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애는 엄살도 없고, 꾀병도 없다. 일요일날 시름시름하더니 오늘 학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을 혼자 많이 했다. 열은 없다. 

아침에 학교 갈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힘들면 보건실에서 쉬라고 했다. 오는 것도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오후에는 방송이 있었다. 

집에 오니까 둘째가 나 보고 울기 시작했다. 길에서 그냥 걸어가다가 넘어졌는데,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났다. 그렇게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뭐가 서러웠던지 나 보자마다 닭똥 같은 눈물을. 얼마 전에 집에 손님이 오면서 이것저것 사온 것 중에 젤리를 꺼내줬다. 

그리고는 내가 지쳐서 잤다. 애들 볼 때에는 주중보다 주말이 훨씬 힘들다. 잠결에 큰 애한테 분리 수거하고 음식물 쓰레기 좀 치워달라고 했다. 그게 주로 밀린 거였는데, 나중에 깨서 보니까 마루의 쓰레기통도 비워놓았다. 이게 잘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상금으로 5천 원 줬다. 요즘 먹고 싶은 게 많았는데, 사먹어도 되냐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요즘은 큰 애도 민감하고 둘째도 민감하다. 어렸을 때 심통내거나 삐지는 것하고는 좀 양상이 다르다. 예전에 읽은 육아책에서 개구쟁이들이 사실은 상처 잘 받는 스타일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우리 집 어린이들이 따 그렇다. 아마 자신의 자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정서가 좀 더 복합적이 되고, 상처도 잘 받는다. 그렇게 자라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어린이들의 변화를 보고, 내가 만나는 수많은 50대들을 보면, 좀 비슷하 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50대들도 초등학교 5학년만큼 예민하다. 술자리 한 번 정도가 아니라 한 마디로 “다시는 안 봐”, 이런 반응이 나오기 쉽다. 몸은 늙어가고, 변한 상황에 대한 정서는 아직 자리잡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몸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이걸 받아들이고, 새로운 루틴을 만들만큼의 새로운 생각은 아직 자리 잡지 않은. 

큰 애는 키가 많이 컸고, 조금 있으면 자기 엄마보다 커진다. 그래도 마음은 아직 어린이다. 동생만 주고 자기는 안 주면 바로 삐진다. 그 사이의 불균형이 지금 내가 보는 복합성을 만드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인간의 나이에서 가장 안정적인 것은 40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노화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고, 10대부터 키워온 생각의 알고리즘은 이제 절정을 향하고 있다. 50대가 되면 그걸 버려야 하고,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안정적인 소프트웨어와 아직은 버텨주는 하드웨어, 그게 40대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아직 번치앟고, 새로운 일을 거침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색정의당..  (2) 2024.02.04
저출생 책, 서문 끝내고..  (17) 2023.10.27
어린이들과의 시간..  (0) 2023.10.16
호흡  (0) 2023.09.14
경제와 인권..  (9) 2023.06.20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