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끝났다. 올해는 늦게 끝나서, 정말로 한 해가 다 간 것 같다. 사실 다 간 것이 맞기도 하다.
연말에 망년회 안 하면 망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작년은 완전 망한 해라서 망년회도 안 했다. 올해도 살짝 망한 해이기는 하지만, 작년급으로 망하지는 않은 것 같고. 코로나 때문에 망년회는 어려울 것 같다. 요번 주에 첫번째 망년회가 있었는데, 이래저래 취소.
야구 시즌에는 삶이 단조롭더라도 매일 누군가 박 터지게 붙고 있으니까, 그걸로 신경을 많이 분산시킬 수 있다. 물론 그래도 머리 빡빡한 건 마찬가지지만, 잠시라도 다른 것들을 집어넣고..
어쨌든 야구가 끝나면 다음 시즌 시작할 때까지, 멍하다. 그만큼 재밌는 일이 없는 듯. 대체 이놈의 야구를 왜 보느냐 하면서, 30대까지는 야구장 종종 쫓아다녔는데.. 아이 태어나고는 야구장 못 갔다. 지금 같이 지내서는 아마도 내 생에 야구장 다시 가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맨날 지는 야구를 뭐하러 보냐면서도 틈만 나면 야구장 가던 30대를 지나고..
이제는 득도의 경지다. 지면 지나보다, 이기면 이기나보다.. 지는 게임은 보다가 그만 보면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러다가 이길 분위기면 다시 보면 된다 (핸펀으로 결과 계속 확인하는 걸 보면, 완전 득도의 경지다..)
다른 데서는 이렇게 무념무상,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틈틈이 분노하고, 가끔 크게 열받는다. 아직 멀었다. 내 인생에 작은 소망이 있다면, 죽을 때 추접스럽지 않게, 그리고 웃으면서 죽고 싶다. 말만 그렇게 하고 아직도 추접스러운 욕망들이 좀 남아있는 것 같은데, 야구 보는 순간 만큼은 거의 득도의 경지다. 팀과 상관 없이, 저 아저씨 정말 잘 하신다, 야아! 다른 일은 이 정도로는 못 한다. 그런 이유로 야구를 보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더욱 야구를 사랑하게 된다.
얼핏 NHK 보니까 히로시마 토요카프의 투수가 이번 달 최우수 선수상을 탄 것 같다. 그것도 괜히 기쁘다. 반쯤은 시민구단.. 맨날 꼴찌에서 헤매더니 몇 년 전에는 우승도 했다. 괜히 응원한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닌데.. (히로시마 돔구장에도 갔다왔고, 모자도 사왔다..)
증오를 내려놓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직도 머나먼 경지다. 그렇지만 팀이 이기든 지든, 크게 분노하지 않고 크게 낙담하지 않는, 그런 경지까지는 간 것 같다. 물론 롯데의 끈질긴 팬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몇 년 전 부산 삼겹살집에서 야구 보다가 롯데한테 역전하는 순간이 있었다. 옆을 돌아다보니까, 티 내면 맞아죽을 것 같았다.
인생을 야구처럼 살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이기든 지든, 매 순간을 나의 게임으로 생각하고 뛸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매일 이길 수도 없고, 늘 상위권에 있을 수도 없다. 그냥 그날그날의 게임을 뛸 뿐이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면, 내려놓는다,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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