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라는 용어는 가급적이면 안 쓰는 게 좋은 정치 용어다. "저는 서민인데요", 그렇게 자기가 그 용어를 쓸 때에는 아무 문제 없다. "서민으로서 한 마디 하자면", 이런 게 대표적인 용법이다. 당당하게 자신이 서민이라고 밝힌다.

그렇지만 '서민을 위한 정치'와 같이 누군가 자신을 서민이라고 지칭할 때에는 180도 의미가 변한다. "듣는 서민 기분 나쁘네..", 요런 마음이 든다. 자기가 스스로 서민이라고 할 때에는 강한 용어지만, 다른 사람이 자기를 서민이라고 하면 기분 안 좋아진다. '서민 코스프레', 당장 마음 속에서 불편함이 든다.

'민생'이라는 용어도 아주 오묘한 용어다. 원래는 쑨원의 삼민주의에서 나온 용어다. "민생은 돌보지 않고", 집권층이나 정치인 욕할 때 쓰는 용어다. 이때는 직빵 효력이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민생 위주"로 하겠다고 하면, 갑자기 통치자가 뭐 하나 좀 퍼주겠다는 느낌이 들어 확 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기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세금 가지고 뭐 좀 해주겠다, 그런 뉘앙스를 팍 풍긴다. "니 돈이라면 이렇게 쓰겠니?", 요런 말이 민생이라는 단어 밑에 깔린다.

정말로 민생을 생각하는 사람은 민생이라는 용어는 잘 안 쓰고, 분야별로 디테일 정책을 제시하거나, 실용적 같은 용어로 대체해서 사용한다. 우리 말에서 민생, 왠지 가난한 백성을 굽여 살피려는 제왕의 느낌을 준다.

정치 용어로서 서민과 민생이라는 말이 이런 딜레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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