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밤에 야옹구는 식구들하고 인사를 했다. 몸을 움직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발짓을 하면서 반가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는 많이 울었다.
새벽에 마지막 숨을 쉬었고, 조금 전에 장례식장으로 보냈다. 화장을 하기로 했는데, 구체적인 방식은 좀 더 의논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운동하러, 둘째는 카페에서 책 본다고, 둘째는 내일 있을 배트민턴 시합 준비하러 친구들과 코트에 갔다. 다들 내 보내고, 나 혼자 처리했다.
18년을 살았던 고양이를 보내는 길이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았다. 이전에 살던 집 마당이에서 야옹구 이후로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돌보게 되었고, 한 때 집이 고양이로 넘쳐났다, 그 시절의 얘기를 담은 책이 <아날로그 사랑법>이었다. 책은 그닥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나는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다. 결혼하고 9년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야옹구와 살면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마지막 날, 모든 힘을 쥐어짜, 식탁 밑에, 다용도실에, 안방 앞에, 그렇게 자주 놀던 곳에 일일이 갔다. 잠시 후에 숨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산하게 평소 놀았던 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야말로 명랑 그 자체였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상은 떨어 무엇하리.
최근에 참 많은 사람을 보냈다. 슬프지 않은 죽음이 있겠느냐만, 정말로 평생을 같이 할 것 같은 친구 같은 사람이 몇 주 전에 떠나고 나서, 아직도 그가 없는 삶이 익숙치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난다.
고양이가 떠난 뒤, 모래통 같은 것들을 치우고 정리를 해야하는데, 그건 오늘은 못할 것 같다. 고야이 모래통에 가려서 12인치 스피커를 나중에 사려고 미루어두고 있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스피커 주문을 할까 싶었는데. 그건 성숙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닐 것 같아서, 그것도 몇 달 뒤로 미루었다. 이런 날은 친구 만나서 그냥 술이나 처먹으면 딱 좋을 분위기지만, 일요일 오후에 전화 걸어서 술 처먹자고 해도 괜찮은 친구가 이제는 내 주변에 없다. 딱 흐름상, 태인 선배, 정태인이 이럴 때 늘 만났던 사람인데. 그도 3년 전에 떠났다. 더 이상 일요일 날 술 마실 사람이 주변에 없다. 오랜만에 만나도 특별히 복잡한 얘기 하지 않고 그냥 술만 처먹는 친구가 한 명 있기는 한데, 지금은 홍성에 산다. 부르기도, 가기도, 만만치 않다.
저녁에는 일주일 먹을 것 사려고 부인과 쇼핑몰에 가기로 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궁상 떨 시간도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다.
가끔 죽고 나서, 니가 한 좋은 일을 대보라고 하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한 많은 일들은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누군가를 조금씩 돕기는 했지만, 그게 정말로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나중에 최후의 심판이 오면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는 생겼다. 살면서 고양이 한 마리는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행복했냐고 하면, 물론 그렇지는 않다. 누구라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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