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 시대를 보내며
세상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지 않겠나?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지난 몇 년간, 내 거의 모든 것은 2012년 대선에 맞추어져 있었다.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뭐가 바뀌어? 맞는 말이다. 그래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야, 가장 원초적인 것이고.
하여간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더 하나 더해진 질문이, 과연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바꾸어도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까? 이건 더 어려운 질문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익숙했던 논문 양식과 사회과학 양식을 벗어나서, 에세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걸 위해서 영화 시나리오도 쓰기 시작했고, 하다보니 소설도 쓰게 되었다. 그뿐인가? 필요하다면, 드라마도 쓸 기세다.
그만큼 나는 ‘명박 시대’가 너무 힘들었고, 동시에 그런 시대가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랬다.
뭐, 그런 것보다는 조금 작게, 3월 15이라는 날짜가 내게 주는 고통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한미 fta가 발효되는 날…
그 날을 무기력하게 기다리고, 정작 그 날이 오면 “최선을 다 하겠다” 혹은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있기가 너무너무 싫어서…
삭발을 했다.
정신의 분노를 가장 약한 수준의 육체적 고통으로 바꾼 건데, 그렇게라도 안 하면 너무너무 무기력해질 것 같아서.
뭐, 나름대로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맡았던 3월 15일인데, 그렇다고 감정이야 내가 속일 수 있겠나, 솔직히 무기혁하고 기분 더럽다.
그렇다고 그냥 잠을 청하면서 하룻밤 그냥 넘겨 버리기도 그렇고.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기왕 발효된 거,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
논리적으로는 맞을 수도 있는데, 그건 니나 해라… 그래주고 싶었고,
하여간 이런저런 생각 중에, 대선 직전에 뭔가 꼬추가루를 뿌려주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두 번째 에세이집 생각이 잠시 났다.
엔제까지 내가 에세이라는 형식의 글을 계속 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해가 가기 전에 한 권 더 내기로 생각은 하고 있었다. 꼬추가루 정신.
하여간 새로운 책의 제목을 생각하게 된 배경과 맥락은 대체적으로 이렇다.
원래의 작업가설로 잡아놓은 제목은 ‘명박 시대’라는 것이었다.
포토 에세이로 할지, 아니면 그냥 글만으로 갈지, 그건 아직도 생각 중이고.
뭐, 형식이 그렇게 중요하겠나,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였는지, 그게 중요하지.
첫 번째 에세이집의 모티브는 ‘마흔’이었다.
두 번째 에세이집의 모티브는 ‘명박 시대’… 뭐, 이거야 꽤 전에 잡아놓은 거고.
한미 FTA가 발효되는 날, 자정을 지나면서 먹먹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순간,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제목이 있었다.
“명박 시대를 보내며”, 부제 : 씨방 새끼, 진짜 5년 동안 죽는 줄 알았다
뭐, 이게 제목으로 과연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출판사의 자기 검열에 걸릴 수는 있지만, 그거야 내 줄 수 있는 출판사를 찾으면 그만이고.
‘씨방 새끼, 진짜 5년 동안 죽는 줄 알았다…’
이게 솔직한 내 심정이기는 하다. 진짜 5년 동안, 명랑으로 해학으로, 그리고 소소한 사랑으로, 겨우겨우 버텨냈지, 이 잔인한 시기를 또 견뎌내라면… 난, 도저히 못한다.
그래서 요 모티브로, 씨방 새끼, 요 제목에 걸맞는 글들을 6개월 정도 연작으로 써보려고 한다.
그래야 대선 코 앞에서, 야 이 씨방새끼야, 그렇게 딱 꽂아놓으면 제목이 나올 수 있는 책이 나오게 된다.
물론 수필들을 ‘씨방 새끼’ 난무하게 쓰려고 하는 건 아니다. 가능하면 아름답고 감미롭게, 내가 잘 안 쓰던 낭만파 언어들을 다 동원해볼 생각이다.
이 소소한 행복도 다 가로막던, 씨방 새끼야…
요런 톤으로.
오늘은 한미 fta 발효된 날…
이런 생각도 안 하면, 이 밤을 그냥 온전히 넘기기가 힘들었다.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언어 (4) | 2012.03.17 |
---|---|
영화 <초한지> 혹은 번쾌의 눈물 (4) | 2012.03.15 |
화차의 경제학 (3) | 2012.03.09 |
그냥 마음이 허해서... (3) | 2012.03.08 |
삭발을 하다 (28) | 2012.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