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50대 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101건

  1. 2017.11.23 10년 후 한국
  2. 2017.11.23 마음은 청춘? 1
  3. 2017.11.23 문체, 습기, 생기...
  4. 2017.11.22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5. 2017.11.14 50대 에세이, 작업을 시작하며
  6. 2017.11.10 강연에 대해서 2
  7. 2017.11.07 광주 교육 토크콘서트를 끝내고... 5
  8. 2017.10.25 50대 에세이 제목 5
  9. 2017.09.12 책 쓰는 법? 4
  10. 2017.08.28 블로그, 페이스북, 사진들 바꾸다...

10년 후 세상은 어떨까,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10년 후면 나도 환갑이 된다. 내가 살았던 한국은, 돈으로 너무 설명이 잘 되는 나라였다. 내가 바라는 10년 후 한국은, 돈으로 뭔가 설명이 잘 되지 않는 나라다. 내가 본 선진국이 대체로 그렇다. 미래 얘기하면,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여기저기, 덕지덕지 쓰도록 강요한다. 그러면 미래가 좀 보일까? 보장한다.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는 순간, 바보 된다. 열심히 살았던 공무원이 은퇴를 앞두고 바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는 지금의 연장이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가 올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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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청춘?


옛날부터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88만원 세대'를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도, 친하게 아는 선배가 '마음은 청춘'이라는 개수작을 부려서. 그 말 듣자마자, 진짜로 청년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때 나는 30대였다.

그 때에 비하면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 내 동료들도 다 늙어가고. 늙어가면서 알 것 같다. '마음은 청춘'이 아니라, 마음부터 먼저 늙는다. 몸이 늙고 마음이 늙는 게 아니라, 마음이 늙고 몸은 뒤따라 늙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뭔가 깨닫고 깨우치는 게 아니라, 비겁한 변명과 못된 짓할 잔대가리만 늘어난다. 죽어도 '마음은 청춘', 이런 개수작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2모작'이라는 얘기를 듣고, 초반에 이건 아니다라는 얘기를 못한 건... 그 땐 몰랐다. '마음은 청춘'이나 '인생2모작'이나, 대 개수작에 불과한 것. 그냥 조용히 사는 것, 할 일 하는 것, 그게 그렇게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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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체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는 중이다. 에세이집을 준비하면서, 문체를 크게 한 번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질색을 하는 것은, 기교로 글을 쓰는 일이다. 그건 글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그냥 쓰레기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까 글을 쓰는 거지, 그런 게 없는 데도 테크닉으로 어떻게 해볼까... 어불성설이다. 그냥 노는 게 낫다. 그렇지만 기교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형식과 기법이 필요하기는 하다.

최근에 내가 글을 읽는 기준은, 습기와 생기, 두 가지다. 습기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습기 없이 생각만 하려고 하면 골 아파서 아예 집어 던지게 된다. 그리고 생기, 행복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

의미는 알겠는데, 이걸 문체에서 구현할 방법은? 아직 모른다. 고민만 해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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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뭐부터 손을 대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게다가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진짜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그 와중에 딱 두 개의 사실이 위안이다. 남의 걸 보고 평해야 하는 그런 글은 없다는 사실. 맞든 틀리든, 내가 새롭게 풀거나 얘기를 만들어야 하는 글이라는 점. 그냥 내 길을 가면 된다. 그리고 요즘 내가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는 사실. 되면 되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 뭔가 생각을 해보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견적서가 바로 나온다. 안 되는 건, 바로 포기한다. 애 둘 키우면서 안 되는 것까지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요 며칠 사이에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나중에 평론에 관한 글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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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작업을 시작하며

 

1.

시간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내 삶은 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온통 뒤죽박죽이다. 너무 빠른 것과 너무 늦은 것, 그런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몇 개의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는 있는데, 별 의미는 없다. 하여간 20대 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유학 시절에는 77학번들과 공부를 같이 했다. 그 사람들이 오랫동안 동료였다. 국내에서는 82학번들이 데뷔하던 시절에 같이 데뷔했다. 집도 엄청 빨리 샀다. 결혼하고 9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친구 자식들이 대학을 갔거나 가려고 할 때, 우리 집 아이들은 4, 6, 그러다 보니 아이들 친구 때문에 만나는 부모들은 이제 한참 젊은 부모들이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거나,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이와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예민해진다. 원래 예민했던 게 아니라, 그렇게 된 것 같다.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기다 보니 '88만원 세대' 같은 책을 쓰게 된 것도 아주 우연한 일은 아니다. 소피스트의 시대에 "흐르는 물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처음 들은 말인데, 친구들은 그 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내가 들어간 그 물은, 다시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나도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그 시간의 문턱을 넘으며, 매번 기뻐하고, 좌절하고, 놀라움을 겪는다. 그리고 금방 잊어버린다. 지나간 것은, 그런 것이다.

 

2.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아주 가끔은, 정말로 간절히 원한 적이 있기는 하다. 첫사랑 때 한 번, 성신여대 교수임용 파이널 총장면접에서 떨어질 때, 그리고 아마 한 두 번 정도 더, 간절히 원한 순간이 있기는 했다. 내가 그 시절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단 한 가지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더더욱 나는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그런 건 믿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도 믿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믿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를 언젠가 내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너무 창피하지만 않을 정도로, 진짜로 면피만 하면서 살아간다. 누가 봐도 창피하고,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런 짓은 하지 말자, 그 정도로 대충 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50이 되는 순간,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할 일도 없었으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두 아이를 조금씩은 돌봐야 했고, 돈도 조금씩은 벌어서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해야 했다. 들째는 게속 아팠다. 아이를 아주 열심히 봤고, 일은 아주 조금만 했다. 그래도 돼?

 

아주 더운 여름 날, 차를 치웠다. 10만 조금 넘은 차인데, 수동이라 팔 데도 없을 것 같고, 폐차할까 생각 중이었다. 마침 동료가 힘들어하길래, 그냥 줘버렸다. 차가 없으면, 생활이 조금 더 단촐해지고, 돈도 조금 덜 쓰게 된다. 그 정도 조정은 했다.

 

내 삶의 대부분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였다. 초등학교 때 미래 희망을 쓰라고 해서, 외교관이라고 썼다. 별 거 아니다. 내 짝 아버지의 직업이었을 뿐이다. 한 번도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전문 외교협상관 일을 했다. 가끔 초등학교 때 써냈던 친구 아버지 직업이 생각나기는 했다. 그 집에 미니카가 엄청나게 많았다. 살면서 남을 부러워하는 게 별로 없었는데, 마루의 서재 하나를 가득 채운 그 미니카들은 좀 부러웠다. 촌놈이, 정말 미니카라는 걸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이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주변 사람들은 펄펄 뛴다. 그렇지만 난 원래 그렇게 살았다. 되는 대로, 그 때 그 때 형편 맞춰가면서 살았다. 그래도 한 평생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가야 하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개돼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문화부 공무원이 우리 아이들을 개돼지라고 불렀다. 물어보니까 이래저래 한 다리 건너면 직접 알 수 있는 관계고, 나와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한다. 진짜로 만나서 그 말이 복잡한 총체성을 물어보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개돼지라는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0,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이 있었다. 우리가 권력자들이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르는 그 시대를 만든 것 아닌가? 나한테 개돼지라고 그러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자식들도 개돼지 취급받는 사회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해야 할 말이 생겼다.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른 그 공무원도, 한 때는 다 우리들의 친구 같은 존재였고, 같은 건물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지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10, 내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한 때 조선이라고 불렸던 나라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내면적 전환점 사이에 서 있다.

 

3.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MB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40대는 지나가버렸다. 나에게 아직도 젊음의 흔적이 남아있던 시절, 그 나이는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다 봉쇄되어 있었다.

 

50대의 힘은 2012년 대선 때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하였다. 투표율 82%, 어마무시한 수치가 나왔다. 병원에 있는 사람, 등대와 같이 어쩔 수 없는 노동조건을 가진 사람들, 해외에 단기 체류 중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 빼면 다 한 것이다. 많은 기관과 연구자들이 50대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지금 국토부 장관인 김현미가 그 때 만든 연구소가 시니어 연구소다. 그도 한 때 청년 문제가 최고 중요하다고 하던 사람인데, 그 대선 이후 시니어 연구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사람이 바뀐 건 아니지만, 방향이 약간 바뀌었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내가 50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정권이 바뀌었다. 보수의 핵심 축이던 50, 이제 50대도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변해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로 임시로 열린 대선이 끝나는 날, 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할만큼 했다.

 

기뻤을까? 솔직히 기쁘지는 않았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갈 길은 멀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생각하면, 암담하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했다. 더 이상 시대가 던져준 의무감 때문에 내 삶을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할만큼 했다. 아마 대통령 문재인도 더는 나에게 뭘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럴 일도 없고. 그가 당대표 되기 이전부터, 아니 지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몇 년간 진짜로 도울 만큼 도왔다. 이젠 나도 나의 두 아이와 아내를 돕고 싶다.

 

새 시대, 그냥 조용히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다. '우리', '시대', '역사', 이런 어려운 말은 더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세 끼 밥이 입에 들어올까,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난 다른 사람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된다. 그 날이 올까? 왔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서,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정도, 그렇게 살까 한다.

 

4.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아주 친했던 친구를 얼마 전 만났다. 큰 대기업에 상무가 되어 있었다. 많이 친했던 친구다. 50대라는 나이가 그런 나이다. 살아남아서 한 두 번 더 올라갈 기회가 있거나, 이제는 자기가 일하던 곳에서 돌아서야 하는 선택이 기다리는 나이다. 큰 선거 때 투표하는 것, 그리고 약간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것,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20년을 더 살지, 30년을 더 살지 모른다. 30년이 되면, 거의 확실하게 운전은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 (그때쯤이면 자율운행차가 일반화될까?)

 

좋든 싫든, 뭔가 선택을 해야 하는 나이가 50대이기도 하다. 하다 보니까, 나는 그 선택을 35세에 했다. 공기업 부장도 어느 정도 연수가 차서, 슬슬 승진을 준비하기 시작해야 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팀장도 해먹을 만큼 해먹고, 그 윗자리로 가라는 압력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다. , 조금 더 작은 조직으로 옮겨서 팀장말고 본부장하라는 얘기인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사직서를 내고, 남들이 요즘 엄청나게 들어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평생 직장을 나왔다.

 

일본에서는 '드롭 아웃'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그냥 학자로서의 자유를 가지고 싶어서 그만둔 것일 뿐이다. 엄청난 이유가 있거나, 위대한 결심(!)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왠지 더 재밌는 길이 있을 것 같아서

 

그 후로도 몇 번의 큰 선택을 더 했다. 그 선택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 게 50대다.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가 아니라면, 대부분 50대에 뭔가 선택을 하게 된다. 사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도 아쉽다고 난리다. 지금의 20대는 그런 선택을 아주 일부만이 할 수 있게 된다.

 

뭔가 같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친구들 만나면, 몇 명 빼고는 대부분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다. 친한 70대 노친네들이 좀 있다. 남은 삶을 고민하는 건 맞는데, 같이 만나면 점심 메뉴를 뭘 할까가 제일 큰 걱정이다. 지금의 50대는, 선택 받은 70대만큼 풍요롭지는 못할 것이다. 풍요의 시대는 한국에서 이미 끝났다. 그리고 그 풍요의 뒷 끝은 더 심해질 것이다.

 

5.

50대의 얘기는 과거에 대한 얘기 아니면 미래에 대한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시절의 영광에 대한 과거 혹은 남루했던 청춘과 같은 과거의 얘기는 재미없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얘기는, 서로 시간 낭비다. 안철수의 미래에 대한 얘기가 공허한 것은, 자기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지금 여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전환기다. 짧게는 10년간의 황당했던 순간, 좀 넓게 보면 전두환에서 유신까지 올라가는 종 기괴한 관행과 습관, 그런 것들에서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오는 그런 순간이다. 그런 게 바로 지금 여기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뉴라이트들의 말이 맞다면, 한국은 일본에게 배워서 자본주의를 시작했다. 원래 한국 모델은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이 모델로 했던 독일이나 네덜란드 모습들이 우리 안에 숨어 있다. 박정희가 따라했던 프랑스 모델도 유신의 흔적 속에 깊게 남아있다. 그리고는 미국 모델이다. 워낙 미국 식민지처럼 수 십년을 살았고, 모국과의 관계로 1등 국민과 2등 국민이 나누어지는 것 같은 식민지 모델로 작동했으니 말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은 식민지 모델에서는 좀 벗어났지만, 대학은 이제 완전히 식민지 모델이다. 그리고 가끔 스웨덴 같은 북구 모델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촛불집회 이후, 우리는 우리가 교과서다. 프랑스 혁명과 촛불집회는 다르다. 그래서 걸어가는 길도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이제는 모델도 없다. 우리가 걸어가는 대로 그게 그냥 교과서가, 우리가 하는 대로 그대로 모델이다. 이런 전환기는 80년에도 없었고, 98년에도 없었고, 2003년에는 더더욱 없었다.

 

별로 즐겁지도 않은 옛날 얘기를 과거적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재미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에 대해서 서로 시간 쪼개가며 얘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애들한테 동화책 한 권 더 읽어주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

 

하나마나한 얘기는, 이제 재미없다. 지금 내가 사는 삶, 지금 우리가 겪는 일들, 그런 게 조금이라도 더 살갑고, 약간이라도 더 재미있다.

 

그 얘기를, 경차를 가지고 시작해보려고 한다. 차 살거냐 말거냐? 산다면 무슨 차를 살 거냐? 경차 가지고도 충분히 철학과 미학을 얘기할 수 있고, 인생관과 윤리를 얘기할 수 있고, 경제 얘기를 할 수 있다. 골프나 당구 혹은 바둑 가지고 하는 얘기보다는 훨씬 살갑다. 그런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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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내고 신문 인터뷰 사진. 금향 기자가 급해서 핸펀으로 그냥 찍었던 걸로 기억...)



강연에 대해서

 

1.

몇 달 동안 강연을 꽤 많이 했다.

 

몇 년 동안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고, 뭔가 챙겨준 게 너무 없다. 진짜로 몇 년간 도움만 받았다. 머리 숙이는 걸 진짜로 싫어하는데, 선거 몇 번 치루면서 도와달라고 부탁만 하고 다녔다. 그런 사람들이 강연 부탁하면, 안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거. 기왕에 하는 거, 최선을 다 해서 한다고 했더니, 이래저래 너무 많이 했다. 하여간 몇 달 동안, 진찌로 강원도 빼고는 거의 전국을 다 이잡듯이 다녔던 것 같다. 제주도만 제주시, 서귀포시, 그렇게 두 번을 갔다.

 

12월이 되면, 전에 약속한 것 몇 개만 남고,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는 강연은 안 하려고 한다. 특별히 안 하는 거라기 보다는, 원래도 안 하던 거, 그냥 안 하는 상태로.

 

2.

90년대에 내 강연은 비쌌다. 특별히 내가 비싸게 받은 건 아닌데, 그 때는 후하게들 줬다. 한 번에 보통 500만원 정도 받은 것 같고, 더 준 경우도 있다. LG였던 걸로 기억난다. 500만원 준다고 했는데, 강연 끝나고 나니까 경영진이 너무 고마웠다고 결국은 천 만원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내가 아는 지식은 우리나라 최고였다. 지금은 그 정도 아는 사람들은 가끔 있기는 한데, 그 때 환경 문제에 관해서 공장 관리인들이 알아야 할 지식으로는, 내가 최고였다. 그걸 업으로 했으면, 아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때에, 정말 넉넉하게 벌었고, 특별히 돈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아마도 가장 비싸게 받을 뻔했던 것은, 전경련 소속 사장들이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가는데, 거기 동행해서 몇 번의 강의를 해주는 걸로

 

근데 나는 잠시 짬을 내서라도 별도로 강의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틈틈히 얘기해주는 그런 거였다.

 

안 한다고 그랬다. 골프 질 줄 모른다. 전경련에서는 그냥 골프 치는 시늉만 하면 안되느냐, 그래서 골프 안 치는 건 내 철학이라고 그랬다. 이래저래, 돈 겁나게 많이 준다고 그러기는 했는데, 일 없슈

 

그 시절에도 돈과 철학이 부딪히면, 나는 철학을 선택했다.

 

3.

아내가 나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풀뿌리 시민단체나 생협 조직들 전국으로 찾아다니면서 5만원, 10만원짜리 강연을 하고 다니던 시절이다. 농사지은 쌀을 받아온 적도 있고, 달걀 한 판을 받은 적도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책 아직 발간하기 전이다.

 

내가 쓴 거의 대부분의 책들의 논리는 그 시기에 구성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뭘 배워서개뿔, 배우기는 뭘 배워? 한국의 밑바닥 사람들이 왜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고생하는가, 어디서부터가 문제인가, 이런 걸 유학 가서 배우긴 어서 배우나? 정부는 알까? 개뿔, 알긴 뭘 알아총리실과 몇 년간 일했고, 실제로 근무도 했다. 알긴 뭘 알아!

 

진짜로 전국의 바닥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내 생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절, 건강을 잃었다. 진짜로, 너무 무리했다.

 

아내는 '봉투돈'이라고 불렀다. 내가 봉투에 받아서 아내에게 준 돈들을, 아내는 남편이 가장 자랑스럽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때, 5만원, 10만원, 이렇게 집에 가져간 돈 들을 아내는 꼭 통장에 넣었다. 나는 그냥 쓰라고 했는데, 아내는 꼭 통장에 입금시키고는 했다. 그렇게라도 내가 돈을 벌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슬퍼질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그 시절의 지금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학자 중에서, 이렇게 밑바닥을 돌면서, 사람들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 시절에 아내와 외국에서 좀 길게 체류하는 일들도 몇 번 있었다. 우리의 문제를 보고,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나, 그렇게 외국에 있다가, 그런 시절이 꽤 길게 지나갔다.

 

그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 책을 내기 시작하고, 강연은 정리를 했다. 더 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4.

지금도 가끔 강연을 하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책 나왔을 때 출판사에서 부탁하는 몇 번 정도다. 그 외에는 안 한다. 할 얘기는 책에 다 썼고, 그걸 일일이 다니면서 소개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 팔리면? 그만이다. 내 능력이 거기까지니까, 아니면 그만이다.

 

그래도 꼭 강연을 하려면?

 

이제는 명분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민단체나 정부기관에서 꼭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일부, 지역의 사회적 경제 관련 단체나, 이 정도, 아니면 가끔 대학. 다른 데에는 나에게 명분이 없다.

 

50이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명분 없는 일은 절대로 안 하려고 한다. 길게 보니까, 남는 건 명분 밖에 없다.

 

너는 돈 안 필요해? 가끔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하는 일들만으로도, 넉넉하지는 않아도 식구들 세 끼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강연으로 가끔 받는 돈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주 어려웠던 잠깐을 제외하면,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살기 위해서 가끔은 돈이 필요하니까, 나도 돈 버는 일을 조금씩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서로 슬퍼지는 일이다.

 

별 큰도 아니고, 슬퍼지기만 하는 일을 왜 해?

 

5.

가끔 강연 부탁이 오면서, 이것저것,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는 간다. 어차피 아는 건데, 약간만 수정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해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학자는, 지식의 최전선에 사는 사람이다. 요 몇 년, 내가 그런 경험을 가끔 한다. 내가 모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물어볼 데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지난 몇 달,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며 동시에 다짐인 얘기가 있다.

 

앞으로 9년 후, 어떤 주제가 가장 중요한 정책적 질문이 될까? 9년 후면, 개헌 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다음 대선 직전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 그거다.

 

앞의 책들을 보면, 보통 책 낸지 7~8년 정도 되면 대중적 주제가 된다. 그 순간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최첨단인 것처럼 보인다. 미세먼지의 경우는, 10년도 넘은 후 그 주제가 대중적이 되었다. KBS 했던 미세먼지 강연이 그랬다.

 

보이는 건 그렇지만, 실제로 그 문제를 뒤지고 고민하던 시점은 그 한참 전이다. 지금부터 내가 붙잡고 씨름하는 주제들이, 10년 후 한국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한다. 아직까지는 그랬는데, 지금부터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각오로 하루를 산다.

 

물론 나도 아주 나이를 먹으면, 예전에 한 것들을 반복하고, 재해석하면서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면, 애들 돌보거나, 3살짜리 애들 '기저귀 교실' 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뭔가 있는 척, 옛날 얘기를 들척거리면서 '잘난 척',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놀고 쉬면 된다. 뭘 잘 모르고, 더 이상 최전선에 서 있지 않은데, 남들 앞에 서는 것, 학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12월부터 당분간 강연을 안 하기로 결정을 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집안에 있는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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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여한 패널분들이 너무 극진하게 챙겨주셔서, 진짜로 몸둘 바를 몰랐다...)


오늘 ebs랑 교육부에서 한 광주 지역 토크콘서트에 갔다왔다. 같이 한 패널들이랑 관객들이 너무 극진히 챙겨주시는 바람에, 몸둘 바를 몰랐다. 그냥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가 되었다면 다행이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기 위해 산 것, 사실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아이들 영어 유치원에 안 보내는 것은, 그게 걔들에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뿐이다. 따로 특목고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좀 더 편안하게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것이 길게 삶을 행복하게 보내기에 좀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내 피를 물려 받았다면,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도 안 가겠다고 방방 거릴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학교 안 간다고 그냥 버텼다. 몇 달 간을 그냥 집에서 아프다고 버텼다. 학교 가자고 하면, 죽는다고 버텼다. 절대로 공부하라는 얘기나 복잡한 얘기 안 한다고 다짐을 받고서야 2학기 때에나 겨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두 아이들이 만약 나를 닮았다면,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도 죽어도 안 간다고 버틸 가능성이 높다. 특목고? 학교도 자퇴한다고 하기 딱 좋을 성격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졸업 한 학기 남겨두고 좌퇴한다고 방방거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마음도 진심이었다.

그냥 고분고분하게, 학교 보내주면 고마워하고, 학원 보내주면 더 고마워하고... 나의 유전자는 그렇지 않다.

뭔가 이유도 없이 잘난 척 하고, 뭔가 가르치려는 사람들, 꺼져...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나의 아이들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편하고, 조금이라도 즐겁게...

지금도 수틀리면, 꺼져... 다 필요없어.

이렇게 살면, 돈도 많이 손해보고, 세상 살이도 많이 손해보지만, 속 마음만큼은 편하다. 그렇게 해도, 하루 세 끼 입에 밥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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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는 '경차 타면 멋진 나이' 쪽으로 가기로 했다. 기아 차 출고 자료를 받아봤는데, 경차를 제일 많이 타는 건 40대고, 그 다음이 50대. 남녀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고, 20대와 30대가 많이 탈 것이라는 건 통계상으로는 그냥 생각. 신차 기준이라서 중고차까지 포함해서 보면 약간 바꿀 수는 있겠지만,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경차를 구매하는 데, 성별효과, 연령효과, 가격효과로 나누어 본다면, 성별효과와 연령효과는 별로 없고, 가격 효과가 가장 커 보인다.

원래는 '개수작과의 결별'이 가장 땡겼는데, 나라고 특별히 지난 습과의 이별, 뭐 이런 드라마틱한 일을 한 것은 별로 없다. 그리고 드립다 욕하는 것도, 이젠 별로다. 욕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가급적이면 유머 코드를 많이 쓰고, 돌려돌려 말하는 방식을 써볼까 한다.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서로 같이 고민을 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50대 에세이는 일반적인 50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흔히 386이라고 불렀던, 이래저래 욕 디지게 먹는 바로 그 나이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 아쉬운 점과 안타까운 점도 공존하고, 불가피성과 가능성 같은 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꼭지는 여러 개 잡아놓기는 했는데, 앞의 책에 밀려서 이제 써야 한다. 50이 되면 진짜로 어떤 느낌이 들까? 그런 얘기를 담담하게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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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법?



둘째는 태어날 때 많이 아팠고, 작년에 많이 아팠다. 폐렴으로 몇 번을 입원했다. 요즘은 아이 보는 게 제일 큰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나머지 일을 한다. 안 남으면? 애들 어린이집 가고, 오고 그게 제일 큰 일이다. 나머지는 그 때 그 때 상황 봐서 한다.


 


첫 책이 <아픈 아이들의 세대>였다. 인생이란, 거기서 거기다.


 



아팠던 둘째랑 요즘 아주 많이 놀아준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잘 때도 나한테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젠 제법 살도 올랐다. 한동안 백분위 체중표로 하위 5%였다. 1년 넘게 죽여라고 먹였더니 이제 중간 정도 간다. 시간 나는 대로 놀이터 같은 데 데리고 나가서 뛰어놀게 한다. 이젠 제법 잘 뛴다. 올 겨울만 잘 보내면, 이제 한시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지난 가을에도 폐렴기가 있었고, 올 봄에도 있었다. 체중이 좀 느니까 아픈 것은 마찬가지만 그래도 자기 힘으로 좀 버티는 것 같다.


 


1.


저자로 책을 쓴 게 이제 10년이 넘는다. <88만원 세대> 때부터 해도 10년이다. 그 동안에 엄청 잘 판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과학이나 경제 분야에서는 가장 오래 버틴 축에는 드는 것 같다. 중간에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기는 했는데, 오래 못 버티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버틴 게 아니라, 다른 할 게 별로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다 보니까 가끔 책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때마다 손사레를 친다. 내가 무슨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에 남을만한 그런 기발한 책들을 늘 쓰는 것도 아니다.


 


대학원 들어갈 때의 일이다. 처음에 파리 8대학에 원서를 냈고, 그 다음에 파리 10대학 시험을 봤다. 이 시험은 죽을 뻔하다가 겨우 붙었다. 그 시험에서 꼴지가 아니라는 사실만 내가 안다. 3달 준비하고 붙었으니까, 붙고 나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등록하고 바로 서울에 가서 입학 때까지 놀다 왔다. 갔다 오고 나니까 8대학 합격통지서가 와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냥 10대학에 갔다. 8대학은 시험은 따로 안 보고 논문 계획서만 가지고 평가했다. 그 때 날 합격시켜준 양반이, 프랑스에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미셀 보였다. 정작은 자기 책보다는 '논문 쓰는 법'이라는 책으로 아주 유명해진 사람이다. 대학원, 박사과정 때 논문 쓰면서 누구나 그 책을 한 번쯤 본다. 각주 다는 법 등 기능적인 일들을 설명해놓은 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 과정은 아주 젊은 부교수랑 같이 하게 되었다. 외부에는 아주 강성이고 근본주의자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양반이 돈을 벌게 된 것은, 우리 식으로 치면 회계사 시험 인문용 참고서였다.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 사상사 전공한 사람이지만, 그도 자식을 낳고 버틸 때까지 회계사 분야에서 강사도 좀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걸 정리한 수험서 책이 빅히트를 쳤다.


 


나를 가르친 사람들이, 소소하고도 별 거 아닌 얘기로 잘 팔리는 책을 쓴 사람들이다. 물론 그 사람들의 전공서는, 돌아버릴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실험주의적 국가>라는 책은, 진짜로 실험적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형광펜을 몇 개를 동원해가면서 읽었다.


 


실용적인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혹은 잘 읽히는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들도 극단적인 실용서들을 쓰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걸로 돈을 좀 벌어서, 딴 데 손 벌리지 않고 자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것 치고는, 내가 엄청나게 실용적인 책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2.


책을 쓰는 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내가 유별나거나 특출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로서 오래 버티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다. 이건 미리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성격이 아주 더러워서 생긴 일이다. 남들 다 한다고 해도, 싫다면 안해아주 성격 더럽다.


 


내가 한 것은, 특출나거나 특별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모르는데, 내가 책을 많이 내던 시절에는 사재기도 좀 있었고, 지금 보다는 마케팅이 많았다. 알게 모르게, 자기 책 사재기를 부탁하는 저자들도 좀 있다고 들었다. 그런 건 안했다. <88만원 세대> 때에는 작은 출판사이기도 했지만, 첫 책을 내는 출판사였다. 뭔가 하고 싶어도 하는 방법도 몰랐고, 할 돈도 없었다.


 


그냥 남들 하는 기본 정도, 어떤 때에는 그 기본도 못했다. 그냥 내놓고, '내깔려둔다', 그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강연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는 다를 수도 있다. 강연도 거의 안 했다. 책 나올 때 출판사에서 부탁하는 몇 건 정도나머지는 시민단체가 하는 행사나 도서관 행사, 혹은 내가 신세진 사람들에게 오는 부탁. 대학에서 강연요청이 오면 여건 닿으면 할려고 한다. 그 정도다. 이런 강연은, 대부분 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시민단체 특히 지방에서는 이렇게 사람들 모으면서 회원조직이나 활동조직들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주 시간 안 맞는 경우 아니면 가려고 한다.


 


강연에서 돈을 버는 방법이 따로 있기는 하다. 이것도 시장이라고 한다면, 대기업 사원연수나 비슷비슷한 경제단체들 모임, 이런 건 돈이 된다. 직업으로 쳐도 이 시장은 한 번 뚫고 들어가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물론 많은 돈이라고 해봐야 몇 억원대지, 그 이상은 아니다. 이런 건 안 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얘기 실력도 늘고, 따로 준비할 것도 없는 편안한 강연이다. 그래도이건 내가 싫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책으로도 먹고 살아? 넉넉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하면 세 끼 밥은 입에 들어간다. 강연하면 더 돈 많이 벌지 않아?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그냥 취직하는 게 낫다. 나중에는 몰라도, 아직은 오라는 데가 좀 있다.


 


보람을 포기하고 생기는 돈은, 그렇게 달지 않다. 명분을 포기하고 생기는 실익은, 편안하지 않다.


 


3.


가만히 있으면 누가 알아줘? 책을 내놓고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좀 돌아다니면서 알리라는. 물론 나도 그런 걸 아주 안 하지는 않지만, 내가 먼저 뭘 하자고 제안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용적인 이유다. 아주 기발한 거 아니면, 해봤지 별 소용없다. 괜히 힘만 들고, 모양만 빠진다. 그러다보니, 그냥 원칙주의로 사는 게 제일 낫다.


 


좋은 책은 팔리고, 아니면, 좋은 책이 아니다.


 


아주 간단한 원칙만 정하고, 그 정해진 원칙을 어지간해서는 지키는 것, 그게 오래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칙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는? 그 땐 비겁하게 변명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 원칙을 깨는데 익숙해지면, 나중에 존재가 지워진다. 왜 출발했는지, 그 생각 자체가 사라진다.


 


그냥 가만히 있고,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 그게 최선의 전략이다. , 이 정도면 전략도 아니라 무대책인데, 그것이 사실은 가장 오래 가는 기본 전략이다. 가만히 있으면 '양서'로 도서관 사서들이 인지를 하고, 도서관에서 좀 사준다. 그거 가지고 돼?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버킷 리스트'라는 용어를 사람들이 쓴다. 나는 '버킷 리스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산 것 같다. 하고 싶은 것, 없다. 되고 싶은 것, 없다. 그 대신 아주 빼곡하게, 하면 안될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대개는 지킨다.


 


최근에 내가 하지 않을 것에 두 가지가 추가로 들어갔다. 방송 진행자와 고정, 그리고 예능 방송.


 


이유는? 그냥 애 보면서 차분히 앉아서 생각하는 삶이 너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불필요한 욕망이 자꾸 생긴다. 화려함을 구하고 살아본 적이 없는데, 속성상, 자꾸 화려함을 구하게 된다. 예능도 아주 안했던 건 아니다. 단기성으로는 한 적이 몇 번 있고, 생방송도 오래 했었다. 하다하다, 아침 방송도 했던 적이 있다.


 


그냥 쭈그리고 앉아서 책 보고, 사람들하고 토론하고, 글 쓰고, 이게 더 생산적이다.


 


4.


다른 저자나 작가들을 만나면 다들 하는 얘기가, 책 시장의 어려움과 시대에 맞지 않는 책의 단점에 관한 것들이다. 아러 아러, 진짜로 그런 얘기가 목까지 나온다. 틀린 야기도 아니고, 이상한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에서 사회적인 뭔가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매체 중에서, 책이 가장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음주 용어로 하면, '장타자'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예전에는 유명한 장타자였는데, 요즘은 극단적인 단타자로 바뀌었다. 애들 키워봐…)


 


방송으로 치면, 일일방송이 있고, 주간방송이 있다. 이 템포는 진짜로 숨 넘어간다. 모든 것들은 12시간 단위 혹은 24시간 단위로 움직인다.


 


회사는 보통은 월간 단위로 움직인다. 제일 중요한 것이 월간 실적이고, 월간 단위의 회의가 중요한 의사결정체가 된다.


 


공무원들은 보통 주간단위로 움직인다. 별 실적이라는 게 없지만, 주간 회의에서 중요한 것들이 결정된다.


 


국회는? 정치권은 이틀 단위로 움직인다. 보통은 월수금 오전에 최고의원 회의가 있다. 많은 사이클은 그 최고의원 회의에 맞추어진다. 이틀 지난 얘기는, 벌써 과거형이다.


 


주기가 짧아지면 더 다이나믹해질까? 남들 다 아는 걸 자기만 모르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난다. 뭔가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축적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신문도 24시간 단위로 움직이지만, 가끔은 기획기사 같은 것을 한다. 길게 보면 한 달 단위 정도 된다. 언론이 가장 길게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이다. 그것보다 뒤의 얘기를 하면, "그 때 가서 얘기합시다",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MB나 박근혜가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것 중의 하나가 TV 다큐가 있다. 길면 두 달, 보통은 한 달에서 한 달 반 주기로 움직인다. 가끔은 6개월에서 1년씩 가는 장기편성이 있기는 한데, 이건 그야말로 특별편성, 해외 장기취재로 4부작, 6부작 같은 것을 할 때의 일이다. 보통의 PD나 촬영감독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책은 짧으면 2, 길면 3~4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사회에 관한 얘기를 하는 매체로는 장타자, 아니 최장타자 정도가 된다. 2년 전에, 2년 후에 필요한 얘기를 생각해서 그 때 움직인다. 2년이 지나도 이 문제는 안 바뀌어! 그럴 때 책 준비가 시작된다.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사람들이 책을 내는 것 아니겠는가?


 


보통의 경우, 방송이나 신문은 다람쥐의 덫에 걸린다.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사실은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다. 최장의 호흡은 책이 가지고 있다 (물론 책의 단점은, 아주 일부를 제외하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니까 호흡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줄여가면서 최소한의 지출만.)


 


책을 쓰는 것은, 선경지명의 힘에 있지 않고, 버티는 힘에 있다. 누가나 가끔씩은 선경지명의 순간이 온다. 전혀 안 오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찰라의 순간을 가지고 실제로 책을 준비하고 쓰고, 그리고 누군가 알아봐주는 시간까지 가는 것, 버티는 힘이 사실은 책을 쓰는 기술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책도 기술의 영역이 조금 있는데, 이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게 된다.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버티는 힘, 이건 진짜로 초장에 포기하는 사람과 달인의 영역에 가는 사람,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뉘어지는 것 같다.


 


이거 문제다, 생각하고 2~3년을 버티고, 다시 또 2~3년을 버티는 것, 그게 책을 쓰는 노하우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왜 그 지랄을 해?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위해서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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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얼굴 쳐다보는 거 사실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블로그 대표 사진은 바꾼지 얼마 안되는데, 사실 별 생각 없이 파일 크기 맞는 걸로, 그냥 잡히는 대로 걸었다. 거의 방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러다 자꾸 내 얼굴 보니까 우울해질려고 한다. 그냥 얼마 전에 큰 아이 읽어주느라고 읽은 동화책 표지를. 별 의미는 없지만, 내 얼굴 보고 있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바꾸는 김에, 페이스북 사진도. 몇 달 전 제주도 갔다오면서 찍은 아이들 사진인데, 그냥 오늘 강화도 가서 아무 생각없이 찍었던 사진으로. 역시 별 의미 없다.


1년 좀 넘게, 진짜로 돈이 부족해서 쩔쩔 맸었다. 몸부림을 쳤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진짜 몸부림을 치면서 살았는데, 이제 그 시기도 거의 끝나간다.


정말로, 아무 것도 안 했다. 아무 것도 안 사고. 그리고 일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경우 아니면, 아무도 안 만났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부림을 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50대 에세이집 준비를 하면서, 부제로 '절대 자유는 절대 겸손에서', 이런 말을 생각했다. 뭐, 꼭 그 부제를 쓰겠다는 건 아니다. 별 이유 없이, 그런 제목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남 신경 쓸 일도 아니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 일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어깨에 힘 빼고, 하고 싶은 대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요즘 청년들에게 어떤 어감으로 느껴질 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 자유'라는 표현이 좋다. 헤겔 용어에서는 '절대'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반대말은? 아마도 '악' 혹은 '악무한' 정도가 될 것 같다. bad infiny... 여기에 댓구해서 절대라는 말이 사용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불교적이기도 하다. 요 구절만 떼어놓고 보면, 얼마 전에 읽은 능엄경 얘기와 비슷하기도 하다 (말년의 세종이 능엄경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 같고, 그래서 새로만든 한글로 최초로 번역한 책이 능엄경이기도 하다.)


이제 50이다. 지켜야 할 것도 많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 기타 등등. 마음이 무거웠다.


근데 절대 자유라는 말을 생각한 다음부터,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약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하던대로, 돈 조금 더 벌고, 애들 조금 더 잘 키우고, 에 또 에 또, 약간의 허세를 가지고, 그리고도 좀 넉넉하면서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어어, 그리고 또 조금은 착하게, 에 또 그리하여...


요런 게 다 개수작이다.


자기 두 다리로 자기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질 수 있는 책임의 전부다. 그 외의 책임은, 사실 아무도 못 진다.


절대 자유, 그 정도 삶이면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을 문득.


그러면 진짜 <월든>처럼 그렇게 고독한 사색의 길을?


그런 건 아니고, 카메라를 다시 집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동안 늘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가 여의도 가면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닌데, 워낙 검색대를 많이 통과해야 하니까 가방도 안 가지고 다니고, 그냥 몸만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차도 없앴다. 이래저래, 카메라를 내려놓고. 또 마침 센서 청소도 해야 하는데, 이래저래 귀찮아져서 그냥 내려놓게 되었다.


당장 카메라를 바꾸거나 그럴 건 아니고,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다시 집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뭐, 그렇게 좋은 카메라는 아니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 정도도 감지덕지.


요즘 나오는 카메라 스펙을 보니까, 어마무시, 입이 딱 (안 갖고 싶다면 거짓말.)


원래 인생에서 최고 남는 것은, 얻어 걸리는 것이다. 마치 뭔가 엄청난 준비를 하고 기획을 하면서 세세하게 계획한 것 같지만, 그런 건 대부분 사후적으로 갖다 붙이는 얘기들이고, 진짜로 의미 있는 것은 얻어걸리는 것.


근데, 이 얻어걸리는 것도 무조건 적인 것은 아니고, 약간의 조건들이 필요한 것 같다. 뭘 좀 해야, 하다보니까 얻어걸리기도.


그 얻어걸리는 일이 자주 벌어지게 하는 것, 그것을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유롭지 않으면, 얻어걸리는 건 없다. 준비한 것만 꾸역꾸역, 진짜로 몸부림이 몸부림을 다시 낳는다. 힘만 들고, 억지로 억지로.


그리고 그 얻어걸리는 확률을 좀 더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이 전제조건을 떼고, 뮤턴트가 등장하기 편한 상황을 최대로 하는 것, 그것을 '절대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 좋은 점은?


늘상 보던 것을 조금은 더 신경 써서 보게 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딴 생각이 들게 된다.


그냥 눈으로 잘 보면서 생각하면 안돼? 그건 천재들이 하는 거고, 나는 절대로 천재 아니다. 기계의 도움도 좀 받고, 장비의 도움도 좀 받는 스타일이다. 왜냐? 난 평범하니까.


카메라를 통해서 보고, 사진을 통해서 보면 현장에서 있던 느낌과는 다른 각도, 다른 형태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자꾸 하다보면 카메라 없이도 그런 경지?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기는 좀 어렵고.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만드는 일을 좀 더 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블로그든 페이스북이든, 눈이 가게 되고, 생각을 고정하게 되는 사진들을 치워버렸다. 아주 약간의 느낌만 남고 담백한 것. 그래야 눈이 자유로와지고, 생각도 자유로와질 것 같은, 그런 느낌적 느낌.


열심히 한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참 잔인하다.


그렇지만 좀 맘 편하게 생각하면 가끔 얻어걸리는 게 있다. 그래서 살만하다.


이런 점에서 세상이 공평하지는 않다. 몸부림을 치면서 살려고 해도, 결국 개수작으로 종료되는 잔인함이 있다.


그렇지만 가끔은 얻어걸리는 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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