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좋아질까?
학자로서 살아가는 삶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하겠다고 결심한 건 꽤 오래 된다.
마흔 살에 은퇴하겠다는, 스무 살 때부터 나하고 했던 약속이 있다. 돌아보면 내 삶은 미친 놈처럼 과로와 과로의 연속이었는데, 그만둘 시간이 정해져서 과로 인생을 살았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정부나 외부 지원 없이, 학자 혼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봤고, 이보다 일을 키우기 위해서는 팀 작업이 필요한데, 그건 지금으로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델링 작업이나 장기 시뮬레이션 같은 걸 더 해보고 싶은데, 이런 것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는다.
이래저래,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했던 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뭐 그런 방법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고 싶지는 않고.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누군가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듣고, 그 동안 TV도 참 많이 나갔다. 이제 그건 나꼽살로 어느 정도는 내가 기여할 만큼은 한 거라는 생각이 들고, 올해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에 열심히 하는 걸로.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영화사 직원이 되었고, 요즘은 시나리오부터 영화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나름, 안 해보던 일이라서 재미있다.
혼자서 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이게 좀 고달픈 일이다. 어떻게 보면, 나도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지 좀 되는 것 같은데, 그냥 억지로 즐거운 상상을 하고, 웃으면서 참고 버텼던 것 같다.
올해까지가 그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연구소 같은 데 대해서 생각하면 머리가 빡빡하고, 대학 근처만 생각해도 머리가 욱신욱신.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거의 쉬지 못하고 너무 오랫동안 초긴장 상태에서 살아온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연구소나 대학에는 더 이상 비밀스러운 것도 없어서, 신비감이나 기대감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일은, 이제 때려죽인다고 해도 못하겠다.
이래저래, 내가 학자로서 사회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나도 못 버티고, 또 같은 형식으로는 더 나올 얘기도 없을 것 같다.
삶이라는 게, 의미와 보람만으로 살 수는 없고, 흥미나 재미가 없으면 정말로 자신의 혼을 담기가 어렵다. 간단하게 말하면, 학자로서의 삶이 더 이상 흥미가 없고, 어떤 이유로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다.
경향신문 연재 기준으로 하면, 이제 3번의 칼럼이 남아있다. 사회적으로 하던 일 중에서, 칼럼이 제일 먼저 끝난다. 아마 꼽사리가 가장 마지막까지 진행될 거고, 경제 대장정을 다 마무리하게 될 때까지는 당분간 책은 계속 쓰게 될 거고.
어쨌든 그러다 보니 가장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은 질문이, 과연 명박 시대가 끝나고 나면 세상이 좋아질까, 그 질문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대로라면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 이게 내 잠정적 결론이다. 물론 내가 모든 걸 생각할 수는 없으니, 언제라도 돌발 변수가 존재할 수는 있지만, 현재까지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에 가깝다.
그렇지만 어쩌겠냐, 내가 어쩔 수 없는 범위 바깥의 일인데 말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은 나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음 시대의 일은, 또 다음 시대의 사람이 등장해서 더 많이 분석하고,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세상은 늘 그렇게 흘러간다. 안타깝다고 붙잡고 있는다고 해봐야, 더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괜히 그러다가 정말 노욕이 생겨나게 된다. 처음 출발할 때 생각해보면, 이미 아주 멀리 와 있다. 더 가겠다고 붙잡고 있는 것, 그건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르고.
한국 경제를 주제로 12권의 책을 마치고 나면, 정말 더 할 것도 없고, 더는 아는 것도 없는 상황이 될 것 같다. 그리고도 세상이 안 좋아진다면? 어쩌겠냐, 거기까지가 내 능력치의 전부일텐데.
어쨌든 시리즈에 남은 책 몇 권 그리고 번외편으로 준비된 기타 등 정리하고 나면, 경제학자로서 더 이상 책을 쓰거나 그런 일은 안 할 것 같다. 그야말로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다.
어떻게 보면, 진작에 그만두었어야 할 일들이었는데, 명박 시대라는 이상한 시대를 만나 마지막으로 남은 힘들을 쥐어짜면서 몇 년을 더 버틴 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들의 시대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고,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걸 끝까지 지키겠다고 할 수 있는 능력치 이상으로 바둥거리면, 정말 사람 추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 나도 주체할 수 없는 과분한 영광을 누린 셈이다. 이제 그걸 다음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싶다.
권력이나 힘이나, 영광이나, 너무 쥐고 있으려고만 하면 결국에는 추해진다.
나는 그렇게 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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