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을 몇 년만에 봤다. 연중 행사처럼 매년 한 번씩은 보게 된 것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그렇게 되었다. 

영화는 1995년에 만들어졌다. 나는 1996년에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영화를 처음 본 건, imf 경제 이기가 한참이던 1998년 그 어느 때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몇 년간이 내 인생에 가장 애매하고, 골 아프던 시절이었다. 

나는 현대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갈 데는 없었다. 목포 출신의 선배 몇 명이 청와대에 갈 생각은 없냐고 물어봤는데, 듣자마자 “싫어요”라고 했다. 정권이 막 바뀌고 어수선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장국영이 아직 살아있었다. 양조위가 지금처럼 유명하지는 않았다. 양가휘가 지금처럼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는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임청하 영화를 내가 이렇게 많이 보게 될지는 미처 몰랐었다. 

그후로도 몇 년, 나는 틈만 나면 동사서독을 봤었다. 에반게리온도 그 시절에 봤었다. 소설 파운데이션을 읽은 것은 그보다 조금 더 뒤, 공각기동대를 보던 시절이었다. 

동사서독을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엇갈리고, 또 그리고 죽어간다. 

영화로는 동사서독이 돈도 많이 들고 망했고, 영화 찍다 휴가 중에 주연들에게 부탁해서 짧게 찍었던 중경삼림이 엄청나게 히트를 쳤다. 현실은 그런 것인데.. 

그래도 왕가위 영화 중에서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건, 역시 동사서독이다. 개방으로 간 홍칠과 구양봉이 나중에 싸우다 둘 다 죽는다는 얘기는 자막으로 짧게 나온다. 그 한 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오늘 다시 보면서 알았다. 나는 동사서독에 나온 장국영의 목소리와 그 톤을 좋아했던 거라고.. 사실 줄거리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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