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병원에서 몇 주만에 어머니를 만났다. 이제 치매가 많이 진행되어서 약 먹고도 금방 또 약 달라고 하신다. 건보에서 실사 나왔을 때에 구구단을 물어봤는데.. 우와, 구구단은 정확하다. 

담당 의사 소견으로는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그렇다고 한다. 다른 병원에도 갔었는데, 거기서도 우울증이 심해서 진단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기는 한데.. 선거일 언제냐고 물어보신다. 집에서 어머니는 늘 TV조선 틀어놓고 계신다. 보궐 투표일자랑 자세히 알려 들었다. 어머니랑 같이 지내는 둘째는 못 본 척 한다. 보나마나 어머니는 윤석열 찍는다. 병원 간다고 몇 주만에 겨우겨우 집에서 나왔고, 오고 가는 거 둘째 동생이 혼자 못 하니까 나까지 온 건데.. 그 와중에 선거일 물어보신다. 어머니는 투표를 하러 가실 수 있을까? 차 없으면 집 밖으로 못 나가신다. 너무 오래 누워계셔서 이제 허리도 많이 아프시다. 병원에도 겨우겨우 오신.. 그래도 투표는 하시고 싶으시단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이번 대선에 관심이 아주 많다. 태권도장 앞에 이재명 유세차가 와서, 아주아주 신기하게 구경한 적이 있던. 둘이서 토론을 막 하더니, 큰 애는 이재명 지지한다고 했고, 둘째는 심상정 지지한다고 했다. 둘째한테 물어보니까 일 잘 할 것 같다고 한다. 얘들이 좀 더 커서 중학생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더 커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역하면서 살았다. 우리 집 친가, 외가 다 털어서 내가 처음 나온 좌파다. 어머니의 큰 오빠는 6.25 때 학교에서 북으로 끌려갔다. 그 일로 외할아버지는 속상해 하시다가 어머니 고등학교 들어가시자마자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외가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외할아버지를 닮았다고들 했다. 다른 건 아니고, 반곱슬인데, 외할아버지의 손자 중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반곱슬이다. 북에 끌려간 당신의 큰 아들을 생각하면서, 결국 오래 못 사시고 일찍 돌아가셨다. 

부모님하고는 정치 얘기는 거의 안 한다. 아니, 아무 얘기도 안 한다. 아버지는 딱 한 번 진보신당 시절 노회찬 서울 시장 나왔을 때 노회찬 찍으신 적이 있다. 특별히 찍으라고 한 적은 없는데, 내가 돈 손해를 너무 볼 것 같아서 찍으셨다고.. 그 후로는 평생 노회찬 욕 엄청 하신.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집에는 일부러 안 갔다. 

생각하다 보니 다시 열 받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내가 유학 간다고 할 때 정말로 몇 번 우셨다. 그냥 공무원 하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아버지는 내가 학위 받기 전에는 학위 못 받고 국제 미아가 될 거라고 하셨고, 학위 받고 난 다음에는 취직 못 할 거라고 하셨다. 지금도 공무원 하지 않고 공부한 거를 평생의 한으로 생각하신다. 

이번 선거에는 정작은 내가 문제다. 윤석열과 안철수가 단일화한 이 시점에도 아직 누구 찍을지 못 정했다. 녹색당 당원이다. 녹색당에 후보 나오면 이번에는 군말 없이 찍을 생각이었는데, 녹색당 후보는 없다. 그 다음 순위로 미래당인데, 이 사람들이 초장에 김동연 캠프로 합류했다. 난감하네. 

그래서 별 명문도 없이, 적당히 누군가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냥 이백육 찍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너무 잘 모른다. 그리하여, 아직도 나는 누구 찍을지 잘 모르겠다. 복잡한데, 그냥 처음으로 투표 표기할까, 그런 생각도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오늘 오전의 고민도 끝, 점심을 뭐 먹을까 잠시 생각을 했다. 그 고민은 1분도 안 되어서 정리되었다. 해먹을까, 나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물냉면 먹고 싶다.. 결정 끝. 정치는 집밥과 냉면의 고민보다는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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