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2건

  1. 2012.12.01 추억을 곰씹는다 1
  2. 2012.11.04 데이브레이커스 5
  3. 2012.07.20 KU 시네마테크 1
  4. 2012.07.08 KU 시네마테크, 사무라이 액션 특별전 1
  5. 2012.06.26 <두 개의 문>에 관한 짧은 메모
  6. 2012.06.15 두 개의 문
  7. 2011.12.12 안녕, 해리 포터 20
  8. 2011.11.21 KU 시네마테크, 21번째 뉴스레터
  9. 2011.11.06 <돼지의 왕> 개봉 등 7
  10. 2011.09.16 <모래> 상영회 5

추억을 곰씹는다

 

 

어느덧 나도 마흔 중반이 되었다. 지금 살아온 것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을 것이다. 추억이라는 말이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를 며칠 전에 보았다. 자기 전에 틀어놓고 잠시만 보려고 하다가 너무너무 재밌어서 결국 3시간이 넘는 오리지날 버전을 해가 뜰 때까지 다 보고 말았다. 1984년에 나온 이 영화를 아직도 몰두해서 볼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 내가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기는 하는구나!

 

이 영화는 한국 공개버전까지 세 개의 버전이 있다. 시간을 줄여서 스튜디오에서 공개한 건 최악의 영화로 악평을 받았고, 오리지날 버전으로 다시 공개한 건, 개봉 후 8, 지난 10년간 최고의 영화에 꼽혔다. 한국 버전은 너무 삭제가 많아서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고.

 

나는 이 영화를 파리 시절, TF1에서 해준 TV 영화로 보았다. 그 때도 참 재밌게 보았었고, 지금 다시 보았을 때만큼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다. 정작 놀란 건, 다음 날 학교 갔을 때. 대학원 시절이었는데, 당시 대학원 동기 중에 남자는 정말 거의 없고, 정말 여자들 밖에 없었다. 로버트 드 니로 멋있다고, 완전 난리가 났었다. 20대 초반의 파리 여성, 정말로 그들의 가슴을 깊게 후벼판 영화였다. 1년간 대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TV에서 틀어준 영화 때문에 학교가 난리난 것은 그 때 딱 한 번이었다.

 

연애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의 연애 얘기로, 정말로 내 가슴을 친 영화는 이것 하나 밖에는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오랫동안 가슴에 남은 유일한 얘기는, 김형경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그거였던 듯싶다.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었지만, 20대 때 이 얘기의 잔상이 참 오래 남았다. 정말로 가슴 한 편에 오래 남았다. 나중에 유사한 얘기겠거니 하면서 은희경의 소설들을 모아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가슴에 남은 얘기는 없다. 나중에 다 까먹었다. 억지로 기억을 하자면 영화 <세런디퍼티>를 좀 재밌게, 그래서 몇 번 봤던 기억 정도.

 

나는 이런 연애 얘기에 대해서, 내가 원래 안 좋아하고, 더군다나 나이를 먹으면서, 이젠 정말로 그런 얘기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혹은 세월과 함께 전혀 다른 감성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감성은 똑 같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한 소녀의 10대 모습에서 60이 넘은 모습까지, 누들스의 삶과 겹쳐가는 이 영화의 제일 중요한 라인은 역시 연애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사연이 너무 절절하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자신의 목숨과 이 영화를 바꾸었다. 심장 이식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는 수술을 포기했다. 깐느에서 10년간 자신에게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제작자를 기다리던 그, 결국 목숨과 바꾼 영화가 되었다. 이 정도는, 사실 바꿀만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영화 메이킹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나왔다. 레오네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던 사람, 그 숱한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될까?

 

요즘 영화식으로 얘기하면, 전개는 늦고, 구멍도 생각보다 많다. 데보라의 오빠로 나온 뚱보는 데보라가 빅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맥스의 정체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까? 아니면 입을 다문 것일까?

 

중간에 휴식 시간까지 있는, 세 시간이 넘는 이런 긴 영화는 요즘은 못 만든다. 두 시간만 넘어도 길다고 못 참는다. 그러나 세 시간 동안, 이런저런 에피소드들로 감정을 쌓아놓고 있어야, 진정하게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진지하다. 가만히 눈물을 흘리면서 신파를 떨게 내버려두지 않고, 이게 끝이 아니야, 계속해서 가슴을 후벼파게 만든다.

 

멍하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젊은 시절 봤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이다. 얇다는 표현을 쓴다. 요즘은 영화를 얇게 만들고, 그래야 오히려 흥행이 더 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두껍다. 정말로 두껍다. 심도 얕은 사진들에 익숙해지면, 가끔씩 보는 심도 깊은 사진들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과 비슷한 차이일까?

 

좋은 영화는 잔상이 오래 남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잔상을 오래 가지고 가는 능력이 떨어진다.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느낌을 만들 수 있는 영화, 그것은 강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간만에 깊은 추억을 곰씹는 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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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레이커스

 

 

 

영화로 충격 받는 일이 요즘에는 잘 없는데, 간만에 뒤통수를 맞은 듯정말 재밌게 보았다.

 

물론 나는 흡혈귀 영화나 좀비 영화는, 일단 어지간하면 본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재밌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는 아니다.

 

데이브레이커스의 질문은 cure subsitute, 즉 벰파이어 바이러스로부터 치료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혈액의 대체제를 계속해서 판매할 것이냐, 그 질문으로 모인다. 바이러스로 문제를 처리하고 나면, 사실 이 두 가지의 질문만이 남는다.

 

여기에 최근의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은유가 따라 붙는다. 당연히 계속해서 판매를 해야 회사에 이윤이 남지, 그 거대한 원인을 제거하고 나면 회사가 성립될 근거가 사라진다. 좀비 영화에 비하면, 흡혈귀 영화들이 고전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전통이다. <데이브레이커스>는 이 전통 위에 놓여 있다. 드라큐라 백작 이후의 설정들을 잘 살리면서, 다국적 기업으로 전환된 지금의 회사들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그런 점에서는 설정이 <인셉션>과 유사하다. 여기서도 다국적기업의 경영이 주요한 설정인데, 이 경우에는 대체 에너지원을 찾아나가는 에너지 회사이다. 쉘이나 BP 같은 데를 상상하면서 보면 훨씬 재미있다. 그리고 <데이브레이커스> <캣우먼>에서 처음 시도되고 <레지던트 이블>에서 전면화된 다국적 제약회사들, 우리의 경우는 한미 fta를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실질적인 세력 중의 하나로 의심되는. 넓게 보면 제주도 등 영리병원을 지지하는 그 세력들과도 어느 정도는 맞닿아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을 혈액은행으로 은유했다.

 

흡혈귀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게 여기에서는 cure의 주요 모티브이다. 내 기억상으로는 아마 이 경우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흡혈귀이지만 더 이상 피를 빨지 않게 된 모티브는 <어딕션>에 나온 적이 있다. 그 때에는 벰파이어에게 피는 일종의 기호의 문제 즉 중독과 같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하긴 <어딕션>에서는 니체나 이런 철학자들이 모두 흡혈귀였다는 기막힌 설정이 나온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이 철학과 박사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쓰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정말 공포스럽던 마지막 피의 향연이 벌어지는 순간이 철학 박사 수여식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데이브레이커스>에서 피라는 것은 이런 선호와 기호에 의한 중독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에센스 혹은 엑기스 같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정 기간 피를 마시지 못하거나 피가 없어서 자신의 살을 먹으면 서브사이더라는 변종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흡혈귀 내에도 계급적 서열이 있고, 그 안에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 서브사이더라는 설정이다.

 

좀비영화 <28일후>가 그랬던 것처럼, <데이브레이커스>가 설정된 세계는 말더스의 세계이다. Population model에서의 피식자와 포식자 사이의 predator-prey 모델의 세계이다. , 간단한 거다. 인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결국 멸종 위기에 몰리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혈액 위에 세워놓은 벰파이어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사회 시스템까지도 위기에 몰리게 된다. 스스로 재생산하지 못하는 문명의 장기적 균형에 관한 질문이다.

 

이 상황에서 모든 것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경제의 맨 하반부를 점유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실험실이다. 당연히 주인공이 그 실험을 주관하고 있는 혈액 박사 흡혈귀로 설정되어 있고.

 

에단 호크는 <트레이닝 데이> 이후로 아주 재밌게 지켜보는 배우인데, 여전히 재밌다. 어떤 면에서는 <로마클럽 보고서>를 처음 준비하던 도넬라 메도우 여사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윌렘 데포는 <쉐도우 오브 벰파이어>에서 막스 슈렉을 기똥차게 연기한 적이 있다 (에니메이션 <슈렉>의 이름이 여기서 온 거 아닌가, 나는 아직도 그렇게 의심을 하고 있다.) 독일 표현주의 시절의 그로테스크한 화풍으로 연출된 막스 슈렉만큼, 다시 흡혈귀를 연기한 윌렘 디포는 그 정도까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가 만약 흡혈귀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도 이렇게 생긴 걸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참 잘 만든 영화이고, 예산 많이 들이지 않고도 필요한 효과들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별 볼 일 없었다. 130

 

어쨌든 이 이후로 한동안 놓고 있던 SF 영화 기획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2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를 목표로, 문명의 전환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논의를 지난 주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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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에 관한 짧은 메모

 

 

 

1.

용산 참사가 벌어지던 날은, 공교롭게도 동경에 있던 날이었다. 그 사건에 대한 얘기를 건네 들으면서, 정말로 놀랐다.

 

2.

영화 보는 내내, 좀 괴로웠다. 당연한 것이고. 그리고 또 괴로웠다. 나라면 이 얘기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어떻게 다루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3.

죽어라고 보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인도할 방법은 별로 없다. 용산참사, 과연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영화 내에, 이건 일종의 기준이 되어서, 이 정도로 해도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겠구나, 그런 인터뷰가 나온다. 사실 이게 이 영화의 주제일런지도 모르겠다.

 

너무 재밌는 것이 많기도 하고, 너무 충격적인 것이 많기도 하고, 또 너무 안 보고 싶은 것이 많기도 해서

 

사람들이 시선을 단 1분 붙잡고 있기도 힘들다.

 

4.

누군가는 만들었어야 할 영화이고, 과연 누군가 만들었다.

 

그게 시대의 미학이라는 생각을 잠시.

 

연출 기법이니, 플롯을 잡아가는 방식이나 등등필요 없다일단 그 영화를 만들어서 우리 앞에

 

5.

그래도 힘이 나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사람들한테 전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tv에서 다큐로 만들면 그만인 걸,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하나

 

요건 속 편한 얘기인데, 우린 지금 공중파가 막힌 시대를 살고 있다.

 

6.

큰 모티브는 두 가지로 보였다.

 

얘기치 않던 죽음, 그리고 사라진 진실.

 

죽음을 맨 처음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진실이 사라졌다는 건, 아마 극장에 있던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 두 개를 놓고, 긴장감을 만드는 연출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이것도 배부른 투정이다.

 

죽음 앞에 다른 진실이 뭐가 더 필요하겠나? 요즘 재밌는 영화들을 너무 많이 봐서, 내가 배가 부른 거다.

 

7.

한 번 더 볼 꺼냐? 아무래도 극장에서 한 번 더 볼 것 같지는 않고, DVD가 발매되면 살 것 같기는 하다. 분석하려면 정식으로 여러 번 충분히 보고 분석을 하고, 아니라면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묵념.

 

8.

국가의 폭력, 특히 이런 어처구니 없는 폭력은,

 

나나, 내 주변 사람에게나, 혹은 우리 모두에게나 생겨날 수 있다.

 

한 다리 건너 철거민 식구가 없는 국민은 없고,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철거민들에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계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심지어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가 얘기치 않게 해고된 사람에게도, 혹은 이도저도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국가의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런 질문이 생겼다.

 

이건, 어느 가난했던, 그래서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어 보였던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석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해보려고 하고, 일단 메모만 잊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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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

영화 이야기 2012. 6. 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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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어느 여름이라고 기억된다.

이제 막 서른이 되었고, 직급은 되게 높아져서 공공기관의 3급 부장이던 어느 여름.

가끔 재수 없다는 반응이 나올 걸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삶을 환기시켜 주기 위해서, 당신이 최대한 높이 올라와도 아주 어렸던 시절의 내 위치에 오기가 어려울 거다...

그런 얘기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때가 딱 고맘 때즘 언저리를 경계로 한다.

미친 척하고, 신촌 어디선가 하는 토요일날 밤새 세 편 틀어주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약간씩 졸면서 본 영화가,

매트릭스 1편, 오스틴 파워 2편 그리고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그 영화들이 내 인생에 그렇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미처 몰랐지만, 하여간 이렇게 시대의 시리즈 영화들을 극장에서 밤새면서 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곧 이어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 그리고 조금 늦게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시작하였다.

조금 늦게, 그러니까 내가 공직을 그만둔 다음에 국내 영화로 황산벌이 일종의 시리즈 영화로 시작하였다.

황산벌. 평양성, 여기까지는 어쨌든 나왔고, 내소성은 완전 오리무중.

99년을 기억하는 것은, 이 때가 내 삶에서 완전 최악, 그러니까 방향상실, 어이상실, 그냥 내가 왜 사는지 모르고 시간아 가라, 내는 모른다, 그러던 시절이라서 그렇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부장으로 입사한지 약 반 년쯤 지났을 그럴 때였던 것 같은데, 뭐 그 상황에서 밤새도록 세 편 틀어주는 그런 극장에서 졸리운 걸 참으면서 영화를 볼 사람이 또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 때쯤 나는 20대 내내 탐닉하던 예술영화도 끊고, B급 영화로 줄겨보던 영화들을 옮기면서, 상업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술영화도 아닌, 그런 엉기적하던 영화들을 아주 좋아하고 분석하던 시절이었다.

C급 경제학자라는 별명은, 그보다는 조금 먼저 얻게 된 별명이었다.

하여간 내가 뭘 할지, 뭘 하고 싶은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헤매던 시절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그즈음 시작했다.

극장에서 본 적도 있고, 못 본 적도 있는데, 어쨌든 꼬박꼬박 dd를 사면서 지내다보니 10년이 지났다. 

그 10년 동안 어린이이던 주인공들은 어른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아침이면 눈을 뜨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아는 게 되었고,

그 사이에 결혼을 했다. 내년이면, 아마도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도 태어날 것 같다.

정치적인 신념은 크게 바뀐 건 없지만, 뒤에 숨어있기 보다 뭔가 앞에서 해야한다는 생각이 좀 변했다.

복장은 크게 바뀌었다.

그 시절에는 넥타이 매고 전형적인 슈트 차림이었는데,

요즘은 그냥 츄리닝 입고 다닌다.

옷에도 돈을 쓰면, 내 주변의 식구들이 편안하게 살기가 어려우니.. 그냥 추리닝 입고 다닌다.

원래도 보이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눈, 이제는 노안이 심해져서 더 이상 엑셀이나 통계 작업은 하기가 어려워졌다.

책 보기도 힘들어졌고, 샤프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샤프나 볼펜 혹은 수성펜 같은 것으로 써놓으면, 내가 읽지를 못한다.

도대체 이런 굵은 만년필을 누가 쓰나 싶은, 그런 거로 써야 겨우겨우 글씨를 읽는다.

소속도 바뀌었다.

나는 내가 뭘 차리는 건 절대로 하기 싫고...

정부기관 소속에서 영화사 소속으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제 마지막으로 해리포터의 마지막 시리즈를 보았다.

문득, 지난 10년간이 싫든 좋든,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던 것처럼, 내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안녕, 해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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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보라>의 GV 부탁을 받았는데,

요즘은 때려 죽여도 더 이상 뭔가 얹을 시간이 안 난다. 나도 꼭 보고 싶은 다큐인데, 보러 갈 시간이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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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은 올 가을의 최고 핫 아이템이다.

이게, 은근 중독성 있다. 보통 GV에 갈 때는 밖에서 기다리다가 영화 끝나면 들어가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이번 시즌 최고 핫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의 춤>은 시사회에 초대를 받기는 했는데, 다른 일정들이 겹쳐서 못 봤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나는 꼭 볼려고 마음먹고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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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 중에서, 돈 안되고 영광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들이 엄청 많다. ‘먹고 살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반대의 길을 가는 셈인데, 그러다 보면 내 입에도 어쨌든 세 끼 밥은 들어온다는 게 믿음이다. 아직까지는밥은 먹고 다닌다.

 

다큐 <모래>가 어떻게든 상영회까지는 온 것 같다.

 

가슴에 손을 얹고, 목숨 걸고 꼭 봐야 할 다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큐가 그렇듯이, 보면 좋겠지만 안 본다고, 뭐 뒤지는 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라는 건, 왕조 시대 이후로 늘 있으니, 뭐 그걸 다 해결하겠다고 해서 해결 되는 것도 아니고.

 

다큐 <모래> 안 본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이거 본다고 해서 비루한 삶이 특별히 좋아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가끔 애잔해지고, 씁쓸하면서, 겉 얘기만큼이나 속으로 남는 진짜 속 얘기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살다 보면 오기도 한다. 어떻게 사람이라는 게 평생 강호동쇼만 보고 살 수 있나, 가끔은 좀 고급스러운 취향이 그리운 순간도 있다.

 

아주 다중적인 의미에서 이 다큐는 문제적 작품이다. 사회성 짙은 얘기들은 저 새끼들 다 나쁜 넘들이야”, 그러면 된다. 아니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 이 자연 앞에서…” 사회적 다큐가 보통 그런데, <모래>는 그걸 자기 안으로 들여오고, 매일 밥상을 마주 보아야 하는 식구들로 끌고 들어온다.

 

, 저걸 같이 찍는 부모들은 심정이 어땠겠나, 그런 애잔함이 있다.

 

삶이라는 건 독하고 잔인한 것, 그 부조리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보시고 싶다면.

 

다큐 <모래>의 상영회에 오시면 된다. 이걸 보고 나서 자신의 예술성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아니면 사회성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기분은 확실히 드러워진다. 그 드러운 기분을 잘 삭히면서 하루쯤 지나면, 이제 슬슬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한 효과는 아니겠지만, 잉여질의 본질, 그것도 은마 아파트 사는 고급 잉여질이 애잔하게 가슴에 깔릴 것이다.

 

다큐 보면서 은마는 달리고 싶다는 얘기가 계속 떠올랐는데, 은마는 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남의 일이면, 댁들이 바로 하우스 푸어이셔요, 이렇게 간단하데, 그게 식구면? 게다가 거기 얹혀서 살고 있으면?

 

하여간 요즘 사는 거 골 아파서, 복잡한 얘기는 절대 볼 생각 없다, 그런 사람은 다큐 <모래> 보고 있으면 100% 졸 거다.

 

요즘 좀 상황이 괜찮아서, 아 나, 간만에 좀 머리 터지는 거 봐도 소화할 수 있어 혹은 아주 드물지만, 요즘 내 문화 취향이 약간 고급이야, 그런 사람에게는 빅 어드벤처.

 

아직 영화 끝나고 무슨 얘기를 할지는, 마음을 정하지는 못했다. 안 그래도 가슴 심난해서 마음 복잡해질 것이 뻔한 관객들에게, 가슴 답답하시죠, 그럴 수는 없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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