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연세대학교에서 <개청춘> 상영이 있었다.

 

이제 막 졸업해서 20대 당사자 운동을 시작하려다가 독한 좌절감을 맛본 정배, 생태선본으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해서 악전고투 중인 명선, 앨범 낼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볼 때마다 안스러운 사회학과 밴드 '킬링 너즈' 그리고 사학 대신 만화로 먹고 살 공부를 하는 한솔 등이 꽤 고생을 했다. 그러나 뒤에서 해결하기 정말 어려운 일을 뒤에서 부드럽게 해결한 진짜 해결사는, 이번에도 영화다.

 

당분간 개청춘은 공동체 상영으로 서울의 몇 개 대학과 단체들 그리고 지방에서는 영대까지는 가는 걸로 알고 있다. 연대 상영본은 내가 본 것보다 8분 정도 줄인 거라는데, 여기에서 또 8분 줄인 날씬한 버전으로 편집을 끝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시점에서...

 

노조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면 어떨까, 그런 고민이 있다. 뭐, 고민할 것까지는 없다. 반이다 본인들은, 그렇게 하면 좋겠다니.

 

 

20대의 자기인식이 시작되다

[뷰포인트] 연세대학교 개청춘 상영회 후기

기사입력 2009-10-05 오전 11:55:56

88만원 세대, 청년실업, 20대 개새끼론... 20대를 둘러싼 담론으로 사회가 뜨겁다. 신자유주의 승자독식 시대로의 변환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집단으로 명명되거나 꿈도 희망도 책임감도 지니지 못한 낙오자 집단으로 묘사되거나. 그러나 이 모든 담론은 모두 20대를 '대상'으로 호출할 뿐, 20대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들어있지 않다. 우리 시대의 20대들을 온전히 표현해주지도 못한다.

여기 20대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삶을 그려낸 다큐멘터리가 있다. 아직은 영화제에 정식으로 초청받아 상영되지도, 개봉날짜를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소규모 상영회들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개같은 청춘일지 몰라도 그 청춘을 열자고 제안하는 다큐멘터리 <개청춘>은 우리 시대 20대들의 삶의 표준을 그려내는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하지만 다양하게, 그리고 각자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20대 '개인'들의 삶을 들여다 봄으로써 한 가지 표현 혹은 규격화된 틀로 지금을 살아가는 20대를 규정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개청춘>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개청춘> 특별상영회에 최근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 - 2009』『뉴라이트 사용후기』 등의 책을 출간한 20대 필자 한윤형 씨가 다녀온 후 글을 보내왔다. 일하는 20대의 삶을 20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카메라에 담아 20대인 대학생들의 호응으로 조직된 상영회에서 20대 필자가 보고 해석한 매우 소중한 결과물이 바로 이 글이다. - <편집자 주>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저녁 7시,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다큐멘터리 <개청춘>의 상영회가 열렸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들은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배급을 맡은 이들은 시네마달, 영화가 끝난 후 반이다 멤버 셋과 함께 토크쇼를 같이 한 사람은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중 1인인 경제학자 우석훈이었다. 이렇게만 얘기해도 이 행사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개청춘>을 두 번째로 보는 자리였다. 일전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했던 거다. 이제 개봉을 목표로 한 <개청춘>은 조금 더 편집된 형태로 관객들 앞에 선보였는데, 딱 8분 가량 줄었다는 그 러닝타임만큼 더 깔끔해진 듯 했다.

이 행사의 의의를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대' 여성들인 반이다가, '20대'들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그것에 대해 '20대' 대학생들이 후원하여 상영회를 연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 나는 '20대' 논객이라는 허울 밖에 없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 후기를 쓴다. 20대 문제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 반복되는 단어가 지겨울 거다. 방금 내가 쓴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무어라고 봐야 할 것인가?

2007년에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라는 것이 세상에 나왔다. 부모님 자산이나 축내며 무기력하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했던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사실 당신들은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었다. 윗세대, 특히 386세대는 경제적 자원과 정치적 올바름을 독점하면서 당신들에게 부당한 비난을 한다. 힘을 합쳐야 이 세태를 바꿀 수 있다. 토익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고 그 책은 주장했다. 그리고 저자들의 주장에 일말의 기대를 건 일군의 20대들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이합집산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석훈과 박권일의 메시지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젊은이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88만원 세대의 메시지는 왜곡된 형태로 젊은이들에게 당도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취직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취업 컨설턴트의 조언 속에서, 당신들의 어려움은 좌파 정권과 386들이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가지고 나라를 운영했기 때문이라는 수구세력의 야바위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도저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젊은이들의 냉소주의 속에서 말이다.

그 사이에 88만원 세대 담론의 함의는 엉뚱한 사람들이 가져가는 듯 했다. 386세대에 대한 비생산적인 미움을 증폭시키면서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 한 변희재나, 10대를 20대와 구별지으면서 정치적 대안의 부재라는 문제를 20대의 품성론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김용민과 같은 이들 말이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낀 세대'에 해당할 이들 보수-개혁 평론가들의 질타 속에서도 20대들은 말이 없었다. 여전히 20대에 관한 기획은 20대를 조명하지 않았다. 모든 종류의 20대 특집은 그들에 대한 어른들의 고상한 훈계와, 어른들이 보기에 예뻐 보이는 좀 다르게 사는 20대들의 모습을 조명하는데 급급했다. 부끄럽긴 하지만 '20대 논객론'이란 것의 수혜를 입은 내 처지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걷지도 않은 아이에게 달리기를 요구하거나, 혹은 익지도 않은 과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88만원 세대 담론을 이어가는 논의를 기획하거나, 당사자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때, 번번이 벽에 부딪히던 내가 떠올렸던 생각이 그것이었다. 20대는 자신들의 삶을 서사화해서 이해해 본 경험도 없고, 그 경험들을 서로 나누어본 적은 더더구나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20대를 잘 모른다는 사실과, 행동을 고민하는 몇몇 이들이 20대들을 대변할 수가 없다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는 요구는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의 입에서 나올 때뿐만이 아니라 20대들 자신의 입에서 나올 때도 매우 공허했던 거다.

젊은이들이 처한 이런 곤궁함은 우석훈 박사가 해제를 쓴 만화가 김태권의 『어린 왕자의 귀환』에서도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우주를 떠도는 이 시대의 어린왕자는 이 체제가 우리를 어떻게 짓누르는지는 밝혀내지만,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한다. "함께 고민하는 건 잘할 수 있단다!"라는 이 만화의 마지막 말은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숙제를 드러낸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정치적 고민의 시작이며 끝이다.

▲ 20대가 찍은 20대 다큐멘터리 <개청춘>
<개청춘> 역시 이 고민의 문맥에 서 있다. 그러나 반이다는 김태권과 다르다. 김태권은 책의 서문에서 IMF 이전의 대학생활을 경험해 보았다고 고백한다. "플라톤과 『자본론』을 한 팔에 안고 다니던 낭만적인 청년시절은 사라졌다."(서문 중에서) 김태권은 주변의 젊은이들과 공유했던 어떤 세계를 상실해본 경험을 가진 세대다. 하지만 반이다의 출발은 애초에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던 그 상황 그 자체다.

반이다 역시 이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이다는 그 문제를 바로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반이다의 한 멤버는 토크쇼 시간에 처음에는 사회문제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싶었지만 후반 작업으로 가면 갈수록 등장 인물들의 사연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대체 '20대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이 영상물을 계기로 친구들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청춘>은 이 영화를 보는 '대학생' 관객들에겐 다소 생경한 인물들을 제시한다.

고졸로 알바를 통해 살아가는 군입대를 앞둔 인식, 고졸 후 곧바로 취업하여 직장에 7년 동안 다닌 민희, 그리고 대졸 후 방송국 막내작가로 살아가는 승희가 그들이다.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연세대에서도 나온 질문은 어째서 그런 표본(?)을 선택했는지 거기엔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반이다는 답한다. '일하는 20대'라는 기준을 통해 선정했노라고. 어른들의 시선 속에서 20대는 언제나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이다. 반이다는 그런 시선에 반대하면서, 매력적인 인물들을 그리고, 그런 인물들조차 힘들어 한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개청춘>이 20대 전반을 대변하지 못해도 반이다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20대 전체가 아니라 20대 개개인이고, 그들 각각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텍스트와 다른 영상매체의 힘이 드러난다.

그런데 저 '일하는 20대'를 쫓는 반이다의 시선과 감각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 이 영상물의 가장 큰 특징이면서 매력이기도 하다. 반이다는 작품 밖에서 인물들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따라간다. 형편이 안 되면 더싼 작업실을 찾아 이사를 가고, 인식과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 의논하며, 민희에게 갑작스럽게 터진 사건 때문에 몰래 눈물 흘린다. 전반적으로 여성 등장인물인 민희와 승희에 비해 인식과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런 시행착오의 울퉁불퉁함조차 그대로 담아낸다.

우석훈 박사는 토크쇼에서 그런 반이다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독립된 문화생산자로서 사는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반이다는 대상을 드러내면서 자신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메타 텍스트와 같다고 우석훈은 설명한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가 동원되었다고 해서 이 영상물이 어떤 심오한 지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정반대다. 우석훈은 일본의 프리타족을 다룬 영상물 <조난 프리타>의 예술성과는 달리 <개청춘>은 매우 쉽고 재미있다고 코멘트했다. 사실 <개청춘>은 별다른 생각없이 보면 되는 영화다. 서너 장면을 제외하면 특별히 연출의 기술이 발휘된 듯한 부분도 없다.

상영회에 온 20대들은 <개청춘>을 보니 무언가 자신들도 비슷한 것을 찍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반응했다. 반이다는 일부러 그런 느낌을 주려고 쉽게 찍은 것은 아니라며 웃었지만, 만일 그런 느낌을 줬다면 매우 좋다고 응답했다. 이를테면 각자의 셀프카메라를 통해 각자의 삶을 찍어보면 어떨까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상물에서 민희는 셀프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찍으면서 자신의 삶을 재점검한다!) 만약 백만 개의 셀프카메라가 있다면 우리는 백만 개의 삶을 찍게 될 것이고, 누가 20대를 대표하는가 따위의 객쩍은 질문도 사라질 것이다. 이 대답은 인디스페이스의 시사회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반이다가 <개청춘>의 상영을 통해 20대의 삶을 담아낸다는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졌다.

<개청춘>은 상업영화도 예술영화도 아니다. 이 영상물은 만든 이들의 능력(?)을 우리에게 증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반이다의 첫 영상물은 반이다가 의도한 바를 더 잘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상영회의 관객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토크쇼에 임했다. 영상물 자체의 값어치를 매겼을 인디스페이스 시사회장의 관객들과는 달리, 연세대학교의 관객들은 촬영기법, 반이다의 결성, 영화의 특정 부분의 의미, 등장인물과 반이다의 근황과 장래계획 등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스무 명 가까운 이들의 질문을 받고 나자 토크쇼에 할당된 1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반이다가 이런 종류의 젊은이들과의 잦은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생계의 곤궁을 해결하고, 다음 작업을 위한 에너지를 얻게 되며, 또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반이다가 설명해줘서 좋아하게 된 장면으로 이런 것이 있었다. 용산 참사 이후 시위 현장에서(그곳이 용산이라는 사실은 아쉽게도 영상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반이다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로또를 긁는다. 그리고 전경들이 로또를 긁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88만원 세대』를 보면 스타벅스 커피 같은 거 마시지 말고 20대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것을 제안하는 부분이 있다. 반이다는 20대 문제에 대한 고민도 스타벅스에서 로또를 긁으면서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88만원 세대』를 향한 자조적이고 애교섞인 항변(?)인 셈이다.

민희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야간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녀는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연세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인식은 금년 8월 11일에 입대했다. 승희는 흑자경영을 위해 다큐 작가들을 잘라버린 모 방송국 사장님 때문에 외주 프로덕션에서 야근을 하느라 상영회에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각자의 삶은 흘러간다. 반이다는 차기작에 대한 욕심과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갈등한다. 우석훈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지옥이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떤다. 삶은 지지리 궁상이며 행복은 술 먹은 직후에나 온다는 거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버텨간다. 반이다는 영상물을 찍으며 우리 모두 '어떻게든 버티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버티는 삶 속에 '너희들은 희망이 없다'는 김용민의 충격요법과 '너희들은 실은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나와 함께 진중권을 쳐부수자.'는 변희재의 달콤한 독약은 개입할 수 있는 맥락이 없다. <개청춘>은 그렇게 무책임한 타자의 시선과 구별되는 20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기인식을 호출한다.

물론 나는 <개청춘>만이 시작점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20대들이 자신의 삶을 담아냈으나 어떤 지식인이나 글쟁이들도 비평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창작물들이 있다. 가령 웹툰과 같은 것이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개청춘>을 통해 이전에 있었던 것과 이후에 있었던 것을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20대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발화하는 과정은 20대의 삶과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개청춘>이 더 많은 이들을 만나야 하며, <개청춘>에서만 끝나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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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OCN 시리즈 채널에서는 하우스 시즌 3을 해주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시즌 6하는 중이라고 하던데.

 

시즌 1, 2는 뜨문뜨문 봤고, 시즌 5는 몇 번 봤는데, 사람들이 하도 바뀌어서 적응이 잘 안되고.

 

미국 드라마는 그렇게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CSI는 라스베가스는 아주 재밌게 봤는데, 뉴욕이나 마이애미, 재밌게 보기가 어려웠고.

 

아내가 자료로 '섹스 앤 더 시티' DVD 전편을 샀는데, 영 적응하기가 어려워서 한 편도 제대로 앉아서 보질 못했고. 하여간 거의 안 보는데, 하우스, 재방송까지 꼬박꼬박  챙겨가면서 본다.

 

물론 의학용어 엄 나오고, 나도 자막 뜨문뜨문 읽어가면서 보는 중인데, diagnostics라는 주제가 정말 재밌다.

 

진단.

 

선무당이 사람 잡고, 사람들은 늘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병균들마저 속이고, 거짓말하는 존재.

 

2년 전에 코난 도일 한참 공부할 때, 셜록 홈즈 메디칼 버전이 있다고 그렇게 소개를 받아서 보기 시작했는데. 오락성으로는 19세기 셜록 홈즈 뺨친다만.

 

하여간 우리 집의 대박이다.

 

<선덕여왕>이 도대체 요즘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개뻥 시리즈로 바뀌는 요즘, 하우스와 강희대제로 넘어가서, 중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중이다.

 

그런 드라마는 뭐하러 보냐고 하지만. 난 원래 아내가 질릴 정도로 아침 드라마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는, 드라마 맨이다.

 

(그 대신 골프도 안 치고, 내 또래 남자들이 대부분 즐기는 것들은 거의 안 한다. 와인 바도 안 가고, 칵테일 바도 안 가고. 노래방도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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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영화 이야기 2009. 10. 2. 18:21

 

쿡 티비에서 추석 특집으로 영화 몇 개를 올려주었는데, 그 중에 손에 잡히는 대로 본 게 미키 루크의 <레슬러>.

 

아마 잘 생긴 걸로는 윤발이 오빠 다음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의 늙은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과 비슷했다.

 

얘기는 싸구려 질질, 놀랄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 싶지만. 그 안에 짙은 삶의 페이소스가 있다면, 아주 오래된 80년대 감성? 아니면 더 올라가서 70년대 감성?

 

죽을 줄 알면서도 램잼을 작렬시키는 미키 루크, 마약과 세월의 무게를 그도 감당하지 못했던 것처럼, 단 한 번이라도 무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늙은 퇴역들, 그 삶의 무게 같은 게 느껴졌다.

 

아, 인제 미키 루크도 저렇게 되었구나.

 

한 때는 클락 케이블과 같은 전형적인 미남 배우들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들 했던 것 같은데, 배우로서의 미키 루크에게 인생은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마약, 스캔들, 그런 것들에 시달리면서 퇴물이 된 동네 레슬러의 모습이나 미키 루크의 모습이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저런 모습을 보면,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 이런 감성으로 느꼈을 것 같은데, 문득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옛날 친구들 모이는 자리에 가면, 이젠 친구들쯤 절반은 앞이마가 훤하게 벗겨졌고, 배가 남산만해지기로 했다.

 

물론 더벅머리 그대로 하나도 안 변한 친구들도 있지만, 남산만한 배를 끌고 있는 친구들 보면, 세월의 무게가 중압감처럼 느껴진다.

 

레슬링과 관련된 영화로 제일 재밌게 봤던 것은, 레옹, 바로 그 레옹의 장 르노가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서 레슬러로 돈 몇 푼 버는 신부로 나왔던 영화가 있었다. 한국에는 개봉이 되었었나?

 

사람의 감성도 바뀐다는 생각을 최근에 부쩍 많이 하게 되는데, 미키 루크를 보면서, 나 감성 자체를 돌아보게 된다.

 

가족과 지인들 모두가 등 돌리는 삶 그러나 또한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무대. 그 기묘한 이중성, 어쩌면 우리는 연극에서 끝끝내 내려오지 못한 퇴물 배우 아니면 레슬러와 마찬가지로, 삶을 하나하나 접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촛불집회 때 전대협 깃발 들고 모였던 아저씨 부대, 문득 그 장면이 겹쳐져 보였다. 그들 모두 생활인이 되었을까, 간만에 무대에 다시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어쩌면 80년대, 우리 모두는 무대에 다 같이 한 번 올라가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대에 올라간 기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여전히 지우고 싶은 부담스러움일까?

 

램잼...

 

얼마 전부터 친구들이었을 것이 뻔한 넥타이 매고 회사다니고 있는, 이제는 부장에서 이사 사이 어디에선가 아웅거리며 살고 있을 그 동년배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마흔, 남성, 한국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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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청춘, 첫 상영이 잡혔다.

 

나는 개봉관에서 처음 상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랬는데, 영화 아직 심의도 안 받았단다.

 

심의 받고 개봉관 잡기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일단 대학을 중심으로 공동체 상영 형식으로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처음 상영을 시작하는데, 원래는 요금이 있지만, 학교단체에서 좀 지원을 받게 되어서...

 

자율요금으로, 내실만큼 알아서들 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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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의 <어느날 그 길에서>는 참 괜찮은 다큐이고, 정확하게 딱 한 장면, 모든 사람이 우는 포인트가 있다. 학생들 모아놓고 상영을 했었는데, 전원 울었다.

 

그 정도니,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이 영화를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생태요괴전>에서는 상당 분량을 이 영화에 할당했다.

 

다큐 <개청춘>은, 20대이고, 마이너이고, 게다가 여성, 모든 불리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영화이지만, 내가 보기에 상업성은 충분히 있다.

 

민감한 주제, 정확한 포착, 그리고 웃어야 할 장면과 울어야 할 장면이 있다. 웃음은 돌발적이고, 울음은 은근하다.

 

대학교 몇 군데에서 상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나, 아니면 지방에서 상영하는 것도 도와줄 수는 있는데...

 

일단 정말로 힘을 모아서 해보고 싶은 일은, 개봉관에서 상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독립영화라는 의미 자체가 상업적 루트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지만, 상영은 또 제작과는 별도의 장치이므로,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 어떻게 힘을 모아주어야 <개청춘>이 개봉관에 걸리게 되는가, 이 방법을, 그러나 나는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서명을 해주면 힘이 되는지, 아니면 모금을 해주면 힘이 되는지, 이도저도 아니면 CGV 게시판에, 영화 틀어주세요, 땡깡을 부리는 게 도움이 되는지.

 

영화 보겠다고 사전 예약하는 영화 관람객 운동이 될까? 하여간 공동체 상영도 좋은 방법이지만, <개청춘> 정도의 상업성을 갖춘 영화는 commercial한 시장에서 같이 경쟁해서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시시껄렁한 멀티플렉스에서 요즘 개봉하는 영화보다는 <개청춘>이 100배 낫다.

 

하다못해, 20대 연인들이 극장에서, 왜 우리는 근사하게 스테이크를 먹지 못하지라는 질문에 서로 당당하게 답변할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을 것이다.

 

지혜를 좀 모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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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영상 인류학이라는 게 슬슬 유행을 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몇 달 전에 관련된 곳에서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있었는데, 내가 원래 심사위원을 안 하는 게 살아가는 신조이다.

 

나는 무엇인가 선정하거나 상을 주는 위치에 있지 않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다. 심사위원이 되면 권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심사위원을 통해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이유는, 심사위원의 눈과 그러한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작업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과 같은 눈을 가지고, 같은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기획자의 위치나 감독자의 위치에 있기 보다는, 똑같이 현장에서 굴르는 실무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그런지 꽤 된다.

 

내가 20대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 내 주변의 조언자나 감독자, 그런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료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대학 교수가 되지 않으려고 생각한 것도, 그리고 '선생'으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이유도, 내가 꼰대처럼 되어서, 위의 모습에서 보지 않으려고 한 그런 생각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극장에서 잘 개봉하지 않는 다큐멘타리를, 그리고 DVD 제작을 통해서 판매하지 않고 공동체 상영 등으로만 볼 수 있는 다큐들의 DVD를 방에서 편안하게 담배 뻑뻑 피면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나는 뭐라고 남들처럼 잠깐 공개되는 인디 상영관에서 줄 서서 보지 않고, 남보다 조금 먼저, 혹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이렇게 공들여서 만든 다큐들을 보게 되는 것인가.

 

2.

 

여성 다큐집단 '반이다'의 개청춘은 중간중간에 티저들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20대와 관련된 시사다큐는 지난 몇 년 동안 몇 개나 같이 만들 기회가 있었고, 후지 TV, 아사이 TV 그리고 NHK와 몇 번을 같이 만들었었다. 그래서 특별히 더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나도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시사 프로의 형식 그리고 다큐라는 형식을 통해서 참 많은 프로들을 같이 만들었었다. 르뽀에도 몇 번이나 참여했었고, 그 중에 한국과 일본에서 출간된 것도 몇 권이나 된다.

 

새롭게 편집되어 개봉된 다큐멘타리 <개청춘>은 이와부키 히로치의 <조난 프리타>와 주로 비교되는 것 같다. 개청춘 내에서도 <조난 프리타>를 같이 보는 장면이 나오고, 또 그로 인해서 20대 문제를 제기할 때 생겨나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드러내는 중면이 있다.

 

실제 제작자들도 그 영화와 많이 비교하는 듯하고, 또 셀프 카메라와 같은, 최근에 유행하는 그런 형식도 유사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내가 들은 평은, <조난 프리타> 보다는 훨씬 재밌고, 유쾌하고, 경쾌하다...

 

인데, 그 말은 맞기는 하다. <조난 프리타>는 무겁고, 진중하고, 철학적이다.

 

반면에 <개청춘>은 유쾌하고, 명랑하며, 현실적이다. 그리고 조금 더 입체적이다.

 

3.

 

그렇지만 <개청춘>은 <조난 프리타>와 비교될 다큐멘타리가 아니라, 다큐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바로 그 장르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일종의 메타 텍스트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일본의 20대 다큐 vs 한국의 20대 다큐, 이런 포맷 보다는 전문 다큐 vs 아방가르드 다큐, 혹은 다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그런 것으로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제작하는 20대 스탭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유형의 20대들, 그 두 가지의 층위는 때때로 충돌하고, 때때로 해소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두 번 있는 것 같다. 군대를 앞둔 인식이, 더 이상 다큐를 계속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 고민과 함께 다시 다큐팀에 합류하는 장면. 영화의 첫 째 클라이막스이다. 사실 나는 그가 계속해서 촬영을 할지, 그렇지 않을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결국 이전에 촬영한 부분들을 드러내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장치들을 찾아내게 될지. 그 얘기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어떤 액션 스릴러보다도 계속해서 결말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고, 그 장면의 클라이막스가 인식과 제작팀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또 다른 클라이막스는, 그리고 영화의 진짜 클라이막스는 민희가 집을 나오는 장면이다. 대개 하나의 모순은 또 다른 꼬리를 물고 있는 다른 모순의 연장이며, 이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서 터져나오는 장면들이 영화에서는 클라이막스를 형성하게 된다.

 

고졸, 정규직, 민희라는 두 가지 조건을 형성하는 배경 속에 있는 남성 폭력 그리고 영화 초반에 스쳐 지나갔던 민희의 엄마, 이런 것들과 한국의 20대에 대한 모든 얘기들이 총합적 모순처럼 옥탑방에서 폭발했다.

 

전혀 울만한 장면이 아닐 듯 싶지만...

 

이 장면을 보고 울지 않는 남성은 자신의 젠더적 감성에 대해서 한 번쯤은 의심해봐도 좋을 듯 싶다.

 

4.

짧게 짧게 나온 음악들이 아주 좋았고, 무엇보다 인트로에 나온 음악의 나팔 소리들이 경쾌해서 너무나 좋았다.

 

<개청춘>이 어느 정도 흥행을 할지는 모르지만, 상업적 성공과는 또 상관없이, 과연 21세기 한국에서 다큐라는 독특한 영화의 위치가 무엇이고, 어떤 길을 갈 수 있는가, 제작자와 대상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화해해나갔던, 한 길을 먼저 걸어간 영화로서 한국 다큐사에 남지 않을까 싶다.

 

있는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솔직히 보여준다고 해서 다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장면을 만들고, 솔직한 그림들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내적 흐름을 만들고, 플롯들을 잡아내는 것에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다큐는 찍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고, 진짜 일은 바로 편집 작업에 있다는 세간의 평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한편으로 <개청춘>은 한국의 20대들에게 바쳐진 작품이지만, 정말로는 아직 메이저 매체의 얹저리에서 자리를 잘 못잡고 있는 한국 다큐멘타리에게 바쳐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적이며 성공적인 다큐를 한 번쯤 볼 수 있는 기회들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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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거야 내 취향이니까.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B급 감성을 좋아하고, 류승완의 '아라한 장풍 대작전', 요따구 영화를 더 좋아한다. (이 영화에, 최근처럼 유명해지기 전의 칩거 시절 이외수가 등장한다.)

 

하여간 그래서 임권택 영화는 뜨문뜨문 보고, <서편제>는 영 내 취향 아니다. 하여간 그렇긴 한데.

 

얼마 전부터 쿡 TV를 PD 저널 칼럼 때문에 달게 되었고, 이 안에 VOD 영화들이 있어서, 틈 나면 하나씩 꺼내본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집에서 뒹굴뒹글 하다가 짜장면 시켜먹으면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보다보다 더 볼게 없어서, 허름한 B급 영화들 중에서 대박을 기대하며 - 물론 대개는 실망하지만 - 보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쿡 TV의 VOD 서비스는, 정말로 비디오방이 TV 안으로 들어온 딱 느낌이다.

 

하여간 그리그리 하여 임권택의 2004년 영화, <하류인생>을 보았는데.

 

영화는 재밌고,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르기 해주었다.

 

나도 이제는 짤탱이 없이 아저씨인가, 뭐, 그런 묘한 후줄근한 느낌을.

 

제목은 하류인생이지만, 여기에 하류인생은 나오지는 않는다.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하는 무소속 진보주의 정치인,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그녀의 딸, 명동파의 결국 제일 잘 나가게 되는 주먹, 이런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자꾸 시라소니 생각이 났고, "동데, 한 판 붙자우" 하던 <야인시대>의 대사가 자꾸 입에 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채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결국 유화풍이 되어버린 어색한 느낌 속에 그야말로 '공화국' - 경향신문의 그 공화국 시리즈 - 의 출발이 생각나는 그런 영화였다.

 

여선생 역할을 맡은 여배우가 인상에 남았는데, 그녀의 이름이 김민선이었다. 영화를 짝짝 입에 붙게 맛갈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는데, 한국 영화에서 이런 여배우를 본 게 도대체 몇 년만인가, 박수를 다 쳐주고 싶었다.

 

하여간 임권택 손에만 들어가면, 하류인생도 상류인생이 되어버리는, 아주 묘한 불균형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 교묘하게 만들어진 불균형이 바로 임권택의 영화를 예술로 만드는 그 힘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김민선이 어깨에 힘 주고 연기했다면, 우와, 또 임권택 필 난다, 하면서 우웩 했을텐데.

 

정말로 어깨에 힘 빼고, 부드러우면서도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었던 60~70년대의 한국 여인들의 묘한 내적 모순들, 그걸 김민선이 재연한 것 같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막내 이모 생각이 났고,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 놀러오시던 그 수많던 교대 출신의 여 선생님들, 나에게 이모라고 말해주던 그 수많은 얼굴들이 살짝 머리를 스쳐갔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 당시에는 드문 양장을 곱게 차려입고 우리 집에 놀러오시던 그분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실까, 그런 지나버린 시절의 노스탈지아가 살짝 느껴지면서.

 

2004년도 영화인데, 그래도 시간을 다루는 데에는 임권택 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참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데, 임권택은 간만에 B급 영화 찍던 다작 시절의 감성을 잠시 회복한 듯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임권택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던 영화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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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디 영화와 관련되어 극장에서 하는 토크쇼에 두 개나 참가를 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다큐멘타리 제작과 관련되어 돈을 좀 줄테니, 내용 있는 다큐를 좀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건너건너 받았고, 그래서 다큐 제작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나는 촬영이나 그런 건 잼뱅이니, 내가 뭘 하겠다는 건 아니고, 정부에서 돈 따고, 기업 후원 받아서 돈 만들어내는 건, 하던 가락이 있어서, 20대들이 다큐를 하고 싶다면, 돈이나 지원해주는 그런 제작을 해볼 생각이 있었다.

 

결국 접은 건, 명박 정부한테 돈 받았고 궁시렁궁시렁 하는 소리들을 괜히 듣고 있을 필요도 없고, 또 정부 돈이라는 것은 아무리 꼬리표가 없다고 해도, 꼬리표 없는 공짜는 없다. 무엇인가 또 양보하고, 결국에는 검열을 하게 된다.

 

이래저래, 귀찮다, 마침 몸도 아프고. 그래서 접고 나서 인디 영화하는 사람들한테 약간의 마음의 빚이 있어서, 이름이라도 올려달라는데, 그 정도야.

 

하여간 그 첫 번째 일로, 오늘 인디 스페이스에서 하는 청춘불패라는, 의미는 있고, 좋은 다큐이지만, 감성상 좀 서글프고, 약간은 후반부에서 늘어지는 그런 다큐를 봤다.

 

영화 보다가 세 번쯤 울었는데, 내가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우는 건 아무 사건도 아니다.

 

심지어 차마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오드리 또뚜의 <코코 아방 샤넬>을 보면서도, 사실 울었다. 뭘 보면서 내가 울었다는 것은, 아무런 정보값도 없는 일이다.

 

난 눈물이 헤프다. 주성치 영화에 안 울면서 본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라면, 얼마나 헤픈지.

 

몇 년 전인데, 강연하다 말고 운 적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타... 그날따라 몇 백명 모인 큰 강연이었는데.

 

하여간 인티 스페이스에 준 다큐 DVD가 몇 개 있고, 극장에서 기다리다가 자신이 만든 다큐라고 DVD를 건네 준 감독들이 몇 명 있었다.

 

솔직히, 이거 한 번 봐주세요, 하고 DVD를 건네는데, 괜히 코끝이 짜릿해졌다. 난 DVD든 CD든, 어지간하면  다 돈내고 사서 본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다.

 

간단한 다큐라도, 몇 년은 고생하는데, 봐 달라고 그냥 건네주는 감독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도 정말 무명시절 거치면서 출판사 문 앞에서 "출판 불가"라고 타박맞고 쫓겨나서, 들어오는 길에 그냥 쓰레기통으로 보낸 책이 10권 가깝다.

 

<88만원 세대>도, 출판 불가 판정을 받은, 그것도 몇 군데 출판사에서 받았던 원고였다.

 

독기가 올라서, 하나도 안 고치고, 그 대신 더 좌파 필 나는 내용을 더해서, 그렇게 출간한 원고였다.

 

<조직의 재발견>이, 내가 마지막으로 출판 판정을 받은 책이었다.

 

책 두 권을 놓고, 두 개의 원고가 다 출판 불가라는데, 참 홍대 앞에서 에디터 기다리면서 만화가게에서 만화 보는데, 자꾸 눈물이 만화책 위로 떨어지던데.

 

짜장면 까지 시켜먹으면서 다섯 시간 동안 홍대 앞에서 기다리다가 에디터에게 바람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이 노랬다. 정말 노랬다. 그런 시절이 3년 전의 내 모습이다. 마흔을 코 앞에 남겨둔, 에디터 전화 연락 기다리면서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너무 배 고파서 짜장면 시켜먹던.

 

뭐, 그래도 청춘불패의 주인공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친구 불러서, 12시까지 술 처먹고 잘 놀다가 집에 들어갔다.

 

어쨌든 오늘 인디 스페이스에서 받아온 다큐들, 시간 나는 대로 곰곰이 하나씩 보고, 꼼꼼하게 독후감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이 장면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된다, 오늘도 풀빵으로 끼니를 떼우며 카메라 들고 몸빵하는 다큐 감독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최선의 경의와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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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영화 이야기 2009. 9. 6. 00:13

간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코코 샤넬>...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 가브리엘 샤넬에 대한 얘기를 좀 길게 썼고, 사실상 결론이 가브리엘 샤넬인 셈이라서 봤다만...

 

샤넬 얘기를 가지고 이렇게 영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구나, 그리고 오드리 또뚜가 나오는 데도 이럴 수 있구나, 사실상 경악을 금치못하게 재미는 없었다.

 

샤넬이라는 최고의 상품을 가지고도 이렇게 장사를 못하는 수도 있나 싶었다. 꺄날 +에서 후원한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재미는 있었는데,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지금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샤날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었고, 내가 샤넬을 얼마나 좋아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니까, 더 괴로웠다.

 

그래도 배운 건 있다. 한국은 망할 것이라는 점.

 

용산 CGV에서 봤는데, 관객이 열 명이 채 안되었는데, 이 관객들은 아주 특색있는 사람들이었다.

 

40대 중후반은 될듯한 부부가 전부였는데, 아마 샤넬을 동경하거나 흠모하거나 혹은 소유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남편을 끌고 온,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내 극장 생활에서 이렇게 중년 부부들로만 차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 본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마크 제이콥스의 옷을 입는다거나 아니면 샤넬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뭐라고 그런 적은 없다.

 

샤넬의 옷을 입는다거나 샤넬의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샤넬의 혁명 정신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래서 일종의 언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에서는 별 중요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푸르동의 저서를 샤넬이 읽게 된다. 그리고 푸르동의 책을 다 읽은 샤넬은, 아마 틀림없이 다음 책으로 니체를 읽게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자본론>을 모든 것의 전부라고 아는 사람들은 푸르동을 아주 이상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비과학적 접근을 한 사회주의자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 프랑스 좌파의 역사에서 푸르동은 아주 중요한 사상가이다.

 

푸르동과 샤넬의 만남, 그리고 그의 혁명성 같은 것들은 아직도 채 해석이 끝나지는 않은 일이라고 알고 있다.

 

하여간 충격적인 것은...

 

샤넬을 그렇게 좋아하면 샤넬에 대해서 좀 궁금해지기라도 할텐데, 그런 흔적은 극장에서 전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니, 샤넬의 정신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샤넬처럼 돈 벌고 싶지는 않은가 보지? 샤넬처럼 돈 벌고, 샤넬처럼 신나게 사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닌가?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샤넬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전혀 궁금증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 절망하고, 이 나라가 결국 망하기는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세상에는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과 샤넬과 같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두 부류의 존재로 나뉘어진다.

 

지금 좌파가 해야 할 일은, 내 평소의 소신이라면, 샤넬과 같이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샤넬처럼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한국은 소비하면서도 도대체 뭘 소비하는지도 모르고, 생산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샤넬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가슴이 설래이지 않는 사람들, 도대체 입에 밥이 들어갈까, 그런 생각이 좀 들었다.

 

샤넬을 소비하면서 샤넬에 대해서 궁금해서 어쨌든 극장까지 오는 40대 주부들과, 역시 샤넬을 동경하면서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20대 여성들이 경쟁하면 누가 이길까?

 

어쨌든 영화라도 보는 아줌마들이 결국에는 파라다임 싸움에서 이기게 되지 않을까?

 

샤넬도 푸르동 정도는 읽고, 자본론도 읽었고, 니체도 읽었다. 그리고 20세기가 열었다.

 

샤넬이 연 20세기는 버나드 쇼와 같은 남자들이 열어제낀 그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이거 진짜... 샤넬 전기라도 한 번 쓰던지 해야지.

 

아르테꼬의 진지한 전사들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국가 장식학교로 번역되나? 하여간 정부에서 연간 수 백만원씩 재료비 지원하면서 패션을 배우는 사람들을 좀 안다.

 

20대 초반에, 샤넬이 사치품이라고 한 마디 했다가, 아주 뼈도 못추리게 프랑스 넘들한테 논쟁으로 당했던 기억이 소록소록.

 

넌 샤넬을 이해못하면, 20세기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아주 처절하게 당하고, 뼈도 못추리게 당한 적이 있다.

 

하긴, 그러면 뭐하나...

 

프랑스도 사르코지한테 넘어가고, 자신들이 자랑하는 그 생산체계도 마크 데이콥스 같은 뉴욕 좌파들에게 결국 조금씩 넘어가는 중인데 말이다.

 

한국은 패션계로 들어오면, 우파와 극우파들이 득실득실하다.

 

프랑스는 패션계의 마네킹이라고 부르는 모델들까지, 좌파들이 득실득실하다.

 

이 차이가 생산과 소비의 차이인 것 아닐까, 그런 가설들을 하나 가지고 있다.

 

우파들이 패션 시장에서 쪽도 못 쓰는데, 우파 코드로 대구에서 밀라노 프로젝트 하다가 결국 지방 토호들 주머니만 채워주게 되었다.

 

우파들은 생산, 특히 이론과 예술 분야에서 아주 약하기 때문에, 결국 밀라노 모델이든, 파리 모델이든, 프랑스 모델이든, 그런 생산의 영역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좌파 코드와 좌파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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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 유학 시절에 케이블 TV를 잠깐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나는 TV는 공중파만 보는 편이다. 유학 시절부터 머리 맡에 CD를 켜거나 TV를 틀어놓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남들처럼 조용한 방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차 마시는 중에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나는 조용해지면 잡념이 늘어서, 대체적으로 뭐라도 틀어놓는 편이다. 이게 참 성격 이상하다. 시끄러운 데에서는 아무 일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조용한 방에서는 또 아무 것도 못한다.

 

대체로 그렇게 살았는데...

 

이사하고 나서는 청와대랑 등을 대고 북악산 한 가운데의 계곡 입구에 살고 있는데, 여기가 지독할 정도의 난시청 지역이다. 튜너를 위해서 꽤 비싼 FM용 안테나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도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여덟달만에 포기하고 결국 케이블을 들이기로 했다. 매주 PD 저널에 칼럼을 쓰는데, TV는 하나도 보지 않고 PD들에게 뭔가 말을 한다는 것도 영 양심상 꺼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 내리는 호남선'을 참으면서 선덕여왕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쿡 티비를 달았다.

 

아... 이게 스타 리그가 안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시간 때우기에는 스타 크래프트 만한 게 없는데.

 

그 대신에 VOD 기능이 있다. 좀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하여간... DVD 보는 마음으로 너무 뻔해 보이는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리하여 개시 기념으로 영화 한 편을 때렸는데, 이게 <타짜>다. <타짜>는 옛날에 만화로 좀 보기는 했는데, 뜨문뜨문 본 이유 때문에 그렇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섹스, 반전, 돈, 전형적인 B급 코드였다.

 

이 영화는 아마 한국 영화사를 정리한다면, 결국은 김윤석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영화 정도로 남지 않을까... 싶다.

 

호러 특히 괴기 영화나 무서운 영화에 대해서는 나도 한 B급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혀를 내두룰 정도로 무섭다고 느낀 영화가 바로 <추격자>였다. 솔직히, 이 영화는 이제는 좀 끝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포가 끝까지 같고,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김윤석은... 간만에 보는 좋은 배우 같다. 그는 <즐거운 인생>에서도 아주 느낌이 좋았었다.

 

사람마다 스타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송강호를 비롯한 몇 명의 맨 앞에 서 있는 배우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싫은 이유를 찾으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냥 내 스타일 아니라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어지간하면 싫은 소리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김윤석이 가진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여간 잠깐 그렇게 하고...

 

역시 나는 아저씨는 아저씨고, 옛날 사람이다.

 

DVD로 3편 세트를 전부 가지고 있는 <영웅본색>을 틀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빌려가서 몇 년째 돌려주시지를 않는다.)

 

<영웅본색>을 볼 때, 비로소 나는 가장 편안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나는 왜 나에게 윤발이 오빠 느낌이 나지 않을까, 아주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어쩔거냐. 하늘이 나를 이 형편 없고 느낌 없는 모습으로 태어나게 했는데 말이다.)

 

(참 쿡 티비의 VOD 리스트 중에는 김현진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바로 그 <언니가 간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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