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방송후기3. : ! 인강

 

오후만 있는 삶, 이게 내가 꽤 오랫동안 살아왔던 패턴이다. 보통은 아침 5시나 6시까지 원고 작업을 하는데, 어떤 날은 오전 9시 이상까지 하는 날도 있다. 보통 작업 시작하는 것은 11시나 12. 그리고 나면 오전은 없고, 오후에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후에는 인터뷰나 자료조사 같은 것들 아니면 대외 일정 같은 걸 하는데, 그러다 보니 가능하면 아무도 안 만나려고 하고, 아무 곳에도 안 가려고 하는 습관이 생겼다.

 

 

(MC 임종윤 기자와 슈퍼모델 황세진씨. 8 30분에 생방 준비에 돌입하는데, 출연진이 많아서 분장 등 방송 준비하다 보면, 9 10분까지 좀 벅차다. 몇 마디 맞춰보지 못하고 바로 들어간다.)

 

 

그러던 내가 아침 방송에 나오기로 한 것은, 어차피 이제는 아기를 아침에도 봐야 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작업 패턴을 바꿀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에 나가라고 가장 적극적으로 권장한 거은 아내였는데, ‘고소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다음 주까지만 아침 방송이고, 4월부터는 오후 4시 시간대로 옮겨간다.

 

정의는 승리한다!

 

누군가 20대 때 내 사주를 봐주었는데, 대학교수 되는 건, 사주에 없단다. , 그런가 보다 하고 산다. 그렇지만 작은 운들은 있는 편이다. 오후방송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래, 내가 살면서 소소한 운은 좀 있는 편이지, 그 생각이 들었다.

 

 

 

 

(MC 옆 자리에 슈퍼모델을 앉혀서 자리를 꽉 채우는 게 제작진이 소망이지만, 그렇게는 좀 어렵다고 한다. 황세진씨 앉아 있는 자리가, 원래 내가 앉던 자리였다. 이 오른쪽에 세 명을 앉히는 방법에 대해서 요즘 다들 연구 중이다.)

 

오늘 방송은 얼마 전 우정파괴 광고로 알려진 바로 그 인터넷 강의에 대한, 그야말로 인강편이다. 이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여러 사람들이 격분을 토로했는데, 나는 분노라기 보다는 착잡하면서도 복잡한 그런 심경이었다. 첫 느낌을 얘기한다면, 드디어 한국의 사교육이 갈 때까지 갔구나, 그런 걸 본 것 같았다. 주식에는 목에서 먹어라라는 말이 있다. 대충 하라는 얘기인데, 너무 끝까지 가면 반드시 다른 위험이 따른다는 얘기이다. 사교육 업체와 한국 사회의 관계가 어떻게 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요즘 <모피아>의 다음 소설인 교육 마피아 얘기를 한참 구상 중이다. 원래는 교육청 내부의 관료들을 중심으로 이 얘기를 풀어나가는 게 작년에 세웠던 구상인데, 이 우정파괴 광고를 보면서 10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다른 스토리 라인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또래 친구로 남자와 여자와 짙은 우정과 애정을 나누는 어느 고3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생각이다. 실제 몇 년 전에 잘 알고 지내던 어떤 고3 소녀로 원 모델이 있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요즘 대학 서열화와 사교육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내 관심사로 올라와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담당 PD에게 잠시 카메라를 맡겼더니, 정말로 카메라를 찍어놓았다. , 사람의 직업적 관심이란!)

 

어제 오후 늦게까지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키맨을 섭외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불발, 곽동수 교수 혼자 나오게 되었다. 원래 이 양반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에 게스트로 나가면서 알게 된 사이인데, 워낙 자주 만나다가 이렇게 방송에서 만나면, 갑자기 점잖 빼면서 얘기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다.

 

사교육, 그 중에서도 인터넷 강의,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 대해서, 정말로 마음이 착잡할 뿐이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사교육 업체가 이렇게까지 증시에 상장하게 된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특수한 사례는 특수한 사례이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얘기들이 꼬리를 물면서 한 시간 반이 정말로 후딱 갔다. 토크쇼의 좋은 점은, 뭔가 결론을 내기 위한 압박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고, 단점은, 오늘도 당장은 답이 없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는 것.

 

사교육이나 인터넷 강의에 대한 내 기본입장은 이렇다. 이 모양의 상품이 30년 혹은 50년 후에도 여전히 지속가능한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 인강이 없어지거나 아니면 우리 나라가 망했거나.

 

인강 권하는 사회, 어쨌든 2013년 신학기는 그렇게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시작되었다. 입맛이 쓰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