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키우다 보면 좋은 점이, 우울하거나 청승 떨 시간이 극도로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마스크 쓰고 어린이집 가고 태권도장 가서 힘든 애들하고 있다보니, 뭐라도 좀 맛있는 것도 해주고, 애들 얘기도 들어주고, 조금이라도 웃을거리를 찾게 된다.
사람이라는 게 묘하다. 한 몇십 분 애들하고 같이 웃다보면, 무슨 생각하고 있었는지, 감정과 함께 기억도 같이 사라진다. 그러면 또 책상에 앉아서, 내가 어디까지 썼더라, 그렇게 된다. 그러면 이것저것 골 아픈 얘기들, 벌써 다 까먹었다.
일상성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부쩍 많이 하게 된다. 하루에 몇 시간은 꼼짝 없이 애들하고 시간을 보내고, 시장도 보고, 이것저것 사오고, 또 간식도 적당히 챙기고. 그냥 그게 사는 일상이다. 애들은 크면 이런 시간 기억 못 할 거다. 그리고 심지어 내 기억에서도 흐릿해질 것이다. 애들 기저귀 갈던 시절이 벌써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많이 편해졌다는 감정만이 얼핏 몸에 새겨져 있다.
명랑을 모토로 산 게 한 1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명랑하게 살려고 했더니 삶이 편해진 것인지, 삶이 편해져서 명랑하게 된 건지, 그 앞뒤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예전에 읽은 "잠깐, 애덤 스미스씩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국부론의 그 아담 스미스도 누군가의 노동에 의해서 일상적인 삶을 꾸려갔다는 걸 모티브로 쓴 일종의 젠더 경제학 책이다.
시대마다 일상성은 바뀐다. 우리 시대의 일상성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어쨌든.. 그냥 하루에 몇 시간씩 애들하고 복닥거리고 있다보면, 슬퍼할 시간도 짧고, 그 기억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야구 볼 시간도 줄고.
결혼하고 나서는 술 마셔도 보통은 9시에 들어오는 게 아내랑 한 약속이라서, 9시에 식당 문이 닫아도 사실 나는 큰 변화는 잘 모르겠다. 너무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그 평범함이 코로나 국면에서는 오히려 버티는 데 좀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덕도 신공항, 줌 토론회.. (0) | 2021.02.02 |
---|---|
긴장감 없는 삶.. (0) | 2021.02.01 |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0) | 2021.01.16 |
다시 토건 논쟁으로? (1) | 2021.01.14 |
살살 살기.. (5) | 2020.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