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경제학 _출발

1.
'88만 원 세대' 쓰기도 전에 리스트에 올라가 있던 책 중의 하나가 '판데믹 경제'였다. 좀 유래가 있다. 수리생물학 공부할 때 migration 모델과 epidemic 모델 같은 것을 워낙 재밌게 보기도 했고.. 또 친했던 친구 한 명이 보건경제학을 전공해서, 이래저래 옆에서 좀 줏어들은 얘기들이 있기도 했고. 하여간 한미 FTA 논쟁을 하면서 제약 회사 문제 같은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기도 했고. 

2008년 정도에는 '괴물의 탄생'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서, 다음 시리즈로 넘어가기 전에 판데믹 문제 한 번 다루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좀 했었다. 그렇지만 막상 책을 쓰지는 못했다. 바빠졌다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도 좀 있고, 분자생물학 공부가 엄두가 안 났다. 90년대 중반에 분자생물학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좀 열심히 해둘 걸.. 결국 접었다. 

지난 가을이다. 그 시절 생각이 문뜩 나면서, 올해는 좀 짬을 내서 판데믹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이유를 찾으려면 몇 가지 계기가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문득' 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바이러스도 좀 살펴보고, 최근 흐름 같은 것들도 좀 봤다. 마침 김탁환 선생의 "살아야겠다", 메르스를 다룬 소설도 그 즈음에 읽었다. 

하여.. 

바이러스를 어떻게 다룰지, 언제 쓸지, 전체적인 지형도를 살피던 중에 코로나가 덜컥 터져 나왔다. 마침 또 그 때 기존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뭐뭐 있었는지, 그러던 중이기도 했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거다. 

2.
그 뒤의 일은 사람들이 아는 그대로다. 

아마 청와대 말고는 서울시나 총리실 등 어지간한 데에는 대부분 조언도 해주고, 자문도 해주게 되었다. 계기가 된 게.. 

1차 휴지기에 들어갔을 때, 대통령과 총리가 이젠 좀 경제활동으로 복귀해야.. 그런 얘기할 때, "바이러스는 이제 딱 자리 잡았다", 이렇게 분석을 했었다. 이제 시작인데 뭔 말? 그 직후에 바이러스 폭풍이 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된 건.. 우리나라에서 경제 하는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 정도, 몰라도 이 정도로 모를 줄 몰랐다. 

알고도 사람들이 겁 먹을까봐 이렇게 얘기하느냐, 아니면 정말 모르느냐.. 나는 그들을 좀 만나봤다. 모른다. 나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경제관료들은 '재난 자본주의', 정석대로 움직였다. 재난을 핑계로 자기들 하고 싶은 숙원 사업들을 해결하는.. 정말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나도 깜짝 놀랐다. 

악마가 악의가 있을까? Pure evil, 순수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지난 몇 달, 정말로 나는 악마를 본 것 같다. 

야, 정말 이렇게 하다가 구한말에 조선이 일본에게 넘어갔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악은 의외로 순진무구, 순수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난 그걸 본 거 같다. 

3.
steady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어른이 되고나서 그렇게 되었다. 빨리 움직여야 할 때가 있고, 천천히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지공이 진짜 중요할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장 책을 써야한다고 그러기는 하는데,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4대강 때나 FTA처럼 시급하게 책을 쓴 적이 나도 있다. 당장 급하게 움직일 때, 빠르게 책을 써서 대응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11월까지 충분하게 전개되는 과정도 보고, 자료도 들여다볼 만큼 충분히 들여다보고, 그 후에 쓰기 시작할 생각이다. 만약 다 끝나면? 안 쓰면 그만이다. 내가 이미 쓴 책만 37권이다. 별 의미도 없이 그 수치 하나를 더 늘리는 일에는 아무 관심 없다. 

11월까지 봐도, 아직 전반전도 끝나기 전일 것이다. 그 때까지 어디가 버텼고, 누가 아직 시스템을 움직이고 있는가, 충분히 볼 수 있다. 애 둘 키우면서 살다 보니, 나도 초조함 같은 것들과는 좀 거리가 먼 인간이 되었다. 

'애프터 코로나', 다들 이 얘기를 한다. 지나친 속공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러스를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한 발이라도 먼저, 그건 과거적 방식이다. 한 발이라도 늦게, 그러는 수밖에 없다. 

11월이면 과연 백악관은 워싱턴에 있을까? 모를 일이다. 청와대는 서울에? 그것도 모를 일이다. 

처음에 1학기 내에 방학은 어렵다고 봤다. 어쩌구 저쩌구, 1학기 방학은 여전히 쉽지 않다. 준비 된 게 거의 없다. 여는 건 자기들 마음이지만, 결국 닫게 될 거라고 봤다. 

트럼프가 깨방정을 떨 때, 역시 터는 건 트럼프야, 재밌게 보기는 했다. 여름이 지날 때까지 백악관이 지금 그 자리에서 미국을 지휘하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이 과정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한 건 독일의 메르켈 그리고 뉴욕 거버너 쿠오모. 매일 밤마다 쿠오모의 특강을 봤다. 

우와. 내 인생을 정말 반성했다. 난 너무 초조하게 살았고, 머리만 많이 쓰려고 하면서 살았다. 

한 달간 쿠오모를 보면서,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더 따뜻하게, 더 사랑하고, 더 많은 감정을 품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가 빨리 열자고 난리 칠 때에, 쿠오모가 차분차분, 매일 설명을 하면서 한 얘기가.. steady라는 단어 하나를 말한 셈이다.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이순신과 원균의 관계와 비슷하다. 과정이야 어떻든, 원균은 전멸했다. 

지금 빨리빨리, 전멸로 가는 길이다. 

 어려운 것은 맞지만, 전멸은 위험하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대부분 속공 스타일이었다. 남들보다 먼저 보고, 먼저 분석하고, 먼저 대응하고.. 생각해보니 내 삶은 그렇게 속공을 사랑하는 삶이었다. 

나도 50이 넘었다. 7살, 9살, 두 아이와 산다. 내가 빨리 해야 하는 일은 없다. 지공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는 지공으로 대하는 수밖에 없는, 매우 강력한 바이러스다. 

그리고 나는 이제 기다리는 일을 아주 잘 하는 스타일로 변했다. 물론 무턱대고 기다리지는 않지만, 초조해서 먼저 움직이는 나이는 지났다. 

11월까지 충분히 보고, 그 상태에서 차분하게 분석해도 된다. 

'포스트 코로나'니 '뉴노멀'이니, 다 입방정이다. 뉴노멀은 2008년에 나온 용어다. 그렇게 V자로 반등하면서 저성장 기조의 새로운 균형을 염두에 둔 단어인데.. 

아직 노멀이니 뉴노멀이니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 11월까지 과연 몇 나라가 정부 꼴을 유지하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4번에서 5번 정도의 빅 웨이브를 올해가 가기 전에 겪게 될 것 같다. 그 중에 픽크 웨이브가 하나냐 두개냐, 그런 논의가 한참인데, 뉴노멀은.. 그야말로 cnn 같은 얘기다. 아직 멀었다.

내가 뉴노멀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은, 지금 뭐라뭐라 하는 말의 대부분이 9월이 가기 전에 뒤집힐 것 같아서 그렇다. 그건 내가 해도 마찬가지다. 나라고 무슨 용 빼는 재주가 있다고..

사람 능력은 다 거기서 거기다. 다 비슷해도 결과의 차이는 기본적으로는 시점을 잡는 방식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거 아닌가 싶다. 

이번에는 지공이다. 극한의 지공을 보여주고 싶다. St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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