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방학이다. 코로나로 학사 일정이 개판이라, 겨울방학이 무려 두 달이 되었다. 죽음이다. 결국 아내는 한 달간 육아휴직 냈다. 

돌봄 교실 보내는 대신, 그냥 태권도 특강 좀 더 하고, 그렇게 버티기로 했다. 아이 둘이 같은 특강을 하면 그래도 좀 더 나은데, 얘들도 이제 선호가 생겨서. 큰 애는 체조를 하고, 둘째는 줄넘기를 한다. 10시, 11시, 아침마다 나가는 시간이 다르다. 요일별로도 다르다. 한 시간 간격으로 두 번을 데려다줘야 한다. 아내랑 나눠서 하기는 하는데, 오늘은 아내가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작은 회사라서, 육아 휴직이라고 해도 아주 안 나가기는 어려운가 보다. 

아직 어머니도 집에 계시다. 점심은, 그냥 치킨 시켜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2시에는 줌으로 하는 강연이 하나 있다. 학생상담소 통해서 온 대학생 경제생활 강연인데, 아주 부담스럽다. 무슨 얘기를 해도 비현실적일텐데.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대중들과 얘기하는 것은 아주 힘들다. 내가 하는 얘기들은 보통은 불편한 얘기들이다. 별로 안 하고 싶다. 그래서 에너지가 더 많이 들어가고, 힘이 든다. 나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그래도 참고 하는 게 아주 힘들다. 

2022년, 한국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혐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화가 나 있고, 욕할 대상을 찾는다. 팬데믹이 가져온 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근본적인 것 같다. 화낼 준비를 하고 있고, 틈만 생기면 기꺼이 화를 낸다. 그리고 누군가 “너 화 너무 많이 낸다”고 얘기하면 “아니 저 새끼가 개새끼야..” 그건 20대부터 70대까지, 거의 공통적인 것 같다. 

한국처럼 여성들에게 화를 내는 사회를 본 기억이 거의 없고, 한국처럼 아이들을 증오하는 사회도 못 본 것 같다. 조금 사적인 공간으로 바뀌면, 한국의 여성들이 얼마나 못 된 존재인지, 마이크만 주면 열 시간도 떠들 기세인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도 그렇다. 마이크만 쥐어주면, 한국의 아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못 배우고 막 되먹은 존재인지, 열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도 떠들 것 같은 기세다. 

소파 방정환에 대한 연구를 짧게 한 적이 있다. 그 시절에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이들이라고 하면 무조건 욕부터 하던 분위기였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아동 혐오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기본적으로 아이를 사랑하는데, 그렇지 않은 예외적인 사람이 있다고 관찰하기 보다는.. 다 아이들을 혐오하는데, 그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일부 있다고 하는 게 조금 더 관찰을 용이하게 하는 것 같다. 

이건 생태학에서 접근하는 방법과 같다. 프리데이터와 프레이의 숫자를 세고, 포퓰레이션, 모집단의 숫자를 세고, 그 변화를 보고, 그렇게 특정 생태계의 특징을 잡고.. 그런 특별하게 선호를 개입시키지 않고 보는 생태학적 방법으로 보면, 한국이라는 사회는 기본은 아동 혐오이고, 그렇지 않은 개체군의 숫자와 특징을 파악하는 게 더 빠른 집단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냥 어느 한 사람을 랜덤으로 샘플링해서 그 사람의 하루의 삶을 관찰한다고 생각해보자. 증오에 해당하는 시간, 사랑에 해당하는 시간 그리고 그냥 아무 판단 없이 지나간 시간, 이 세 가지로 나누어서 보면 어떻게 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루틴에 의해서 특별한 판단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가장 많을 거고, 뭔가 감정이 움직이는 시간들이 아주 약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시간은? 뭔가 욕하고 혐오에 들이는 시간이 월등하게 많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다양하고 개성적이며 독특한 이유로 자기가 아동을 증오하고 혐오하게 된, 거의 간증과도 같은 얘기들을 한다. 아니 한국에 이렇게 어린이들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았단 말이야? 

이제야 안철수가 ‘촉법소년 12세’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배경이 좀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는 안철수가 특별히 아동 혐오가 있거나, 어린이들을 더 미워하거나,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튀어나가야 하는 그에게, 가장 예민하고 휘발성 높은 공약이 필요하지 않겠나?

만약 AI에게 한국이라는 모집단을 관찰하고, 가장 민감도 높으면서도 비용이 들지 않는 ‘가성비 좋은’ 공약을 찾으라고 한다면, ‘촉법소년 12세’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범죄 대상을 두 살 낮추는 데에 큰 돈이 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광범위하게 아동 혐오가 퍼져 있는 사회라면, 이 공약은 매우 효과적으로 저렴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저렴한 공약으로서의 유효성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한국의 여성을 혐오하는 이유, 내가 한국의 아동을 혐오하는 이유, 이런 얘기를 하는데, 아주 공을 들여서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저출산과 아동 혐오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개연성만 있을 뿐이지, 입증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경우 부대 상황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과 관계는 알기는 어렵지만, 하여간 두 가지의 사건이 동시에 벌어질 때 그렇게 표현한다. 저출산과 아동 혐오는 부대 상황과 같다. 그냥 두 가지 일이 우연인지, 공교롭게인지, 하여간 한국에서는 같이 벌어지고,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여성과 아동은 가장 손쉬운 혐오의 대상이다. 이게 끝은 아니다. 아동만큼 광범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노인에 대한 혐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 

혐오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에서 개개인이 리스트를 만들어보면, 혐오의 대상은 명확한데, 사랑하는 것은 좀 더 협소할 것 같다. 한국인은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갈까? 

고양이를 가지고 해보면, 고양이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를 그만큼 혐오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어머니가 건강이 아주 심각해져서 2주 전부터 우리 집에 와 계시는데, 그 와중에도 억지로 몸을 일으키셔서 제일 처음 한 얘기가 “저 고양이 갖다 버려랴”였다. 들은 척도 안 하니까 “그럼 방에다 가두기라도 해라.” 그래도 들은 척도 안 했다. 어머니는 화를 내시기 시작하셨다. 아주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고양이를 귀신과 비슷한 존재로 생각했던 예전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냥 문화가 바뀐 것이다. 

모든 한국인들이 거의 예외 없이 좋다, 혹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유일한 대상은 해외 여행이 아닐까 싶다. 

혐오하는 것은 뭐고 사랑하는 것은 뭐고, 이런 것들을 개별적으로 리스트해보면, 개인적 삶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고, 사회적 상황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단은 가장 큰 질문이.. 아동을 혐오하지 않는 한국인은 몇 명인가, 이 질문이다. 이건 찾아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여론조사를 한다고 해도 “나는 아동을 혐오한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이고, 돈을 들여서 여론조사를 하면 헛돈을 쓰는 게 된다. 이 경우에는 아동을 사랑하는 쪽을 세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조사는 아니다. 

2022년 한국인은 보편적으로 아동을 혐오한다, 이렇게 가설 명제를 세우고, 그 보편에서 아닌 사람 쪽을 설정하고 찾아나가는 것이 훨씬 빠른 조사방법일 것 같다. 

좀 극단적인 가설 체계이기는 하지만, 혐오라는 주제에 사회과학방법론을 결합시키면.. 아주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혐오가 2022년 한국의 특징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 같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면서 하루하루 일상을 보내나? 꽤 많은 숫자의 사람에게서 ‘돈’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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