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다보니 가스공사 사보에 글을 써주게 되었다. 쓰고 났더니, 이것저것 칼럼들이 연달아 밀려서 헉. 

돌아서고 나니까 이제 씨네 21 원고 달란다. 오늘 저녁에 잠시 한가한 틈이 미리 쓸까 했는데.. 그래도 언제까지 쓸지는 모르지만, 작전도 좀 짜고, 전체적으로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정지. 

영화 잡지이기는 한데, 영화 얘기 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주로 하는 면이라고 한다. 세상 돌아가는 거.. 글쎄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사람들이 너무 분노에 가득 차서 살아간다는 건 좀 알겠다. 내가 세상이라고 기억하는 게, 그래봐야 전두환 때 부터이기는 한데, 언제 분노 가득한 세상이 아닌 적이 있었나 싶다. 이놈 죽여라, 저놈 죽여라, 그렇게 살아온 게 불행했던 근현대사 역사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요즘 딱히 더 사람들이 분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나? 경제는 너무 수치로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수치로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해서 뭔가 얘기하려고 하면 어쩐지 좀 뻘쭘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뭔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다들 뭔가 결정하고 그러는 것 같은데.. 나는 그냥 혼자 조용히 지낸다. 가끔 사람들하고 차 마시는 것도 코로나 이후로 카페가 닫혀서 한동안 차도 안 마셨다. 결정이라고 해봐야, 몇 년에 한 번 큰 결정을 하고.. 나머지는 그냥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내리게 되는 소소한 결정들. 책을 낼지 말지, 좀 천천히 낼지, 빨리 낼지, 그 정도. 사실 다른 사람들이 결단하고, 뭔가 결정하는 것에 비하면 이런 건 결정 축에도 안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까, 진짜로 살아가는 게 더 등대 같아졌다. 다들 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갔다가, 좀 있으면 다시 우르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갔다가.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있었구만. 

이제는 열정, 정열, 그딴 것과도 상관 없이 내 주변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할 수 있으려면 내가 뭘 좀 더 하면 되나, 그 정도 생각만 하는. 기능적인 삶을 살아간다. 엄청난 에너지를 동원해서 뭔가 점프를 하고, 도약을 하고, 그딴 건 이제 내 인생에는 없다. 살살, 아주 살살 조금씩 속도 조절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시간 남으면 애들 맛 있는 거나 좀 해주고. 

그나마도 힘들고 고단해서, 더 내려 놓을 궁리만 한다. 어깨 위에 이것저것 잔뜩 올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보면, 그 정성이 부럽기는 하다. 재는 아직도 저럴 힘이 남아있구만. 

생각해보면, 나도 참 긴장감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같다. 아주 가끔 초 읽기 같은 순간에 잠시 긴장도가 좀 높아졌다가, 내일은 뭐하고 시간을 보내나, 이내 다시 그런 긴장감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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