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이들 메모'에 해당되는 글 275건

  1. 2022.11.16 어린이들과 손잡고 가는 길.. 1
  2. 2022.11.09 새벽 두 시에.. 2
  3. 2022.10.30 이태원의 할로윈 파티.. 1
  4. 2022.10.21 제빵기 빵..
  5. 2022.09.30 Oh Freedom 2
  6. 2022.09.28 오늘은 둘째가 학교에 갈 수 있을까? 1
  7. 2022.09.21 최악을 피하기 위한 선택.. 3
  8. 2022.09.18 둘째, 병원에서..
  9. 2022.09.17 둘째 병원 점심..
  10. 2022.09.17 병실에서 돌아와서.. 1

우리 집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그렇다. 아직 산책할 때 애들 손을 잡고 다닌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손은 특히 찻길에서는 꼭 잡고 다니는데, 둘째 손만 잡으면 큰 애가 심통 난다. 좁은 길 갈 때 큰애한테 앞장 서라고 하려면 길거리에서 한참 토론을 해야 한다. 큰 애랑 둘이 갈 때에도 큰 애는 내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린이들 둘만 갈 때에는 서로 손을 잡지는 않는 것 같다. 큰 애가 속도 안 맞춰주고 너무 혼자만 앞으로 가서 힘들다고, 둘째는 큰 애랑 둘이 가는 건 잘 안 하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간 뒤로는 아버지 손을 잡은 기억이 없다. 기억이 안 나는 더 어린 순간은 모르지만, 아버지 손 잡고 걸은 기억 자체가 없다. 다섯 살 때인가, 영등포 역 앞에서 걸어가다가 아버지를 잃어버려서 당황해서 인파 속에서 한참 찾아다닌 기억이 있기는 하다. 몇 분 뒤에 아버지가 뒤에서 놀라서 나타나셨다. 나는 아버지가 앞 쪽에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버지 찾는다고 너무 앞으로 갔었나보다. 그 시절에 아버지는 영등포에 있는 다방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나셨는데, 담배 연기 가득한 다방에서 계란 반숙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다섯 살 때 기억이 아주 많다. 그때 마포에 있는 금은방에 어머니랑 갔었는데, 어머니가 결혼 반지 등 예물을 팔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랑 갔던 다방 위치는 지금도 어느 정도는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마포 금은방은 마포라는 것만 기억나지, 어딘지는 전혀 잘 모르겠다. 버스 타고 건너갔던 다리가 양화대교인지 마포대교인지, 너무 이런 시절이라 그건 잘 모르겠다. 다리 건너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길 건너편으로 좀 걸어간 것만 기억난다. 

하여간 아직까지는 우리 집 어린이들과는 길 가면서 손을 잡고 다니는데,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오늘 문득 했다. 우리 집 어린이들이 날 좋아하는 이유는, 아내는 질색을 하면서 사주지 않는 불량식품급 과자들을 나는 틈만 나면 사주는 것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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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에 세탁기 가득 빨래 돌려놓았던 게 생각이 났다. 애들 빨래가 있어서 좀 많다. 아내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얼마 전에 병원 응급실에 갔다왔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 보면 진짜 패 죽이고 싶다. 좁은 건조대에서 자리 잡아서 빨래 너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종류별로 늘어선 양말 짝 맞추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게다가 애들 양말은 짝이 잘 안 맞는다. 중얼중얼, 어린이들 양말 짝 맞추고 있는데, 고양이가 맑은 물 토하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에휴. 또 일이네. 

우리 집 고양이는 태어나서 몇 달 안 되어서 길에 쓰러진 걸 누군가 동물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정말 몰골이 아닌 애를 입양해서 데리고 왔는데, 지금은 완전 새로운 품종이 되었다. 두 살 때 장에 문제가 생겨서 큰 수술도 한 번 했다. 백만 원 넘게 들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가난한 20대 여성의 경우라면 이 돈을 어떻게 했을까? 고양이들에게도 평등을. 

그렇게 해서 지금은 14살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토한다. 워낙 장이 약해서 그렇단다. 여러가지 시도해 봤는데, 별 소용은 없고, 그냥 그때그때 잘 치우는 수밖에 없다. 4번에 한 번은 사료 없이 물만 나오는 경우가 있다. 

파리에 살던 시절에 보았던 일이다. 지하철에서 여고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술에 취해서 토하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무 것도 없이 맑은 물만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 가슴이 참 아팠다. 우리는 안주를 엄청 먹으니까, 술을 마셔서 정말 그렇게 맑은 물만 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0대 여성이 아무 것도 안 먹고 맑은 물만 토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 저 사람은 무슨 삶의 고통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고양이가 토하고 나면 제일 큰 일은 그걸 찾는 것이다. 다행히 쉽게 찾았다. 고양이 토한 걸 치우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내가 나중에 죽어서 지옥에 갈지도 모를 때, 살아서 착한 일 한 거 대보라고 하면 하나는 있을 것 같다. 

세탁기에서 빨래 널고, 고양이 토한 거 치우고 나니까, 2시가 훌쩍 넘었다. 해야 할 일이 밀려서 오늘도 꼬박 밤새게 생겼다. 별 하는 일도 없는데, 일이 밀리는 거 보면 나도 좀 한심하기는 하다. 그래도 속도가 그렇게 밖에 안 나는데 별 수가 없다. 

2022년, 시작할 때에는 이렇게 고단한 한 해가 될 줄은 미처 몰랐는데.. 막상 한 해 끝이 보이는 상황인데, 정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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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애는 반에서 할로윈 파티 한다고 색연필로 녹색을 잔뜩 칠한 가면을 만들었다. 그 반은 반에서 할로윈 파티를 따로 하는데, 둘째는 안 하나 보다. 엄청 부러워했다. 아마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파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담임 선생님 재량으로 하는 반도 있고, 아닌 반도 있나보다. 태권도장에서도 할로윈 파티 같은 것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 할로윈은 굉장히 큰 행사다. 아마 얘들이 어른이 되면, 가장 가고 싶은 행사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할로윈도 가고, 어디 가서 술도 마시고, 나 닮았으면 적당히 깽판도 치고 그럴 것이다. 

그냥 친구들과 놀러 나왔을 뿐인데,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람들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앞으로 10년은 더 키워야 그 나이가 된다. 한 해 한 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렇게 다 큰 청년들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 심정이 어떻겠나 싶다. 

그렇다고 우리 집 어린이들은 점점 커가는데, “사람들 많은 곳은 가지 마라”,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종류의 문제는 선진국이 된다고 해서 없어지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행정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느냐, 그런 국가 스타일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아직 우리나라 행정은 좀 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잘못은 아니라고 발뺌부터 하는 행안부 장관의 기자회견은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누가 물어봤어”, 그런 생각이 문득. 

아이들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 나도 이태원 자주 가던 시절이 있기는 했는데, 마지막 갔던 게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기억에서도 까마득하다. 

애도를 해야 하는데, 가슴이 하도 먹먹해서, 어떻게 애도를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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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기 빵..

아린이들 메모 2022. 10. 21. 04:36

 

당분간 파리 바게뜨 가기가 좀 그래서.. 제빵기 돌려서 빵 구웠다. 보통은 우리 집 어린이들 보여주고 나서 먹는데, 배가 고파서 일단 한 덩어리 먼저 먹었다.. 아직 뜨거워서 맛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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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Freedom

아린이들 메모 2022. 9. 30. 18:33

아침에 1교시도 마치지 않고 둘째가 조퇴하는 바람에 오전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회의도 하나 있었는데, 병원 응급실이라도 바로 가야할지, 호흡기 치료 정도로 괜찮을지 판단하느라 아주 생난리가. 다음 주 수요일에 예약이 되어 있기는 한데, 담당의가 1주일에 한 번만 계시니까, 사실 병원에 뛰어가도 입원하는 거 말고는 별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오전 지나고 나서 좀 괜찮아져서, 외부에 일이 있어서 둘째 데리고 나갔다왔다. 
차에서 예전에 녹음해둔 조안 바에즈의 we shall overcome, 1969년 우드스탁 버전이 흘러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간만에 아내 차도 세차를 하고. 올 가을에는 창틀 청소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는 모기 때문에 못하고, 추워져도 못 하고.. 매직 블록 주문했다. 아자, 아자. 올해는 날 잡고 창틀 청소를 하고 말리라. 
그리고 나서 둘째 애 데리러 다시 나가고. 오늘은 방과후 로봇 교실하는 날이라, 장비 가방이 어마무시하다. 그러고 나가는데, 둘째가 케익 사달란다. 참, 생일이지, 얘가. 그 와중에 포켓몬 빵 예약해달라고, 둘 다. 돌아비리. 
나갔다, 들어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를 보내고.. 방에 돌아와서 낮에 들었던 조안 바에즈 앨범을 틀었다. 2017년에 나온 "Oh freedom"이라는 제목의 앨범이다. 오 자유여. 같은 '자유'인데, 윤석열 입에서 나온 자유와 조안 바에즈 입에서 나온 '자유'의 어감이 왜 이렇게 다른지. 
아내는 오늘 지방에 갔다가 늦게 온다. 둘째 생일인데, 미역국만 아내가 해놓고 간 게 있고.. 결국은 시켜먹기로 했다. 아내한테 뭐 먹고 싶냐고 했더니, 깐풍기. 비싸서 잘 안시켰는데, 오늘 저녁은 깐풍기 먹는 걸로. 
우리 집 어린이들은 깐풍기 먹는다고 난리 났다. 나는 잠깐 통장 잔고 생각해보고, 뭐, 별 상관은 없겠군. 내 통장에 너무 돈이 없다고 아내가 안 꺼내간지 두 달은 되는 것 같다. 아 참, 돈이 좀 있겠군. 
오늘 저녁에는 수영장 가기로 한 날인데, 도저히 갈 형편이 못 된다. 이것저것 계획을 빼곡하게 세우는데, 하나마나한 계획을 계속 새우고, 연장해서 갱신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며칠 전부터 사실 고민이 생기기는 했다. 아주 예전에는 우리 집에도 LPG 난로가 있기는 했었는데, 지금은 다 치웠고, 도시가스 난방만 한다. 올 겨울에 도시가스가 끊기지 않고 계속 나올까? 어른들만 있으면 전기장판 켜고 그냥 하루이틀은 버텨도 될 것 같지만, 어린이들이 있어서 그렇게는 어렵다. 아직 한가하고, 사재기 시작되지 않았을 때 전기 난로를 몇 개 사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거의 쓸 일이 없겠지만, 윤석열 하는 거 보면, 가스 꺼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사실 없다. 전기는 석탄 보일러까지 탈탈 털어서 어떻게든 버티고 갈 것 같은데, 도시가스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스 쪽 전문가한테 전화해서, 올 겨울 도시 가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모냥 빠지는 일이고. 수급 비상이라는 것까지는 아는데, 그때도 비싸다고 별로 급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던. 그리하여 아직 여유 있을 때 전기 난로를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이런 고민이 오늘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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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퇴원한 다음에 학교를 잘 못 간다. 몇 번 갔었는데, 1교시 채 마치지 못하고 조퇴하고는 했다. 원래 다니던 병원은 입원 병실이 못 갔고, 병실이 있던 고대 병원으로 갔는데.. 여기는 소아 호흡기 전문의가 없어서, 1주일에 한 번 외래 진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정이 있어서 매주 진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 견디기 힘들어하면 바로 응급실로 와서 입원하라는 정도가 병원에서 준 지침이라면 지침이다. 

작년에도 한 달 가량은 학교 갔다 조퇴하고, 또 못 가기도 하고, 그렇게 버텼다. 둘째가 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을 즈음,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다시 이번에는 아버지 병실로.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그냥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써야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아내는 요즘 나에게 거의 성인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아버지 재산 정리하는 마지막 절차를 진행하는 중인데, 어머니가 치매가 시작되어서 판단은 사라지고 고집만 남았다. 그냥 맞춰드린다. 좀 이상한 게 있어도 그냥 넘어간다. 

아버지가 남겨놓으신 돈이 얼마 안 된다. 어머니가 사실 수 있는 집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로 옮기려고 많이 알아봤는데, 결국 돈이 많이 부족하다. 내년 아버지 1주기 되면 다시 생각해보는 걸로, 일단은 포기. 무리다. 

몇 년째 애들이 오락만 하고 있어서 혼낼 때 말고는 정말 크게 화내는 일도 거의 없고, 남한테 싫은 소리도 거의 안 하고 산다. 그 대신 뭘 하자고 하는 일도 이제는 거의 없다. 이런 걸 해보면 어떻겠느냐, 가끔은 그런 얘기도 하지만, 두 번 얘기하는 일도 없다. 애 아프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뭘 하자고 해도 도저히 내가 추스를 형편이 아니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은 전화를 하셔서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고, 몇 번은 우신다. 하이고. 

일주일만이라도 좀 집중할 수 있으면 시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일주일은 커녕 반나절도 좀 혼자서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래도 또 맞춰가면서 사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다. 

일정을 이렇게 저렇게 잡아보지만, 내가 잡은 일정은 잡으나 마나다. 가을이 아주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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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오늘 학교 갔다가 숨쉬는 게 어려워서 바로 집으로 왔다. 퇴원은 해도,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데에는 한참 걸린다. 지난 가을에도 둘째는 학교 가다 말다 했다. 갔다가 조퇴하는 날도 많았다. 약간은 꾀병도 있고, 진짜 아픈 때도 있고, 그런 걸로 알고 있다. 

나도 이것저것 일정을 짜기는 하는데, 아이가 아프면 짜나마나다. 지난 가을에는 둘째가 아팠고, 둘째가 좀 괜찮아질 즈음에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겨울에 얄짤 없이 병실에서.. 그후로는 어머니 치매가 심해지셔서, 건보 홈페이지에 매달리면서 등급 받고, 긴급 돌봄 시작하고. 그리고는 애들 방학. 지옥의 두 달 간을 보내고, 가을 되니까 둘째 입원. 

도대체 왜 내가 이렇게 일이 밀려있나 보니까, 1년 가까이 이렇게 지냈다. 도저히 시간 관리가 어려워서 학교도 그만두었다. 학교에까지 시간을 쓰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박사 코스웍 끝나고 논문 코스 들어갈 때 지도 교수가 명예교수 전환이 안 되었다. 학교 앞 바에서 지도교수가 맥주 한 잔을 사주면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보수 총리가 들어오면서 좌파 교수들 밀어내기 같은 것을 하게 되었는데, 신체 검사가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학원 수업을 조금 더 듣고, 박사 학위 세 개를 동시에 받는 걸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게 좀 어렵게 되었다. 그때 처음 들은 얘기였는데, 국가 장학금이 원래 나에게 오게 되었는데, 심사 시준이 국적자 기준으로 바뀌면서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사 과정 등록이 바로 다음 달이었는데, 생각하지 않던 혼동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개인적 삶도 아주 어렵던 시기였다. 학위 등록이 안 되면 당장 체류증부터 곤란해진다. 지도 교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당장 대학 등록도 하기가 어렵다. 맨날 이거 안 해준다, 저거 안 해준다, 싸우기만 하던 학과 사무실을 찾아갔다. 나는 지도교수 찾을 때까지는 불법 체류하다가, 그게 되면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입학 가는 걸로 해서 그렇게 체류증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근데 학과 사무실에서 그냥 박사 코스웍 1년 더 다니는 걸로 처리해주었다. 도장 꽝 찍은 학생증을 받으면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통합 박사 학위는 포기했고, 그냥 경제학 학위 하나만 받는 걸로 처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천재가 등장했다고 하던 나의 박사 학위는 아주 평범한 것이 되었다. 국가 장학금이 사라졌고, 나는 가끔 식당에서 서빙하는 알바를 하게 되었다. 

2안으로 화폐 경제학으로 논문 쓰는 걸 생각했었는데, 결국 너무 무서워서 포기했다. 현실을 생각해서 생태 경제학으로 논문 주제를 바꾸었고, 우여곡절 끝에 파리 7대학 조교수와 하게 되었다. 

그 기간이 힘들었다고 하면,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변화도 컸고, 건강도 별로였고, 돈도 달랑달랑했다. 슈퍼에서 떨이로 파는 감자를 박스째 사와서, 한 달 정도 버틸 각오를 했었다. 한 달 먹을 정도의 감자를 사다 놓기는 했는데, 식당에서 서빙하는 알바가 금방 구해져서 사실 한 달씩 감자만 먹어야 할 정도가 되지는 않았다. 결국 통합 학위를 포기하는 대신, 학위는 더 일찍 끝나게 되었다. 다른 수업들은 안 하고, 경제학만 하게 되었으니.. 논문 초기에는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고생을 좀 하기는 했는데, 논문 과정 들어가기 전 1년 간 붕 떠 있던 기간에는 참 힘들었다. 

그 뒤로도 속상한 순간이나 힘든 순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그때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하는 일도 불투명하고, 빨리 방향을 잡아야 했고, 사는 것도 어려웠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힘들었다. 그때 알레르기성 천식이 왔었다. 도서관에 긴 시간을 있다보니 오래 된 책 먼지를 많이 접해야했고. 몸도 힘들었고. 

아주 어렸을 때 딱 한 번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호흡기 문제였다고 들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다. 동생 한 명은 실제로 그렇게 죽었다. 그 후로는 큰 문제 없이 평생을 살았다. 둘째의 호흡기 질환은 나한테 간 것일 수도 있다. 

지금도 그렇게 편한 시기는 아니고, 나한테 뭐 좀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잔뜩 밀려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예전처럼,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그냥 시간 관리하기가 좀 어려울 뿐이다. 

내년까지만 하면 둘째도 이제 혼자서 학교 갔다왔다 할 정도는 된다. 이제 1년 약간 더 남은 건데, 시간이 좀 되다. 

이 며칠 동안에도 겨울에 있어야 할 일 몇 가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뭘 더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덜 못 하는 게 중요한 순간이 있다. 지금은 최선을 다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한 결정들을 내린다. 그리고 문득.. 난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 늘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결정들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최악을 피하기 위한 결정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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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둘째가 퇴원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별 일 없이 무사히 폐기능이 퇴원 가능할 정도로 좋아진 이후에 마음은 좀 편해졌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성동일 대사, “미안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사실 그렇다. 맨날 미안하다. 그리고 둘째 입원할 때마다 집에서 혼자 있게 되는 큰 애한테도 미안하고. 

오늘은 점심 때 큰 애 데리고 병원 갔다가, 오후에 다시 데리고 와서 구청에서 하는 축구 교실에 데리고 갔다. 지금이라도 더 일상에 가깝게 지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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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점심 시간. 고등어 나왔는데, 폭식 모드. 내 거까지 줬다.

고대 구내식은 정말 아주 오래 전, 학력고사 끝나고 고대 법대 원서 넣을지 알아볼 때 장국밥 먹어보고는 처음이다. 그때 고대 법대 갔으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잠시 생각. 고대 앞에서 술은 엄청 처먹었는데, 안에서 먹을 일이 별로.

둘째는 폐기능이 많이 올라와서 내일은 퇴원한다. 전에 있던 병원은 일요일날 원무과가 열지 않아서 일요일 퇴원이 없던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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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부터 둘째 병실에 있다가 저녁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있으면 하는 것에 비해서는 많이 피곤하다. 나만 그런가? 아버지 쓰러지셨을 때에는 나도 별의별 희한한 병이 다 생겼었다. 아마 그때쯤 검사 받았으면 “바로 입원”, 그랬을 것 같은데.. 지금도 여러가지로 상태 안 좋다. 조신하게 지내는 중이다. 

집에 와보니까 토론회 발제 부탁이 몇 개 와있다. 모른 척 하기는 좀 그런 것들이라, 어지간해서는 해주고 싶은데.. 내가 그럴 여건이 안 된다. 

둘째가 병원에 입원하면 큰 애가 아주 외로워 한다. 혼자 집에 있게 되거나, 내가 있더라도 밀린 일들 급히 처리하느라고 뭔가 같이 놀아줄 형편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병원 면회도 없고,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어서, 애 둘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집에 와서 뭔가 질척질척한 음악을 듣고 싶어서 크림의 앨범을 틀었는데, 이 밤에는 뭔가 좀 아니다 싶다. 그래서 비슷한 느낌으로 지미 핸드릭스를 틀었는데, 역시 좀 아닌 듯 싶다. 결국 그냥 손에 잡히는 추천곡 대충 아무 거나 틀었는데, “Dinner Classical Music”이라는 이름의 옴니버스 앨범. 호텔에서 저녁 먹을 때 나오는 것 같은 음악. 별 테마도 없고, 공통점도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고 듣기에는 그냥 무난. 

오늘 밖에 시간이 없어서 코로나와 관련된 원고를 지금 써야 하는데, 내내 병실에서 둘째랑 이것저것 놀아주다가 왔더니, 마음이 잘 안 잡힌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 보면, 언제 다 나을까, 아니 언제 퇴원할 수 있을까, 얘하고 뭘 하고 놀아줘야 시간이 잘 갈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신경이 나름 곤두서는지도 모른다. 시간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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