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는 오늘 꼼짝 없이 입원하게 되는 줄 알았는데, 지난 밤에 잘 잤는지, 좀 상태가 나아졌다. 여전히 기침은 많이 하지만, 그래도 소리는 좀 나아졌다. 이제는 월요일날 학교 갈 수 있는 게 또 큰 도전이다. 사흘째 집에 있었다. 

저녁 때에는 둘째가 좀 나아져서 동네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왔다. 안 그러면 둘째는 정말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되어서. 둘째는 간만에 크게 웃었다. 

둘째는 태어날 때 숨을 못 쉬었다. 세 살 때 봄, 연거푸 병원에 입원하면서 나는 하던 일들을 모두 그만두었다. 둘째가 계속 아파서 짧은 육아 휴직 후에 복직을 하지 못한 아내는 회사와 소송을 하는 것도 검토했는데, 이게 대법원까지 가고 워낙 힘들다고 해서 그냥 있었다. 나는 애들을 보기 시작했고, 아내는 취업 준비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둘째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직은 봄, 가을에 미세먼지 심할 때쯤이면 병원에 입원을 한다. 작년 가을에는 정말 자다가 호흡곤란으로 죽을 뻔했다. 응급실에서 괜찮아지기는 했는데, 입원할 병동이 없어서 애를 좀 먹었다. 사람들은 호흡기 질환이라고 하면 뭐, 뭐 잘 먹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기는 할텐데, 빨리 병원에 못 가면 정말 호흡곤란으로 위험해진다.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물론 병원에 빨리 가면 사실 별 일은 아니다. 병원 호흡기 치료는 좀 독한 약을 쓰는데, 가정에서 하는 치료약은 그렇게 독한 걸 주지는 않는다. 병원에 입원해서 2~3일 치료하면 정말 거짓말처럼 금방 낫는다. 물론 후유증이 한두 달은 간다. 

이번은 이렇게 넘어간 것 같은데,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이렇게 버텨야 할 것 같다. 아픈 애가 있어서 감기라도 걸리면 초비상 상태가 된다. 가끔 “애는 부인이 보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물론 웃고 “곤란하다”고 대답하기는 하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속으로 들기는 한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내 삶도 좀 변하기는 했다. 그냥 나는 내 호흡대로 살아간다.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그것도 최소한만 한다. 그나마도 제 시간에 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별로 흔들림이 없는 삶이 되었다. 그게, 별로 흔드는 사람도 없고, 흔들릴 것도 없어서 그렇다. 딱히 하는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 집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살살 아주 살살 살아간다.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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