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동안 츄르를 다섯 개씩 처먹던 고양이는 오늘은 부엌에 누워 있었다. 폐에 종양이 퍼져서, 살 날이 그렇게 오래 남지 않았다. 그래도 입맛이 없어서 굶어죽는 상황은 좀 지난 것 같다.
어제 작은 행복이 큰 행복보다 작지 않다는 걸 배웠다. 그 여운이 오래갔다. 어쩌면 나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이 작은 기억이 생각날 것 같다. 혹시 우리 집 고양이가 느꼈던 작은 변화가 나에게도 생겨나기를 갈망할 수도.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우리의 많은 기억은 괴로움의 기억이고, 즐거운 기억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무척 행복했지만, 끝이 좋지 않은 기억은 결국 머리 속에서 지워진다.
지금까지 나는 사느라고 바빴다. 아니, 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기쁜 순간이 없었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그 순간을 스냅샷처럼 잡아두거나 은미하거나 혹은 의미를 생각해볼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머리 속에서 뭉개졌다.
행복은 연습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평범한 날들에도 행복한 순간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 행복을 찾아내고 기억하는 연습이 된다면, 정말 불행한 날에도 1초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 짧은 행복이라도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시간으로 긴 행복이 아니라, 더 짧은 순간의 행복을 잡아내는 연습이다.
내가 본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속도가 만들어내는 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속도 속에서 우리는 불안하고, 행복한 순간에도 불안하다. 이것이 언제 깨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 순간을 음미하거나 즐기기가 어렵다.
지금부터 내가 다루는 주제들이나 책 중에는 행복을 주제로 하는 게 많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에 대해서 다룰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고양이를 보면서 뭔가 느껴진 게 있었다. ‘1초의 행복’, 그런 주제로 하루하루의 내 삶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