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의 경제학
변영주 감독의 '화차'가 개봉을 했다. 이 영화가, 여러 가지로 나에게는 의미심장한 영화이다.
지금의 나꼽살까지 오게 되는 우여곡절 한 가운데, 이 영화가 자리잡고 있다.
연전에 문화와 관련된 라디오 방송을 변영주 감독하고 기획을 시작한 적이 있었다. 거의 성사단계였었는데, 그 때 ‘화차’가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기타 등등의 이유로 그 건은 불발이 되었고, 조금 시간을 끌다가 선대인 부소장이 경제 방송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화차’에 대한 내용은 그 시절에 이미 알고 있었고, 막 촬영을 끝낸 변영주 감독을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었다. 촬영장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나도 정신 없고 해서 실제 촬영장에는 못 가봤다. 촬영 직전, 촬영 직후, 시사회 직전, 시사회 직후, 개봉 직전, 이렇게 영화의 개봉까지 오는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었다.
화차 시사회는 타이거 픽쳐스에서 물경 여덟 명이나 한꺼번에 갔었다. 이런 일이 잘 없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도 했던…
모든 영화에는 겉 얘기가 있고, 속 얘기가 있다. 물론 어떤 영화는, “난 그냥 돈 벌고 싶어요”로, 아무리 탈탈 털어도 속 얘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내가 ‘화차’에서 주목한 것은, 이 화차라는 제목이 갖는 메타포어, 그 자체이다.
작년 말에 만났을 때에는, 실제 개봉에서는 제목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제목 그대로 개봉하게 되었다.
영화의 겉얘기는, 포스터에 적힌 그대로이다.
그리고 영화의 속얘기는, 영화의 대사나 자막 등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영화의 제목 그 자체인 화차이다.
기묘한 동음어인데, 꽃마차도 화차, 불의 수레도 화차, 우리 말에서는 그렇다.
화차의 일본에서의 의미는 악인을 지옥으로 태우고 가는 불수레 혹은 불의 마차 정도 된다.
따져보면, 우리는 개개인이 알아서 문제를 풀라고 하는 꽃마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그렇게 10년간을 살아온 것 같다. 자기계발서에서 재테크에 이르는, 긍정적 마인드에서 최근의 위로와 치유에 이르는, 일련의 것들은 꽃마차와 연동되어 있다.
그렇지만 개인이 풀 수 없는 문제… 그것은 바로 화차, 불 수레인 셈이다.
꽃마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불수레를 만난 우리의 형국, 어쩌면 일본 보다 20년 후에 그 길을 정확히 걸어가고 있는 한국의 소시민들이 만나게 되는 비참한 형국에 대한 데자뷰가 아닐까?
애써, 이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감추어두었던 이 사회의 처절한 현실이 변영주의 카메라 앞에서 통째로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된다.
날 것을 들여다보는 것은 피곤하고 아찔한 일이지만, 다행히도 변영주의 카메라는 그렇게 무식하게 날 것을 그냥 통째로 보게 하지는 않는다. 머리털을 붙잡고, 이걸 보란 말이야, 변영주가 그렇게 우악스럽게 보게 하지 않은 것…
변영주가 좀 변했다… 고 나는 표현한다.
다른 영화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업성과 비상업성의 교묘한 줄다리기를 했다고 볼 수도 있고, 변영주 감독이 더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잔인하고 들여다보기 싫은 현실이지만, 그걸 우악스럽게, 이걸 좀 봐,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감독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생각보다 큰 영화였다.
이선균이 남성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선균을 참 좋아한다. 이선균의 눈을 따라서 영화를 만든 것이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이거야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좋았다.
자…
영화는 던져졌고.
이걸 보고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이게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에 대해서 했던 코멘트는, “사회파 감독이군…”, 이랬다.
큰 영화가 나올 때마다, 영화사에서는 매번 내기를 한다. 생각보다 좀 짜다. 최근의 어떤 영화에, 나는 200만을 걸었는데, 어쩌면 내가 따갈 수 있는 가능성도 좀 생겼다.
화차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은, 생각보다 후했다.
나는 가장 높은 수치, 450만을 불렀다가, 에라 인심 쓰는 건데, 500만으로 상향조정했다.
뭐, 워낙 비수기라서 가능성, 택도 없는 수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기를 이기는 게 맛이 아니라, 설래임으로 기다리는 맛이라는 게 있어서.
희망이 있다면, 화차라는 말이, IMF 이후에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단어로 남을 수 있다면…
일본의 버블 공황에서 나온 말이기는 한데, 강남에서 해운대까지, 화차의 경제학이란 말만큼 군상들의 모습을 더 잘 묘사하는 말은 없었던 듯하다.
꽃마차를 기다렸으나, 그들 앞에 나타는 것은 엉뚱하게도 화차.
그러고 보면, 화차의 마부는 바로 이명박이었다.
그가 끌고 온 747이라는 꽃마차는 우리를 지옥길로 안내하는 마차였던 셈이다.
그 속에서 20대 여성이 내릴 수 있었던 개인적 선택은…
그게 김민희라는 배우가 맞닥거린 복잡미묘한 구조의 덫이 아닌가?
명박 시대의 경제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지옥으로 가는 불마차, 화차만한 안성맞춤의 개념이 없는 듯 싶다.
이선균의 평범한 아내가 되고 싶었던 어느 한 여인, 엄청난 것도 아닌, 이 간단한 꿈마저도 명박 시대에는, 국가가 시민의 보호자가 아니라 투기꾼 그 자체였던 시절, 행복은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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