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로 공포를 느꼈던 것은 한 번인 것 같다. 동구가 무너지고 동독의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택시 운전수가 되었다는 짧은 신문 기사.

그게 내 인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바게트 만드는 학교를 다닐까 생각했다. 제대로 하려면 담배를 끊어야 한단다. 그건 곤란하지. 그래서 보석 세공을 배울까 했다. 이 눈으로는 택도 없다는. 마지막으로 고미술 복원을 배울까 했다. 내 무딘 손가락으로는 역시 입학시험도 통과 못 할...

학위를 받기는 받겠는데, 먹고 살기는 힘들겠다고 거진 포기한 상태. 그 때 진짜로 무서웠었다. 어차피 굶어죽을 거, 하고 싶은 거나 하자고 자포자기 상태로, 전혀 돈 되지 않을 분야로 박사논문을 썼다. 후회는 없다.

그리하여 많은 것을 포기하고, 굶어죽어도 좋다고 생각.

그 시절의 나를 지금 돌아보면, 병신 육갑하네... 잘 처먹고 잘 놀고 살았다. 50이 되었다. 자칫하면 똥돼지로 50을 보내게 생겼다는 두려움에 만보기를 켜고, 이틀째 꼬박꼬박 만보 채워서 걷는 중이다.

굶어죽기는 커녕, 자꾸 배에 살이 붙어서 고민스럽게 되었다. 전혀 쓸 데 없는 공포를 가지고 몇 년간 시름시름, 센티멘탈 블루스.

그래서 난 20대에 낭만이나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 그런 게 거의 하나도 없다. 병신이지... 안해도 되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하면서 살았다. 그걸 내려놓고 나니,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냥 아저씨가 되었다. 디룩디룩,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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