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2건

  1. 2009.06.01 카모메 식당 9
  2. 2009.04.25 반딧불의 묘 12

 

1.

프랑스에서 있던 시절에는 영화를 참 많이 보았다. 구로자와의 영화나 베르히만의 영화를 본 것도 파리에서 있던 영화 페스티발에서였다. 원래 공부 좀 합네하는 식자들이 문화적 취향은 높은데, 파리에서 가장 싸게 할 수 있던 문화 향수는 결국 영화 밖에 없었다.

 

가끔 연극 공부하는 사람들 통해서 터무니없이 값싼 연극표를 구하면 토스토프에스키의 연극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일년에 몇 번 벌어지지 않는 일이고. 우연히 기회가 되어서 르와르 강변에서 벌어진 무용 페스티발에 참가해서 정말 원없이 무용을 보기도 했지만, 그건 몇 년에 한 번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간략하게... 영화 말고는 할 수 있는 문화 행사가 없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그래서 그 몇 년 동안 정말 죽도록 영화를 보았다. 대체적으로 1주일에 두 번 정도 극장에 간 것 같고, 가끔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 집에 가서 귀한 영화들을 밤새도록 보기도 하였다.

 

거기에 노스탈지아가 있었다... 한국 영화가 아니더라도, 홍콩 영화가 어쩌다 샹젤리제에서 개봉하는 날에는 도서관에 있던, 그야말로 '학도여, 학도여, 청년 학도여'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서 그런 걸 보았다. 첩혈쌍웅을 비롯해서, 천녀유혼 시리즈들, 샹젤리에 어지에선가 봤던 영화들이다.

 

북한 영화 페스티발도 있었다. 홍길동을 거기서 봤는데, 북한 배우가 최재성과 똑 닮았다.

 

그렇게 몇 년간 영화를 보고, 결국... 프랑스 영화에 물리고, 예술 영화에 물렸다.

 

난 이제는 B급 영화들만 보고, 좀비 영화, 흡혈귀 영화, 갱 영화, 이런 B급 영화들을 중심으로 본다.

 

나도 몰랐는데, 내가 B급 감성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새벽에서 황혼까지> 혹은 시큼털털한 좀비 영화, 이런 게 내 감성에 잘 맞는다.

 

전쟁영화는 좋아하지는 않는데, 시대 읽기에 대한 공부 삼아 본다.

 

2.

그러다 보니 늘 미안한 감정이 있다.

 

수 년째 환경영화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내 스타일 아닌데, 엄청 재밌다고 얘기해야 하는 그 상황에 몰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기는 하다. 물론 환경영화제에 나오는 영화들이나 그런 분위기의 영화들 중에서도 재밌는 것들이 있지만, 어째 선뜻 손이 안 간다.

 

난 여전히 <오스틴 파워>의 세계에 살고, <짝패> 아니면 <다찌마와 리>의 과장스러운 세계에 살고, <자토이치>의 코믹 속에 산다.

 

올해 여성영화제에는 어찌어찌해서 폐막식에 초대를 받았는데, 마침 좀 옮기기 어려운 사정이 생겨버렸다.

 

환경영화, 여성영화, 이런 영화들을 잘 안 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미안한 감정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여러 번을 봤었는데, 사정상 한 번도 전편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결국 감독이 절대로 다른 데서 상영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DVD를 빌려주었다. 한참 가지고 있다가 노무현 자살한 날, 혼자 앉아서 틀어봤다.

 

혼자 앉아서 신나게 울었다. 황윤 감독이 꼭 좋은 시설에서 음향 좋게 해놓고 집중해서 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 말이 옳기는 하다. 이걸 보고도 눈물이 안 나면... 이게 사람이냐, 그럴 듯 싶다.

 

다큐멘타리는 수많은 우연이 만든 필연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 영화가 딱 그랬다.

 

어쨌든 연대로 돌아간 다음에 잠시 상영하게 되는 영화들이나, 혹은 실험적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콘서트 같은 데 갈 기회가 아주 많아졌다. 그러나 잘 못 간다.

 

그래서 준비한 사람들에게 늘 미안함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최소한 영화만큼은 의무감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책은, 재미있는데 읽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읽으면 도움이 되니까, 싫거나 지겨운 데도 참으면서 억지로 읽는 것이 책이다. 재밌어서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부럽다. 책은 재미없다. 게다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책은 더더욱 재미없다. 그리고 고전들은, 도저히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재미없다. 그래도 참고 읽는다. 그것이 나에게는 책이다.

 

번역되는 순서로 책을 읽지는 못한다. 대개는 번역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번역될 가능성이 없는 책들을 많이 읽는데, 이런 책들은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게다가 재미는 더럽게 없고, 읽은 사람도 없으므로 같이 얘기를 하기도 쉽지 않고, 또... 한국에서 유행할 것 같아보이지도 않는 책들, 이걸 왜 읽나 생각하면서도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읽는다.

 

그러나 영화를 텍스트로 삼고, 책 읽듯이 하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영화만큼은, 나에게 즐거움의 영역으로 남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정성일은 영화를 더 잘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영화를 더 잘 즐기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음반을 들을 때와 달리, 의무감 없이 영화를 보고 싶다.

 

3.

 

어쨌든 나는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 벌써 수 년째, 한 달에 몇 장씩은 사던 LP나 CD의 자리를 DVD가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용돈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책 몇 권, CD 몇 장 사던 자리에서, 이제는 DVD 몇 장 그리고 돈 남으면 책, 이렇게 용돈의 배치 순서가 바뀌었다.

 

(요즘은 DVD가 이제 거의 나오지 않아서, 슬프기는 하다.)

 

얼마 전에 다큐멘타리를 좀 찍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필요한 돈 정도는 대주겠다는 얘기인데... 아, 불행히도 나의 감성은 명랑, 코믹 버전이다.

 

나도 가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지금 문제가 된 한예종 같은 데에 입학해서 진지하게 공부를 해볼까 하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룹 시절의 현대에 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월급 받고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 것은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워보였다.

 

PD 시험을 다시 볼까, 영화를 배울 수 있는 학교에 다시 들어가볼까, 아니면 정말로 한문공부 하면서 한국학 공부를 해볼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다 접고 결국 정부기관에 약간 좋은 조건으로 옮기게 된 건, 그게 현실이다! 이런 걸 결국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나는 결국 좌파였고, 차분차분하게 지내면 장관은 몰라도 청장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는 공무원들의 위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몇 년간을 알콜 중독으로 지내고,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은 황망해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사직서를 내고 떠나고 말았다.

 

그 몇 년간 나락 끝으로 향하는 머나먼 여행을 한 기억이다.

 

여행, 어쩌면 삶은 끊임없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머무름도, 다음 번 여행을 위한 기다림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맥락없이 던져진 노마드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행은 좋아한다. 순례자라는 무거운 단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삶 자체가 그냥 잠시 머물러있다가 가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을 시킨다. 별 것 아닌 것에서도, 하다못해 식사 하면서의 예절과 작은 지식에 대해서도 경쟁을 시킨다.

 

그런 데에서도 매번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필연코 불행해진다. 아니면 결국 위에 구멍이 생기던지...

 

4.

영화 <카메모 식당>은, 내게는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보통의 영화는 특정 주제나 특정 소제 혹은 어떤 장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나에게 영화는 무엇일까?

 

좋은 영화이다. 외로움, 만남, 머무름, 그런 것들과 함께 자기 안의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서열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머무름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세상, 잠시 잊고,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 회상할 필요가 있다.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류인생과 김민선  (2) 2009.09.11
인디 스페이스와 다큐  (11) 2009.09.10
코코 샤넬  (8) 2009.09.06
쿡 티비, 그리고 <타짜>  (12) 2009.08.25
반딧불의 묘  (12) 2009.04.25
Posted by retired
,

반딧불의 묘

영화 이야기 2009. 4. 25. 04:33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다카하타 이사오는 여전히 미스테리에 가득한 인물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빨간머리 앤의 감독이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콤비로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두 개의 축 중에 한 명이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더 좌파라는 지적이 종종 있는데,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은 잘 모른다.

 

그의 에니메이션 중에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마음이 울적해질 때마다 보고는 하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에니메이션 탑 파이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울적할 때에는 이토 준지의 공포 콜렉션을 주로 본다. 오랫동안 내 감성에 제일 잘 맞는 사람은, 여전히 이토 준지이다.)

 

88년에 나온 에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를 본지는 몇 주 안된다.

 

(요즘 내가 하도 깝깝해하고 있으니까, 아내가 하자센터에서 영화 몇 개를 빌려다주었는데, 그 중에 끼어있었다.)

 

일본 에니메이션 중에는 반전을 메시지로 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때때로 과하게, 때때로 허황되게 그런 정서들이 그려지는 것 같다. 가장 허황되게 반전을 그린 것은 실사영화로 나왔던 <캐산> 정도로 기억된다.

 

<반딧불의 묘>는 그야마로 극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남매가 전쟁 한 가운데에서 굶어죽어가는 현실을 그려냈는데, 다카하타 이사오는 이 에니메이션이야말로 영화가 할 수 없는, 에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섯살짜리 애의 연기가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나중에 이 원작은 다시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일본의 TV 시리즈는, 뭐 구해서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

 

'드로푸스'라는 모티브, 정확히는 '드로푸스 통'이라는 모티브가 한 가운데 들어가 있는데, 드라마 <서울 1945>에도 드로푸스가 모티브로 등장한다. (전후 관계로 보아, 에니메이션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어쨌든 내가 본 영화나 에니메이션 중에서 이렇게 사실적으로 영양실조로 굶어죽어가는 것을 주 축으로 하고 있는 얘기가 있나 싶게, 얘기는 슬프고 장면들은 아름답다.

 

몇 달 전에 야스쿠니 신사에 간 적이 있는데, 몇 시간에 걸쳐 박물관까지 꼼꼼하게 돌아보았고, 일부분이지만  문제가 된다는 바로 그 홍보영 영화도 보았었다. 마지막 장면은 놀이터에서 대화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여주고 있었고, 배경 음악은 비트가 강한 힙합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할아버지들만 공유하고 있는 야스쿠니의 정신을 젊은 층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한 장치들을 배치한 거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는데, 만약 한쪽 끝에 야스쿠니 신사의 박물관에서 틀어주는 홍보영 영화가 있다면, 또 다른 한 쪽 편에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이해하는 두 개의 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간 <반딧불의 묘>가 나에게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영화 자체의 요소라기 보다는 영화 바깥 쪽의 얘기들이다.

 

다음 주부터는 그동안 모아놨던 자료들과 학생들의 글을 모아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는, 20대 당사자 운동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책 작업을 시작한다. 원래는 지난 2월에 하려고 했던 것인데, 연재와 강연, 그리고 얘기치 않았던 방중 프로그램에 치여서 이렇게 몇 달 밀린 셈이다.

 

이번 주까지는 생태경제학 시리즈 1, 2권을 어떻게든 1차 마무리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이 다음 작업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아마 부제가 이렇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실제로 이 책의 부제로 내가 달고 싶은 것은,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한 때 송강호가 했던 대사이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이 대사가 이 순간에는 딱 적합하다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했었는데, "밥을 먹지 못하면"이라는 생각의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딱 머리 속에는 <반딧불의 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만큼 에니메이션은 강렬하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남매의 얘기가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경제 위기 속에서 별다른 안전판 없이 개별적으로 세상에 내밀린 사람들, 밥은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조직론에 관한 분석을 할 때, 내가 자주 쓰는 분석틀 중의 하나가 균질성과 이질성이라는 개념인데 - 원래는 경제 주체에 대한 두 가지 접근법에서 따온 것이다 - , 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 역시 이러한 균질성의 문제로 종종 해석한다. 늙탱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세상을 보니, 도대체 이 밖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턱이 있나.

 

그래도 너희들은 밥은 먹지 않느냐? 주로 지금의 20대들에게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는 한데, 이 말이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약간의 극단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전쟁, 구조, 그리고 진짜로 개별적 굶주림 같은 몇 개의 키워드들이 반딧불이 번쩍거리는 환상적 장면들 속으로 묘하게 연결이 된다.

 

(90년대 후반, 삼성에서 반딧불을 그룹 차원에서 이미지로 민 적이 있었다. 약간 어이가 없으면서도 잘 해보라고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반딧불 얘기하던 사람들은 삼성 내에서 지금쯤은 어디에들 있는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반딧불이 돌아올 수 있는 생태계를 위해서 삼성이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얘기였는데, 10년도 안된 지금,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류인생과 김민선  (2) 2009.09.11
인디 스페이스와 다큐  (11) 2009.09.10
코코 샤넬  (8) 2009.09.06
쿡 티비, 그리고 <타짜>  (12) 2009.08.25
카모메 식당  (9) 2009.06.01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