계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요 몇 년 사이에 정말 재밌게 읽은 소설이기도 했다. 작가인 오세영에게도 관심이 좀 있었다. 송파 도서관 근처에서 내가 작업하던 시절이었는데, 오세영도 송파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본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같은 도서관에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친근함이 생기게 된다.

 

<자산어보>를 처음 읽고, 다시 재출간이 되는 동안에, 두 책을 사이에 두면 제일 큰 변화는 내 삶의 공간이 바뀌었다는 걸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정동에 살던 시절, 아파트에 앉아서 소설을 읽었는데, 재출간이 되었을 때에는 아파트를 떠났고, 지금은 주택에서 산다.

 

가끔씩 삶을 관통하면서, 그래, 이런 거야, 이런 마음을 들게 하는 책이 있다. <88만원 세대>를 쓸 때만 해도, 나도 30대였다. 그 시절에는,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도 좀 있었고, 결국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취직을 다시 해야 하나, 그냥 버텨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노무현 시절이었는데, 아직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 한적한 곳에서 조그만 연구관 같은 건 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나는, 유배자 살아가는 심경 비슷하게 그냥 버티면서 좀 더 작업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을 때 손에 잡았던 책이 <자산어보>였다. 정약전의 삶에 대해서 우리는 별로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 싶다. 아우인 정약용이 워낙 화려해서, 거기에 가리워진 측면이 적지는 않은데, 나름대로 참 멋진 삶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자주 달개비라는 꽃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 이런 잡초가 있나 싶었는데, 워낙 열심히 줄기를 올려대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새벽에 꽃을 피우고, 점심 먹기 전에 꽃이 진다. 그렇지만 매일 같이 꽃일 피워내면서, 두 달 넘게 매일 꽃을 볼 수 있었다. 총선이 끝나고 울적하던 시기에, 마당에 있던 꽃들을 매일 보면서 나도 지친 마음을 추스렸다.

 

꽃은 매일 같이 피었다. 막상 보면 아주 작고 볼품 없어 보이지만, 이런 꽃이 수 십 송이, 몇 시간을 위해서 피어나는 걸 보면, 작은 장관이 펼쳐진다. 슈베르트가 기타를 보고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표현할 때, 그런 느낌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사회에서 좀 움직이려고 할 때는 YS의 시절이었다. 문민정부라고 이름을 달아서, 운동권들이 사회에서 조금은 더 개방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정부에서 일을 하던 건 DJ 시절이었다. 정부기관이나 정부 단체에서, 좋든 싫든, 운동권들을 조금은 더 중요 자리에 배치하려고 했고, 뭔가 대외교섭을 해야 하는 자리에 앉히려고 했었다. 좋든 싫든, 그런 시기였다.

 

명박의 5년간, 그야말로 토건의 시대였고, 영혼을 팔아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기에 정부와 관련된 일을 뭔가 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전향하지 않았거나 전향할 생각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평균적으로 아주 어려운 시기가 펼쳐졌을 것이다. 그 시기가 5년 더 연장된다는 것은, 이제 시작해보려는 사람들이나 이제 사회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입사 면접 때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를 환기해보게 하는 것과 같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기회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효명세자의 시기는, 보면 볼수록 애틋함이 많다. 마지막 개혁 군주가 될 수 있었던 효명세자는, 그러나 너무 일찍 죽었다.

 

명박에서 박근혜로 넘어가는 게, 90% 이상 확정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즘, 문득 효명세자가 대리첨정하던 순조 시절 생각이 잠시 났다. 대한민국 버전이 세도정치의 부활과 박근혜를 앞으로 미는 사람들의 구도는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조선은, 세도정치로 나라 망해먹은 경험이 있는 나라라서, 해방 이후 50년 넘게 세도정치 형식으로 나라가 가지 않도록, 많이 버틴 셈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이게 딱 세도정치랑 너무 유사해보이지 않는가?

 

아침에 피어나는 자주 달개비를 매일 보지는 못한다. 어쨌든 이런 시기에 소설 <자산어보>에 대한 추천사를 쓰면서, 나도 지난 몇 년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근혜 버전 세도정치가 서울 한 가운데에서, 강남을 중심으로 뭉게뭉게 피어나는 이즈음, 20대가 이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방식으로 희망을 볼 수가 있겠는가? 예전 식으로 얘기하면, 필화 사건과 유사한, 말로 인해서 감옥에 가있는 정봉주 생각하면, 이 시기가 얼마나 더 세도정치에 가깝게 가있는지, 그런 생각을 더더욱 해보게 된다.

 

자본주의라서 뭐가 많이 바뀐 듯 싶지만, 조선이 망해가는 과정과 지금의 강남발 세도정치의 구도가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가진 것들이 뻔뻔해질 때, 한국은 늘 망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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