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오늘 학교 갔다가 숨쉬는 게 어려워서 바로 집으로 왔다. 퇴원은 해도,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데에는 한참 걸린다. 지난 가을에도 둘째는 학교 가다 말다 했다. 갔다가 조퇴하는 날도 많았다. 약간은 꾀병도 있고, 진짜 아픈 때도 있고, 그런 걸로 알고 있다. 

나도 이것저것 일정을 짜기는 하는데, 아이가 아프면 짜나마나다. 지난 가을에는 둘째가 아팠고, 둘째가 좀 괜찮아질 즈음에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겨울에 얄짤 없이 병실에서.. 그후로는 어머니 치매가 심해지셔서, 건보 홈페이지에 매달리면서 등급 받고, 긴급 돌봄 시작하고. 그리고는 애들 방학. 지옥의 두 달 간을 보내고, 가을 되니까 둘째 입원. 

도대체 왜 내가 이렇게 일이 밀려있나 보니까, 1년 가까이 이렇게 지냈다. 도저히 시간 관리가 어려워서 학교도 그만두었다. 학교에까지 시간을 쓰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박사 코스웍 끝나고 논문 코스 들어갈 때 지도 교수가 명예교수 전환이 안 되었다. 학교 앞 바에서 지도교수가 맥주 한 잔을 사주면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보수 총리가 들어오면서 좌파 교수들 밀어내기 같은 것을 하게 되었는데, 신체 검사가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학원 수업을 조금 더 듣고, 박사 학위 세 개를 동시에 받는 걸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게 좀 어렵게 되었다. 그때 처음 들은 얘기였는데, 국가 장학금이 원래 나에게 오게 되었는데, 심사 시준이 국적자 기준으로 바뀌면서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사 과정 등록이 바로 다음 달이었는데, 생각하지 않던 혼동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개인적 삶도 아주 어렵던 시기였다. 학위 등록이 안 되면 당장 체류증부터 곤란해진다. 지도 교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당장 대학 등록도 하기가 어렵다. 맨날 이거 안 해준다, 저거 안 해준다, 싸우기만 하던 학과 사무실을 찾아갔다. 나는 지도교수 찾을 때까지는 불법 체류하다가, 그게 되면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입학 가는 걸로 해서 그렇게 체류증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근데 학과 사무실에서 그냥 박사 코스웍 1년 더 다니는 걸로 처리해주었다. 도장 꽝 찍은 학생증을 받으면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통합 박사 학위는 포기했고, 그냥 경제학 학위 하나만 받는 걸로 처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천재가 등장했다고 하던 나의 박사 학위는 아주 평범한 것이 되었다. 국가 장학금이 사라졌고, 나는 가끔 식당에서 서빙하는 알바를 하게 되었다. 

2안으로 화폐 경제학으로 논문 쓰는 걸 생각했었는데, 결국 너무 무서워서 포기했다. 현실을 생각해서 생태 경제학으로 논문 주제를 바꾸었고, 우여곡절 끝에 파리 7대학 조교수와 하게 되었다. 

그 기간이 힘들었다고 하면,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변화도 컸고, 건강도 별로였고, 돈도 달랑달랑했다. 슈퍼에서 떨이로 파는 감자를 박스째 사와서, 한 달 정도 버틸 각오를 했었다. 한 달 먹을 정도의 감자를 사다 놓기는 했는데, 식당에서 서빙하는 알바가 금방 구해져서 사실 한 달씩 감자만 먹어야 할 정도가 되지는 않았다. 결국 통합 학위를 포기하는 대신, 학위는 더 일찍 끝나게 되었다. 다른 수업들은 안 하고, 경제학만 하게 되었으니.. 논문 초기에는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고생을 좀 하기는 했는데, 논문 과정 들어가기 전 1년 간 붕 떠 있던 기간에는 참 힘들었다. 

그 뒤로도 속상한 순간이나 힘든 순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그때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하는 일도 불투명하고, 빨리 방향을 잡아야 했고, 사는 것도 어려웠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힘들었다. 그때 알레르기성 천식이 왔었다. 도서관에 긴 시간을 있다보니 오래 된 책 먼지를 많이 접해야했고. 몸도 힘들었고. 

아주 어렸을 때 딱 한 번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호흡기 문제였다고 들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다. 동생 한 명은 실제로 그렇게 죽었다. 그 후로는 큰 문제 없이 평생을 살았다. 둘째의 호흡기 질환은 나한테 간 것일 수도 있다. 

지금도 그렇게 편한 시기는 아니고, 나한테 뭐 좀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잔뜩 밀려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예전처럼,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그냥 시간 관리하기가 좀 어려울 뿐이다. 

내년까지만 하면 둘째도 이제 혼자서 학교 갔다왔다 할 정도는 된다. 이제 1년 약간 더 남은 건데, 시간이 좀 되다. 

이 며칠 동안에도 겨울에 있어야 할 일 몇 가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뭘 더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덜 못 하는 게 중요한 순간이 있다. 지금은 최선을 다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한 결정들을 내린다. 그리고 문득.. 난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 늘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결정들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최악을 피하기 위한 결정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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