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호칭을 별로 안 좋아한다. 한국은 약간 미성숙 사회다. 때가 되면 독립하고, 성숙하고, 그렇게 일반적인 리듬과는 좀 달리.. 나이 먹어도 자꾸 아이라고 부른다. 부모만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온 사회가 다 그런다. 조금만 높은 자리에 가면 “우리 애들”이라고, 자기 직원들을 그렇게 퉁쳐서 부른다. 

처음 ‘아이’라는 호칭에 시껍했던 게, 교회에서 청년부라는 걸 보면서부터다. 나이 분류도 아니고, 결혼을 해도 아이가 없으면 그냥 청년부에 있는 걸 보고 충격 받았다. 그때부터 가급적 아이라는 표현을 안 쓰려고 한다. 

진보 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고등학교 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은 얄짤 없이 다 ‘애들’이라고 부른다. 애정 표현 아니냐? 내가 본 몇 개의 사례는, 꼭 그렇지도 않다. 별로 학생들에게 관심 없는 교사 몇 명이 꼭 ‘애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청년 문제에는 전문가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려고 했다. 

우리 집에서는 어린이라는 호칭을 썼었다. 두 명을 동시에 불러야 할 때는 “어린이들”, 이렇게 불렀다. 큰 애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 호칭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어린이와 청소년”, 이렇게 부르기는 좀 그렇고. 한동안 어정쩡하지만, “아들들”이라고 불렀다. 너무 젠더 성격 강한 호칭이라서,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당분간 대안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애들아”, 이런 호칭이 너무 자연스럽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으면, 다른 호칭의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독립적이고, 인격적인 호칭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다. 

특히 10대들에 대한 글을 쓸 때에도 이게 문제가 된다. 습관적으로 하면, 그냥 “우리 아이들”이라고 하게 된다. 정겹기는 하지만, 대상을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글 쓰는 사람이 너무 높은 자리에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때로는 위압적인 느낌도 든다. 나는 전혀 선호하지 않는 호칭이다. 그래서 “학생들”이라는 표현을 좀 더 많이 쓰게 된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든 학생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안 가기도 하고, 너무 일찍 부양 의무를 지게도 되어서 고등학교에 못 가는 경우도 있다. 모든 청소년이 다 학생인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이 없어서, 나는 대체적으로 학생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부를 때, “아이”라고 부르는지,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의존적이고, 독립적이지 않게 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오후에 퍈의점에 갔다가, 10대처럼 보이는 직원을 보았다. 나는 내 두 아들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잠시라도 알바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스스로 살아가는 자신감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훈련 같은 것은 될 것 같다. “아이들”에게 편의점 알바를 시키면, 악덕 부모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런 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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