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드루스와 오드리 햅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경쟁자 관계였다. 당시 몇 개의 뮤지컬 영화에 주연 오디션을 통해서 서로 경쟁을 했었는데, 대체적으로 이 시기에 나온 영화들은 다 재밌다. 둘 다, 한 옥타브 정도의 음역을 가지고 있어서 요즘 같으며 황당하다 싶겠지만. 문 리버는 특히나 음역이 좁은 오디리 햅번을 위해서 특별 작곡한 노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노래야 당연히 줄리 앤드루스가 잘 부른다고 생각을 하지만, 어디 뮤지칼이 노래만 가지고 하는 건가. 오드리 햅번은 발레리나 출신이라서 춤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화니 페이스>에서 본 오드리 햅번의 춤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마 영화사가 더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춤 잘추는 여배우가 다시 나올까 싶다.

 

이제 그들이 한참 경쟁하던 시기에서 다시 50년 가까와진다. 배우의 개인적 영광으로 본다면 오드리 햅번의 완승이다. 그는 이디오피아 등 기아 문제의 맨 앞에 서서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야말로 배우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수년 전 다보스 포럼에서 마돈나와 안젤리나 졸리가 누가 다음 세대의 햅번 역할을 하느냐를 가지고 신경전을 벌인 적도 있다만... 둘 다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흥행에서는 줄리 앤드루스의 매력이 가장 끝까지 나온 <사운드 어브 뮤직>의 완승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역대 최대였는데, 이걸 넘어섰고, 여전히 잘 팔린다.

 

사운드 어브 뮤직, 예전에 LP만 두 장을 샀었고, 한 장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디지탈로 전환된 이후 화질을 개선해서 새로 DVD를 냈는데, 이것도 샀다. 그리고 아직 CD라는 양식을 팔고 있을 때, ost도 다시 하나 살까 요즘 고민 중이다.

 

영화를 처음 본 건, 아마 6학년 때였다. 그 때 단짝 친구 중의 한 명과 요즘은 그냥 한국 유네스코  본부로 쓰는 건물에 있던 극장에서 봤었는데, 그 때도 재밌었지만 수 백번 본 요즘 봐도 재밌다.

 

주말에 아내가 출장을 갔었는데, 그 동안에 내내 이 영화만 보고 또 돌려보고.

 

어른이 되면 볼 일이 없을까 싶었는데, 몇 년 전부터 스위스 경제가 내 연구범위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물론 영화 스토리는 좀 너무 낭만적이기는 하다.

 

그 당시 나온 꽤 많은 2차대전 영화가 오스트리아나 프랑스 같이 알프스를 접한 지역에서 스위스로 도망가면서 끝나는 것들이 좀 있다. 알려진 영화들도 있지만, 그냥 별 볼 일 없는 B급 전쟁 영화 중에서도 그런 스토리인 것들이 꽤 있었다.

 

많은 영화들은 스위스로 넘어가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모습 아니면 눈 덮힌 만년설을 죽을 고생을 하면서 넘어가는... 거기에서 대개 끝난다.

 

내가 찾아본 역사책들에서는, 스위스는 당시 농업 생산량의 문제로 헐벗었는데, 워낙에도 가난하던 나라에 전쟁으로 무역이 끝나고, 일년의 6개월 밖에 농사지을 수 없던 이 지역에 유럽 난민들이 몰려드니까 문제가 생겨났다. 엄청나게들 배가 고팠던 것 같고, 밀려든 난민들을 추방한 얘기들도 많이 나온다.

 

스위스는 농업 지키기를 국민투표로 결정했는데, 이 때의 논쟁들을 뒤져보면 2차세계대전 때의 배고픔, 그리고 그 시기가 언제 또 올지도 모른다는. 우리는 그 시기에 그렇게 배고팠다고 하면서도 농업의 중요성은 애시당초 안드로메다로 보낸 것 같기도 하다.

 

스위스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게 된 것은 60년대 이후의 일이고, 대체적으로 유럽의 최빈민 국가 중의 하나였다.

 

어쨌든 스위스에 대한 연구를 하다보니, "우리는 스위스로 간다"는 간단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가 또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영화 내에서 노래는 수녀들의 노래와 폰 트래프 대령일가의 노래, 그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나는 수녀들의 노래 쪽을 훨씬 좋아한다. 도레미송 하나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다시 본다거나 아니면 ost를 내내 걸어놓고 있으면 좀 지겹겠지만, 수녀들의 노래를 좋아하면 정말 한 곡도 그냥 넘어가기 싫을 정도로...

 

요즘은 <매리 포핀스>를 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린이용 뮤지칼이라고 그냥 넘어가기 쉽지만, 생각보다 재밌고, 요즘 명박네 사람들이 보면 "뭐, 이런 좌파 영화가 다 있어" 할 정도로 선동적이고 투쟁적이다. 첫 장면이, 당시 막 시작한 여성주의자들이 집회에 나가기 위해서 결의를 다지는 장면이다. 디즈니가 본격적으로 생난리를 치기 전에는 어린이용 뮤지칼 같은 것들에도 어른들이 열심히 나름대로 자신의 코드들을 숨겨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게 70~80년대 지나면서 미국의 건국신화들과 엮이면서 '접경' 그리고 '가족', 두 가지 정도의 코드로 진짜 이념 영화들이 되었다.

 

가끔 팀 버튼이 삐딱선을 타기도 하지만, 그도 돈을 벌어야 다음 작품을 하는지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다시 전형적인 디즈니풍의 영화도 만든다.

 

줄리 앤드루스는 보이기는 그렇게 안 보이지만, 단순하게 "미국 만세"를 외치는 그런 바비인형풍 배우는 아니다.

 

아내는 도대체 왜 그걸 보고 있느냐고 했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 1편, 2편, 전부 다 재밌게 보았다. 여전히 여배우들이 춤과 노래에 달통했던 60년대의 기본 가락꾸를 잘 보여준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1편은 DVD를 구할 수가 없었고, 2편은 막 살려고 하는데, 아내가 도끼눈을 뜨고 봐서 못 샀다. 상징이라는 눈으로만 본다면, 이 2편은 B급 영화로서는 아주 우수한 비판의 삐딱선을 잘 타고 있다.

 

여기에서 왕비가 줄리 앤드루스였다. 슈렉의 왕비 목소리도 줄리 앤드루스이다.

 

상상을 해보자. 만약 고현정이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다면...

 

최근에 비타민이라는 가수가 피아노치면서 노래 부르는 걸 바로 옆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간만에 보는 미성이고, 드물게 느낌있는 목소리였다. 그가 춤추면서 연기도 할 수 있다면...

 

그런 걸 다 모았던 게 오드리 햅번과 줄리 앤드루스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얼마 전에 브로드웨이쇼를 정식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최근 브로드웨이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헐리우드 진출이 확정되어있다는 어느 여가수의 노래는... 우와, 잘 부르기는 정말 잘 부른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똑 소리나게 불렀다.

 

브로드웨이에서 대충 뒤에서 춤추다가 가끔 노래부르는 사람들이 1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10대 후반이 되면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너무 기능인 위주로 브로드웨이가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좀 받앗었다. 그러니 영혼없는 마네킹이니, 바비인형이니, 그런 볼멘 소리들이 비평가들 목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사운드 어브 뮤직이 세계적으로 아직도 힘을 쓰는 것은, 이게 65년 영화이지만 당시 그 냉전의 한 가운데에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혹은 소비에트냐 미국이냐를 선택하라는 그 논쟁에서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나찌와 나찌가 아닌 것, 그 사이의 갈등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독재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인류 최후의 질문일테니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합창 대회이다. 집단적으로 박수를 치고 즐거워하던 그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본 트래프 대령의 탈출을 희망하며 도와주던, 일종의 공범과도 같은 대중이다. 수녀들만이 아니라 같이 대회에 참가했던 다른 합창단도 일종의 공범들이기는 하다. 시간 끌기...

 

요즘의 KBS는, 어떻게 보면 찰츠부르그에 열렸던 합창대회와 같은 구조일지도 모른다.

 

명박을 위한, 명박만을 위한, 그리고 명박만을 위한.

 

그게 요즘 KBS 아닌가? 그 와중에 본 트래프 대령 일가들이 가끔 나와서, So long, fare well, aufwiedersehn, 그런 노래들을 부르면서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혹은 에델바이스 같은 노래들을.

 

시청자들은 알아서 박수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지만, 사실은 탈출을 은근히 도와주려고 하는 그런 공범 구도?

 

도레미송과 에델바이스는 사운드 어브 뮤직이 세계에 남긴 두 개의 대표적인 곡이다.

 

우리 시대의 에델바이스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에 어느 라디오에 꽤 길게 나간 적이 있었는데, 신청곡을 틀어준다고 해서...

 

보통 라디오에서 신청곡을 받을 때에 내가 늘 쓰던 음악은 이상은의 '슈퍼소닉'이라는 곡이었다. 얼마 전에 마포 FM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었다.

 

사장님이, 아주 유명한 명박네 분이라서...

 

고를 곡이 너무 없어서, 결국 임재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추노> 주제가이다. 진짜 꼬투리 안 잡힐려고 나도 별 걸 다 신경쓰는 경향이 있다. KBS 드라마 아냐? 추노를 비롯한 KBS 몇 개의 드라마가 시청률이 상당히 잘 나오면서 명박네 사장님들의 경영성적표가 꽤 좋게 나와서, 입들이 찢어지실 지경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에델바이스는, 결과적으로 파시즘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30년 이상은, 파시즘과 싸웠던 제 3세계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졌었다. 나는 박정희 시절에 초등학교를, 전또깡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소풍 같은데 가면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선생님들이 꼭 한 분씩은 계셨다.

 

영어 선생님도 부르고, 국어 선생님도 부르고.

 

말하고 싶지만...

 

그 애뜻함의 의미를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은유가 가지는 힘... 사운드 어브 뮤직은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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