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드디어 새로 태어난 새끼들을 만나게 되었다.

 

난 가장이라는 생각 자체를 별로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밥을 하거나 밥을 주어야 하는 존재들은 계속해서 늘어간다.

 

이미 새끼들이 태어났을 거라고는 생각을 했는데, 굳이 찾아나서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엄마 고양이가 갑자기 바짝 말라서 나타난 걸 본 건 며칠 전이다.

 

그렇다고 찾아 나서지 않은 것은... 내가 본다고 해서, 더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오히려 불편하게 할 뿐이다.

 

작년에 태어난 녀석들은 장마철 내내 마루 앞의 화단에서 울어댔었다.

 

지금 아들 고양이라고 부르는 녀석이 혼자 가을까지 살아남았다.

 

 

 

 

이 녀석에게는 현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현중일날 처음 봐서 그렇다. 생일이 현충일인 셈이다.

 

어쨌든 첫 외출이었을 것 같다.

 

부랴부랴 뛰어가서 캔을 뜯어주었는데, 다 큰 녀석들이 먼저 먹어버리고 녀석에게는 찌그러기가 차례가 갔다.

 

우유를 갖다 줘야 하나, 뭘 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캔에 낼름 달려둘어, 캔을 엎어버렸다.

 

그리고는...

 

이제 겨우 눈을 뜨고, 엄마 젖도 아직 다 떼지 않았을텐데.

 

 

누가 따로 가르켜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는다.

 

자세히 확인해보지는 않았는데 - 사실 확인할 길도 별로 없지만 - 수컷이 아닐까 싶다.

 

아마 아빠는, 역시 마당에서 살고 있는, 내가 검둥이라고 부르는 녀석일 거다.

 

얘가 수컷이 아니면, 아주 계산 복잡해진다.

 

 

 

현충, 그 이름은 복합적이고, 중의적이다.

 

막상 그렇게 부르기로 하고 나니, 이미지와도 나름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녀석.

 

얘는 삼색 고양이, 볼 거 없이 암컷이다.

 

사람들이 멘붕을 호소하는 시기에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멘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3년 전인가, 이 마당에서 삼색 고양이 모녀가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얘는 그냥 성묘용 사료를 먹기 시작한다.

 

아빠가 한 덩치 하는 범상치 않은 녀석이었는데, 역시 강하다...

 

그리고 엄청 귀엽다.

 

 

이 가족의 족보가 좀 복잡하기는 한데...

 

어쨌든 엄마와 삼남매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엄마보다 덩치가 더 커진 아들 고양이. 벌써 분가해서 나가는 게 일반적이기는 한데, 어쨌든 이렇게 한 가족이 되었다.

 

이사가는 날이 정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는데, 가을이 끝나갈 때나 겨울이 시작될 때, 이사를 가게 된다.

 

몇 마리가 되든, 그 때까지 같이 사는 녀석들을 데리고 가려고 한다.

 

그 때까지는 지네들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내버려두고.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생각이 있는데, 어쨌든 이 경우에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중성화수술을 시켜주고, 퇴원하면서 이사갈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사가는 집은 지금 집에서 2킬로미터 약간 안되는 거리이지만, 고양이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고.

 

 

 

 

 

멘붕이라고 부르기로 한 새끼 고양이, 진짜 귀엽다.

 

두 마리 다 예방접종도 시켜주면 좋겠는데, 그건 별로 방법이 없다.

 

광견병도 문제겠지만, 철마다 고양이들 사이에서 유행병이 돌기도 한다. 예방주사 외에는 약이 없는 경우도 꽤 있는 걸로 안다.

 

 

엄마에게 달려가는 현충과 멘붕,

 

진짜 눈물 날 듯하게 감동적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다 소중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어찌 안할 수 있겠는가?

 

 

새끼 고양이들이 마당에서 쉬고 있다.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고, 또 쉽게 포착하기도 어려운 장면이다.

 

녀석들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시간이 오래지 않아 올 것이다.

 

고양이들의 시간은 사람보다 짧다. 압축해서 시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그래서 또 떠나보낼 때의 아픔도 있다.

 

처음 키웠던 엄마 고양이 생각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두 번의 새끼를 낫고, 겨울이 다 끝나가던 어느 날, 쥐약을 먹고 현관 앞에 쓰러졌다.

 

그 때는 정말 많이 울었었다.

 

내가 집을 나왔던 것이 거의 그즈음이었다.

 

 

 

삼색 고양이는, 엄청 귀엽다. 그리고 놀랍도록 씩씩하다.

 

나에게도 이렇게 어렸던 시절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보자마자 멘붕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것은,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지금 멘붕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작은 위로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는 금방 자란다. 가을이면 벌써 새끼 티를 벗고, 겨울이면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성묘와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어쩌면 아직 만나지 못한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쯤 더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걸어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엄마와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

 

이 사진은 좀 공을 들여서 찍었다. 이런 모습을 살면서 몇 번이나 만나게 되겠는가.

 

막상 '명박 시대'를 제목으로 포토 에세이를 준비한다고 한 다음부터, 모티브를 찾지 못해서 몇 달 동안 좀 애먹고 있었다.

 

아내는 8월이 출산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출근을 하는 중이고, 바깥에서 식사를 잘 못해서 매일은 못하지만, 거의 매일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다.

 

원래 계획으로는, 요 맘때쯤 어떻게든 부탁을 해서 원자력 발전소 내부의 사진들도 좀 찍고, 화력 발전소의 발전기들도 좀 찍고, 그럴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꼼짝을 하기가 어렵다.

 

낮에 움직여서 아파트 재건축 현장 같은 데라도 좀 찍을 수는 있는데, fta 책 등, 그야말로 나도 일정에 쫓겨서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작년까지는 출장도 많이 다니고, 특히 거의 매주 지방의 현장에 갈 일이 있었는데, 딱 포토 에세이를 준비하려고 하는 올해는...

 

뭐,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삶이 매일매일 이렇게 축하할 일로 가득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뭔가 증오하거나 저주하거나, 미워하면서 그렇게 시대를 인식했는지도 모른다.

 

지칠 법도 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새로운 탄생에 대해서 축하를 하면서, 미래를 기원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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