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권책 3장은 기업과 인권에 관한 문제다. 고민을 정말 긴 시간을 했는데,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절을 넣기로 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몇 개의 회사에서 개인적인 부탁을 받아서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을 몇 번 했는데.. 내 기준으로는 이 강연들이 대부분 실패였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이런 적이 거의 없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 변한 시대와 변한 주제에 내가 적응을 못 하는 것일까? 아니면 최근에 내가 특별히 강연을 더 못하는 것일까? 가장 최근에 한 중학교에서 한 강연은 내 역사에 남을 정도로 성공한 강연이었다. 별 반응이 없던 학생들을 데리고 얘기를 하다가, 두 시간이 될 때쯤에는 매우 적극적인 학생들로 모습이 바뀌었다. 이 날은 왜 성공했을까?
아주 깊게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청년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싫어한다는 게 내가 내린 임시 가설이다. 민주주의가 민주당이 하는 일은 아닌데, 상당히는 저게 그냥 민주당 얘기를 하는 거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회사의 범주로 전환하는 것이 몇 년 동안 내가 하던 얘기들인데,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을 대중들이 민주당따리들이 하는 얘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굳이 이 얘기를 하면서 ‘직장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일단 결정한 것은.. 직장 민주주의 강연은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진짜 이유가 그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 또 다른 문제인지, 아직 나는 모른다. 강연을 최소한도로 하는 지금 상황에서, 굳이 직장 민주주의 강연을, 계속 실패하면서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해소되거나, 해소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일단은 세우는 게 맞다.
그 다음에 해결할 문제는, 지금 쓰는 청소년 인권책에서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것도 며칠 고민을 했는데, 책에서는 쓰기로 했다. 외국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정확하게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국가와 정치의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경제적 측면에서도 얘기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고민하면서, 다시 한 번 럼볼의 직장 민주주의 논문이 발표되던 그 시기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간호사들의 태움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가, 이 절의 제목을 바꾸게 되었다. “인권은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democracy does not stop at the factory gate, 이게 그 유명한 럼볼 논문의 제목이다. “민주주의는 학교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표현이 가장 잘 알려진 얘기다. 나도 에디터의 생각으로, 이 제목으로 책 제목을 정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 낸 책 중에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었다.
이 제목을 3장의 제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인권은 직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번 쓴 표현을 다시 한 번 장의 제목으로 활용해서 쓰는 것이기는 한데.. 그 흐름에서는 이게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들에게 회사와 인권 애기가 조금이라도 정서적 반응을 얻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그야말로 대가리를 쥐어짜고 쥐어짜는 중이다. 시방 나는 우리나라 역사의 아주 자그만 한 줄을 쓰는 중이라고, 나를 달랜다.
그래도 이 표현 하나를 생각하고, 몇 초 동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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