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된 하루다. 저녁 때 집에 돌아왔더니 단내가 입에서 풀풀 난다. 

원래 오늘은 이렇게 고된 날이 아니었다. 오후에 성남에서 주로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사람들과 좌파 에세이 모임을 하나 하면 되는 널널한 날이었다. 

몇 년간 어머니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이 원래 약속된 날에 휴가를 가게 되면서, 급하게 새로 일정을 잡으면서 아침 일찍.. 

둘째가 4달에 한 번 약 타는 그런 늘 가던 것과 같은 거라고 정말로 몇 달만에 어렵게 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오기는 했는데.. 오늘은 건보 요양등급 절차 중 하나인 의사 소견서 받기 위한 진료 보는 날이다. 병원에서 어머니를 만나기는 했는데, 내가 나타나는 순간, 어머니는 기분 확 안 좋아지셨다. 뭔가 있는 거야.. 

인지검사를 해야한다는데, 이런.. 그건 병원에서 하루에 세 명밖에 못한단다. 뭔가 있나, 신경 잔뜩 세운 어머니를 기만(!)하면서, 결국 의사가 소견서는 오늘 써주기로 했고, 인지검사는 세 달 후, 결과는 다시 그 한달 뒤. 한 시간 넘게 병원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의견 청취, 그런 거 한 뒤에 겨우 일정이 끝났다. 둘째 동생과 어머니 태우고 화곡동 집으로 모셔다 드린 후.. 

88로 서울을 죽 관통해서 다시 성남으로.. 요즘 먼 거리는 전기차 타다가, 간만에 모닝으로 긴 거리를 달렸더니, 아이고 액셀이 빡빡하다.. 엄청 밟아야 겨우 80키로 나오네. 

예전에는 성남에 이래저래 올 일이 많았는데, 언제 마지막 왔더라.. 곰곰 생각해보니까 이재명 성남 시장하던 시절, 시장실에 몇 번 온 적이 있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뒤에 한 번 더 왔었나,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작은 모임이라서, 정말 속닥하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성남에서 집에 오는 길이 이리 멀었나? 문정동 살던 때에는 정말 성남은 한걸음 거리였는데, 우와 수서부터 더럽게 막힌다. 오늘 같이 힘든 날은 더 막히는 것 같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노을이.. 이런 날엔? 딱 장현의 <석양>이 생각났다. LP를 가지고 있는데, 공간 형편상 턴테이블 돌릴 형편은 아니고. 게다가 고양이랑 같이 쓰는 방에 턴테이블 돌렸다가는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 장현을 딱 트는 순간, 그래 이거야, 내가 사랑했던 날들.. 70년대의 그 끈적끈적하 소리. 나의 정서는 아직도 저 곳에 뿌리를 두고 있군, 가슴이 벅차 올랐다. 

참 고된 하루, 어머니랑 몇 달만에 벼르고 벼르다 병원에 갔는데, 진짜 진이 다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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