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앨범을 들었다. 정태춘 앨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2002년,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이다. 그 시절에 두 개 앨범 다 많이 들었다. 그 중에서는 <오토바이 김씨>를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마침 그 시절에 문정동에 살고 있었다. 배달 가는 오토바이 김씨는 잠실에서 시작해서 성남으로 간다. 그 때 내가 주로 움직이는 동선이었다. 용인에 있던 에너지관리공단으로 가는 출근길이 딱 그길이었다. 그 시절에 내린 큰 결정이 아내와 결혼하는 것과 공단을 그만두고 책을 쓰는 것이었다. 그 시절엔 그랬다. 

첫 차 앨범은 그 뒤에도 종종 들었는데, 92년 장마는 거의 안 들었다. 2년 전인가, 강원도에 강연 갔다 오면서 차 안에서 너무 졸려서 이것저것 듣다가 간만에 들었다. 그리고 어제 대전에서 밤 늦게 돌아오면서 다시 한 번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졸려서. 

92년 장마 종로는 음악적으로도 훌륭하고, 사회적으로 훌륭한 앨범이다. “나 살던 고향”은 생태적 가치 평가와 관련해서 글도 쓴 적이 있다. 뭐, 지금 들으면 가사들이 좀 그렇지만, 해금이 사용된, 나름대로는 내게는 여러 감정을 주는 노래였다. 

그래도 이걸 선뜻 잘 듣기 어려웠던 것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그렇다. 1992년, 30년 전이다. imf 경제위기는 물론이고, 김대중 집권도 이루어지지 않은 ys 시절의 얘기다. 음악은 리듬감이나 구성이 지금 들어도 모던한 느낌을 주지만, 노래 안의 얘기는 그렇지 않다. 

시청 광장에서,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시대 감성이라는 게 있다. 나는 80년대에서 나오고 싶은데, 기껏 나온 게 92년에 멈추어 서있다고 하면 좀 무섭다. 그래서 일부러 피했다. 그래도 그게 내 감각이고 정서라서, 들으면 좋기는 하다. 

정태춘의 노래 가사에는 패배가 일상화되어 있다. 90년대 초반 정서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노태우가 대통령이던 시절이다. DJ는 물론 YS도 아직 대통령이 되지 않던 시절.. 

참 모순이다. 90년대는 커녕, 50년대 엘라 피츠제랄드 노래나 그보다 더 먼저 나온 재즈들은 그렇게 잘 들으면서, 시대의 변화라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정태춘이라서 그런 것 같다. 정태춘, 참 말 많이 하기는 했다. 노래 안에 얘기들이 가득하다. 30년 지난 그 얘기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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