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나무

잠시 생각을 2018. 11. 29. 12:17

요즘 이것저것 나를 거쳐가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과 같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쭈그러져 있으니까, 다들 뭔가 하고 뭔가 펼치는데, 나는 제 자리에 있다. 그러다보니까 주막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시작하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찻집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는 게, 다들 뛰어갈 때 기는 것의 기능이 있는 것 같다. 의도하거나 준비한 건 아닌데,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대개 나한테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삶의 깊은 어둠 속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모두 내가 의미 있는 조언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만난 게 의미 있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힘이 없다. 원래도 힘이 없는데, 요즘은 더더욱 없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으니까, 뭔가 만드는 일에는 손을 조금 보태줄 수는 있다. 많은 얘기들이 내 근처에 있거나 거쳐가거나 그렇게 된다.

오늘 아침에 에디터 중 한 명이 내가 하는 얘기가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아쉽다고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진부한 소리 하고 있는 것보다는 앞에 있는 게 낫다. 피엠텐을 의제에 올려서 결국 사람들이 미세먼지라는 새로운 단어를 쓰게 되었다. 해법은? 여전히 해법은 있는데, 지난 정부든, 이번 정부든, 상식적인 해법은 피해나가려고 한다 (돌대가리들..)

뭔가 만드는 일이, 빨라야 3년 정도 걸린다. 수없이 새로운 시도와 해보지 않은 얘기들이 내 주변을 왔다갔다 한다. 만다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보면서 만들면 늦다. 좀 더 멀리 내다보고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다음 주에 정부 연구인사들 모아놓고 10년 후 한국에 대해서 발제해달라는데, 내일 일도 모르는 애 아빠가 무슨 10년 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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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연습장'이라고 부르는 블로그는 이래저래 사연이 참 많은 블로그가 되었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 첫 책 내고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결국 티스토리에 정착.

요즘 눈으로 보면 진짜 불편하다. 기사 같은 거 다 손으로 긁어야 하고, 그것도 양식 뻑나고.. 귀찮아서 이제 그런 건 안 한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88만원 세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처음 여기서 벌어졌다. 그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벌어졌다.

나중에는 약간의 도장깨기 비슷하게 되서, "계백이 나오라카이", 좀 이런 피곤한 일들도 벌어지기는 했다. 그것도 시간이 흘러가니까 다 옛날 얘기가.

아이들 태어나고 아프고, 정신 없었다. 그리고 민주당 도와줄 때, 내가 가진 인맥 등 모든 걸 다 개방했는데, 블로그는 개방 안 했다. 뭐, 별로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고.

하여간 그 후에 황망하게 썰렁한 곳이 되었다.

그래도 여기에서 그 때 그 때 단상을 적으면서 36권의 책을 내게 되었다. 진짜 말 그대로 임시 연습장, 아직 정리되지 않은 초기 감성이나 톤 혹은 전체적인 얼개 같은 것을 여기에 적는다.

블로그는..

아주 까칠한 내 성격 그대로다. 볼려면 보고 말면 마..

나도 참 내 성격을 싫어하는 게, 이게 진짜 지랄맞다. 맺고 끊는 게, 너무 불같다. 좀 적당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게 아직도 안 된다.

좀 블러핑도 하고, 적당히 숨기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포장도 해야 하는데.. 그냥 스트레이트 기사 쓰는 것처럼.

그래도 내가 만드는 시제품들은 사정이 있어서 공개할 수 없는 아주 일부를 제외하면 일단은 여기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연습장이면서 동시에 공방 성격을 좀 갖는다.

물론 내가 하는 모든 게 다 여기로 가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하여, "오늘도 걷는다"가 아니라 "오늘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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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올라오는 고속도로 안에서 간만에 동사서독 노래를 들었다. 밖은 어둡고, 차들은 질주한다. 그 안에서 진공 같은 느낌이, 그리고 가슴이 찡해졌다. 오랫만에 가진 깊은 회한 같은 것이다. 눈물 날 뻔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다음 날 영화를 다시 보았다.

 

______________________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민은 많이 했는데, 유학가기로 결정하는 순간은 5분도 안 걸렸다. 영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아무리 주판을 때려도 견적서가 안 나왔다. 프랑스로 유학가는 결정도 5분도 안 걸렸다. 아무리 고민을 많이 해도, 결정하는 순간은 5분도 안 걸린다. 50살.. 난 많은 걸 결정하면서 살아온 듯하다. 동사서독, 다시 봤다. 그리고 알았다. 난 무엇을 사랑할 것이냐, 이 결정을 아직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던 것 같다. 실무적인 것, 행정적인 것, 기능적인 것들, 대부분 나는 5분 안에 판단하다. 그리고 번복한 적도 거의 없고, 후회한 적도 없다. 내가 결정을 내렸을 때, 나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내 주변 사람들이 했던 말 중에서 나의 마음을 움직인 말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능일 뿐이다.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하기로 마음 먹고 사랑하고, 이것이다 결정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이재영이 죽고, 노회찬이 죽었다. 그래도 나는 즐겁게 살고,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농담을 던질 것이다.

 

엇갈리는 인연과 사랑, 그것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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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11월호, 지승호 작가와의 인터뷰..

 

https://blog.naver.com/personnidea?Redirect=Log&logNo=22138009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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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설명을, "뭐든 만들어야 산다"에서 "뭐든 만들어야 입에 밥이 들어간다"로 고쳤다. 나도 살고, 죽을 경계는 이제 좀 넘어선 것 같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에게 의뢰가 오는 것들이 있다. 요즘 나에게 오는 것들이 상당수는, 진짜 난이도 엄청 높고, 성공 확률은 아주 희박한. 하다하다 안 되니까 나에게까지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 싶다. 쉬운 것들은 나에게 오지 않는다.. 나도 굳이 쉬운 것에 손 댈 이유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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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정부 용역 과제를 비롯해서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연구하는 일은 안 한다. 처음부터 이런 걸 안 하려고 한 건 아닌데, 괜히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집중이 잘 안되기도 하고. 이건 무슨 엄청나게 순수하고 강직한, 그런 신념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아니다. 솔직히, 내 성격이 더러워서 그런 것이다. 마지막 시점에 내가 관리하는 돈이 1조원을 넘어섰다. 그리고 폼 나게 딱 내려놓고 나왔다. 폼은 났다. 그리고 슬슬 거기 붙어서, 내가 예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싫었다.

그리고 같이 정부 연구과제를 하자고 주변에서 얘기를 했는데, 이게 못하겠는 거라. 돈 나눠주다가 받으려니까,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순전히 성격이 더러워서 그렇다.

그래서 내가 하는 연구는 내가 알아서 하고, 나는 생활비만 생기면 되고. 물론 한계는 있다. 여러 사람 붙어서 해야 하는 큰 연구는 하기가 어렵고, 책으로도 내기 어려운 아프리카 얘기 같은 것도 하기가 어렵다. 그냥 그 정도 선에서 장기 과제, 정부에서 관심 없거나 금기시 하는 연구들, 그런 거 내 맘대로 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과 같은 연구 방법과 방향을 가지게 된 건, 뭔가 순수하거나 엄청나게 철학적 깊이가 있어서, 이런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성격이 더러워서. 그냥 머리 좀 숙이고, 내 연구에 돈 좀 대달라, 이런 걸 죽어도 못하겠는.

그러면서 내 삶이 나름대로 스타일이 되었다 (살찌는 걸 염두에 둔 건 아닌데 ㅠㅠ...)

'기본소득과 문화경제'라는 제목으로 짧은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다. 이걸 키우면 보통 정부에서 말하는 1억 원짜리 연구과제가 될텐데, 특별히 더 그렇게 키우고 싶지는 않고.

내가 요즘 관심 있는 것은 미래 과제다. 그렇다고 무슨 아주 먼 미래에 대한 얘기도 아니고, 과학기술 중심의 좀 얼토당토 않은 4차 산업혁명 같은 얘기는 아니다. 다음 총선, 다음 대선 때, 어떤 주제들을 우리가 논하게 될 것인가, 그런 데 관심이 더 많다.

기본소득을 비롯해서 몇 가지 주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걸 좀 더 파볼까, 지금 하는 것들을 좀 더 밀고 나가볼까, 이런 생각들을 좀 했다.

문화경제는 몇 년 전에 '문화로 먹고 살기'라는 책을 내면서 정리한 개념이다. 아주 개인적으로는, 그 책 이후로 나는 - 혹은 나와 몇 명의 동료만 - 먹고 살기에 대한 걱정이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특별히 더 문화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아닌 듯 싶다.

생태경제의 구체적 수단으로 지식경제와 문화경제라는 두 축을 정리한 것은 2009~2010년 정도의 일이다. 또 다른 축이 더 필요할까? 이런 고민들을 요즘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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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차이이기는 한데, 나는 혼자 있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누가 나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남 앞에 서는 것은 진짜로 싫어한다. 때때로 남들 앞에 서기는 하는데, 좋아서 하는 건 아니고, 싫은데 억지로 참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보니까, 뭔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고 힘이 생기는 것보다, 조물딱 조물딱 뭔가 만드는 것을 훨씬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론을 만들거나, 설명틀을 만들거나, 얘기 만드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만들고, 심심하면 또 만든다.

'제주도의 비극'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설명하는 글을 쓰다 보니까, 확실히 나는 뭔가 조물딱 조물딱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적인 성격은 아니고, 보편적인 성격도 아니다. 그렇지만 조물조물거리면서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굶어죽을 성격은 아니다. 남 등 처먹고 살 성격도 아니고. 남 등쳐서 뭔가 시키느니, 그냥 내가 하는 게 훨씬 빠르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삶이 이 모양이 된 건, 다 성격탓인지도 모르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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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경기도당에서 당원 교육 부탁이 와서, 한다고 했다. 강연은 이제 마감하고, 추가로는 안 할 생각인데. 노회찬 이후로 마음이 짠하다. 나서서 무슨 위원회 만들거나 조직과 관련된 일을 하기는 어렵지만, 정의당 당원교육 정도도 안 한다고 하면 좀 너무 야박할 것 같다. 예전에는 내 돈 써가면서도 했던 일들이다.

다큐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를 보았다. 어떻게 나이 먹어갈 것인가, 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아내에게, 60 넘어가면 나는 다시 현장에서 조그맣게 사람들과 같이 꼼지락꼼지락, 그런 일을 하면서 노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아내도 그러라고 했다. 나도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현장에서 꼼지락꼼지락, 그렇게 내가 되었다.

나이 먹고 뭘 하겠나. 내가 가진 것들을 그냥 이 사회에 다 내려놓고 갈 생각이다. 뭔가 쥐고, 뭔가 더 올라가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선배들 보면서... 저건 좀 아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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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 일곱 살 어린이집 같은 반 애들이 오늘 오후 동네 놀이터에서 베이 블레이드 시합을 벌인다. 아내가 데리고 나갔다. 열흘 만인가, 잠시 애들 없는 순간을. 한동안 애들과 거의 같이 있었다. 서울 집값이 너무 올랐다. 이걸 보면서 자식의 삶을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있겠나 싶다. 선진국은 자식들이야 지들이 알아서 살겠지, 그렇게 부모가 신경 끄는 나라다. 우린 아직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갬블링 경제가 형성되었다. 좀 양보하면 안돼? 안돼, 우리 애들 미래를 생각해서, 난 이걸 죽어라고 붙잡고 있어야 해.. 합계출산율 1 이하는 그런 갬블링들의 기묘한 결합 작품이 아니겠나 싶다. 1945년 패전 이후 다시 일어서야 하는 영국에서 'from cradle to grave' 구호가 강하게 일었다. 우리의 현재는? from apart to apart, 요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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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주택 보유세는, 미국의 주요 지역에서 시행하는 연간 1% 정도 수준이다. 50년간 집을 보유하면 집값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게 된다. 추가로 집 하나를 더 가지면 1.5%, 3채는 2%, 이 정도로 할증하면 많은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보유세가 너무 낮다. 보유세를 1% 수준으로 높이고, 거기에 맞춰서 거래서를 점차적으로 낮추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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