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구는 이제 내가 책상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중문 바깥 베란대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면서 보낸다. 병원에서 진통제를 받아와 주고 있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츄르 먹는 양이 조금 늘어나기는 했다. 건사료는 이제 거의 먹지 않는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전화하면 츄르 달라고 난리를 쳤었다. 지금은 츄르 하나를 다 먹지 못한다. 그나마도 조금만 먹던 게, 약효과인지 거의 하나를 다 먹게 된 정도.
삶의 마지막 시간을 이렇게 같이 보내는 게, 그렇게 편한 일은 아니다. 자식 둘을 똥 기저귀 때부터 키우다 보니까, 나에게도 우선 순위가 많이 바뀌었다. 내가 도우면 조금은 더 나아질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녀석들이 먼저다. 걔들도 나름 바쁘지만, 저녁 먹는 게 하루에서 제일 즐거운 일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뭐라도 신기한 거나, 뭐라도 맛있는 걸 하나라도 해줘야 그 설래임을 망치지 않을 수 있다. 정 없으면 냉동 만두를 구워주기도 하는데, 그걸로도 족하다. 분식집 느낌 나서 좋단다.
6개월 가량 헤매던 청소년 인권 책은 다시 풀 집중 모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모조리 뒤집어보면서, 감정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중이다. ‘푸르동’이라는 세 글자를 쓰면서, 싱가포르 대학에 가는 걸 포기했던 시절부터, 학설사를 포기하던 시절의 기억을 때려넣었다. 역시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하버드의 케네디 스쿨에 교수로 갈 일이 있었다. 완전히 다르게 살아야 하는데, 나는 또 다른 삶 대신 아내와 결혼하는 것을 선택했다. 묘하게도 시기가 그렇게 겹쳤었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일 중의 하나다. 푸르동이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묻어놓고, 덮어놓았던 기억들을 다시 꺼내게 하였다. 그래도 푸르동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내가 이 몇 문장에 쏟아넣는 에너지 같은 것이다. 맑스는 푸르동을 개새끼, 십새끼, 엉청 바보 새끼, 몇 장에 걸쳐서, 그리고 여러 권에 걸쳐서 겁나게 욕을 했었다. 그걸 가장 점잖게 표현한 ‘공상적 사회주의저’, 뭐 이런 개념이다. 현실은 하나도 모르는 개병신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가 얘기한 몇 개의 요소들은 시대에 걸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나중에 생태주의자와 지역주의자들을 만나 지역 화폐가 되었다. 대안 화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주장한 사람이 푸르동이다.
이런 게 과연 책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그냥 내 마음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구절구절 불어넣으면, 나중에 책을 보는 사람이 조금 더 쉽게 읽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남지 않을까 싶은.
남은 부분, 꾹꾹 내 삶을 눌어넣을 생각이다. 내가 그렇다고 느끼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느끼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생각해보라고 할 수는 없다.
처음에 인권 책은 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생각했다. 부피도 너무 크지 않게.
그 생각이 바뀌었다. 책은 조금 더 커져도 되고, 다루는 소제가 조금 더 늘어나도 될 것 같다. 인권 얘기가, 내 인생 책이라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갈아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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