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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29 [초고] 센치멘탈 블루스, 궁상의 시대 1
  2. 2018.01.29 작업장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1

 센치멘탈 블루스, 궁상의 시대

 

 

 

1.

몇 미터 앞에서 또래 친구가 죽었을 때의 그 느낌이 그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학교마다 이렇게 저렇게 친구나 동료가 죽었다. 분신도 많았고, 의문사 얘기들이 끊이지 않았다. 80년대는 그렇게 시대의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학생운동에서 일찍 나와서 민중운동을 시작했다. 순전히 경제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만으로 버스 노동자들 소위 도시 빈민들에게 경제학을 같이 공부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서울민중연합이라는 단체가 막 만들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래 봤자 스무 살인데, 집 나와서 그런 일을 하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뭘 알았겠나? 어쨌든 버스 노동자들을 비롯한 소위 도시 빈민들의 삶을 그 때 보았다. 내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그렇게 생겨났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언제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만히 있기가 좀 어려웠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삶을 살까? 남들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아마도 비슷한 일을 했을 것 같다.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친구들끼리는 친하게 지냈을까? 생각이 달라서 친하게 지내기 어려웠고, 분파가 달라서 또 서로 상처내면서 싸웠다. 군인들하고도 싸우고, 친구들끼리도 싸웠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서로들 싸웠는지 잘 모르겠다.

 

실연하고 연인을 떠나 보내는 노래, 분노를 더 키워서 언젠가는 이기자는 노래, 노래도 딱 두 종류만 있는 것 같았다. 책도 감당할 수 없게 두껍고, 어려운 책들만 읽었다. <자본론>은 약과에 속했다. 이건 가감승제만 알면 읽을 수 있었다. 문과쟁이에게 수학 공부는 너무 어려웠다. 재미는 있지만, 즐겁게 하기가 좀 그랬다. 그래도 대학원에 갈 생각도 있고, 기회가 되면 박사까지 진학할 생각이 있었으니까 수학을 틈틈이 공부했다. 경제학과는 수학만 웬만큼 하면 뒤가 너무 어렵지는 않다. 그래도 선형대수나 수리통계학 같은 것은 좀 낫다. 뭘 안다고 헤겔의 <정신현상학> 같은 책들을 그 때 보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틈틈이 본 철학 책들이 대부분 전화번호부 같다. 박사 과정 때 도움이 되기는 했는데, 그 나이에는 진짜 무리였다.

 

연애도 안 했다. 안 하려고 안 한 건 아닌데, 짝사랑이 길어졌다. 이래저래 늘 슬펐다. 해 본 적도 없는 연애인데, 누가 떠났다는 노래를 들으면 진짜로 귀에 짝짝 붙었다. 그리고 그렇게 슬픈 사랑을 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고독한 전사, 이런 게 멋져 보였고, 실연의 아픔을 딛고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어깨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아마 요즘 식으로 정신진단 받으면 다들 우울증 중증 정도 나왔을 것 같다. 즐거우면 안될 것 같고, 웃어도 안될 것 같았다. 다들 골 난 듯한 표정을 했고, 누가 누가 더 힘드나, 이런 걸 가지고 경쟁을 했던 것 같다. 거대한 못난이 게임, 그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위로 같은 건 할 줄 몰랐다. 누가 힘들다고 하면, "내가 더 힘들어", 그렇게 내민 손을 탁 쳐버리는 짓들을 하고는 했다. 누가 힘들다고 하면, 그러니, 정말 힘들겠구나, 그런 말을 하는 걸 배우지를 못했다. 나이 먹어서 꼰대가 될 준비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 아닐까?

 

덕분에 실연을 노래한 가수들이 돈을 벌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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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장석준이 번역한 책이다.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작업장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써보자는 제안이 왔다. 보통은 고민하지 않고, 감사한 말씀이지만, 저는 능력이... 요렇게 바로 답변을 한다. 이게, 내가 성격이 좀 더러워서 그렇다. 무슨 고상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책들은, 어쨌든 마무리는 짓게 된다. 스타일상,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장면과 마무리에 사용할 내용이 잡혀야 책 작업을 시작한다. 그게 안 잡히면 아예 시작을 안 한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강렬한 인상이 있어야 크게 헤매지 않고 종점으로 가게 된다. 물론 하다 보면 결론이 바뀌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런 게 없으면 마무리 자체가 어렵다.

 

남이 제안한 내용들이 부실하거나 의미가 없어서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면, 별 신경도 안 쓰게 되는 경우도 많고, 신경을 쓰더라도 결국 마무리를 못하게 되는 일이 많아서였다. 지금까지 작지 않은 책을 쓴 것 같다. 그 중에서 누가 해보자 거나 출판사에서 기획해서 쓴 책은 한 권도 없다. 이렇게 하다 보면 좋은 점이 한 가지가 있다. 책이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은 누구한테 핑계를 댈 수가 없다. 내가 뭘 잘 못했을까, 무슨 생각을 잘 못 했을까, 그렇게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원래의 패턴대로라면, 못 한다고 바로 말하는 게 답인데...

 

며칠째 고민 중이다. 안 할 이유는 아주 많다.

 

민주주의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 민주주의가 나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별 내용 없이 그냥 민주주의라고 밀어붙이고 갖다 붙이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 하나마나한 얘기에 메뉴 하나를 더 올리게 될 위험이 아주 많다. 내가 하면 다를 것이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여기에 별 시덥지도 않은 소소한 이유들도 따라붙는다. 경제학과 민주주의, 사실 본질적인 얘기는 아니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처럼 민주주의를 소소하게 분석하는 훈련도 별로 받은 적이 없고, 그렇게 절차와 과정을 나누는 것에 대단한 흥미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래도 고민을 하는 이유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회사, 여전히 개판이다. 이젠 좀 괜찮아질만도 한데, 여전히 개판이다. 치사하고 은밀하고, 뒷거래 많고... 마슬로의 동기 이론이 나온 게 언제인데, 과연 보편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회사가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할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회사 가는 거 아닌가?

 

문제를 풀 수는 없더라도 완화시키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읽고 보고, 만나야 할 작업량이 너무 많을 것 같다는 점.

 

예전에 남재희 장관이 내 책에 추천사 달아주면서 부지런한 사회부 기자 같다고 쓴 적이 있다. 실제로 그 시절에는 어지간한 기자보다 더 많이 현장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례들을 조사했다.

 

이제는... 애 둘 키우는 아빠가, 도서관 가기도 쉽지 않은데. 언감생심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람에게 전화로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면 거의 처음부터 이론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겁부터 난다. 하여... 계속 고민 중이다.

 

나도 이제 50이다. 아픈 데도 많고, 무리할 수도 없고, 아이들도 봐야 한다. 돈도 조금씩은 벌어야 하고. 하여, 고민 중이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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