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기, 초고를 끝내고


 

(이 블로그가, mb 촛불집회 때 공식적으로 깃발 들고 참여했던 블로그였다...)



1.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면, 이 순간이 뼈저리게 그리워질 정도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네 살, 여섯 살, 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에 진짜로 중요한 것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으로도, 좀 안정이 되었다. 지난 4년 동안, 번 돈과 쓴 돈이 딱 똔똔이었던 것 같다. 쓰는 건 고정적으로 썼는데, 번 돈이 딱 거기 맞았다. 애들 병원비가 많이 나갔고, 이래저래 애들 쓰는 돈은 고정적으로 나간다. 아마 6월이었나? 진짜 몇 년만에 처음으로 흑자가 되었다. 원래 나는 2년 생활비 밑으로 현금이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와 함께, 한동안 가진 돈을 쓰면서 버티기도 했다. 줄기만 하던 잔고가, 몇 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몇 달 안되었는데, 이래저래 들어올 돈들 생각하면 내년 생활비까지는 되는 것 같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원래 나는 집에 가만히 있을 때가 소득이 제일 높다. 아무도 안 만나고 있으면 쓰는 돈이 없고, 가만히 있을 때 돈 버는 일이 가장 많이 생기니까, 가만히 처박혀 있는 게 제일 돈 잘 버는 길이기는 하다.

 

둘째 아픈 것은 이제는 좀 안정기가 들어갔고, 요즘 몸무게도 부쩍 늘고, 키도 좀 자랐다. 큰 애가 가을 내내 감기를 달고 있기는 했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애들 데리고 산책 다니고, 같이 운동하는 시간도 좀 더 늘렸다.

 

이렇게 살아가는 와중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행복은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행복은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저녁에 간만에 불고기를 만들었다. 애들 둘이 정말 맛있다고, 싹싹 긁어먹었다. 아내도 밥 비벼서 간만에 한 공기 넘게 먹었다. 나도 두 공기 먹었다. 이런 게 행복이다.

 

오늘은 <국가의 사기> 초고를 끝낸 날이다.

 

2.

<국가의 사기>에 대한 생각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는 작년 총선 다음날이다. 그날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사기꾼 얘기는 몇 번 같이 나눈 적이 있었는데, 하여간 뭔가 한 번 준비를 해보기로 얘기를 했다. 그 때 그는 <군함도> 크랭크인 준비 막 시작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는 너무 분석 분량도 많고, 줄기 세우는 것도 까다로울 일이라서, 안하고 싶었다. 아이들 보면서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쯤에는, 마음 속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이건 꼭 좀 했으면 좋겠다고, 몇 날 며칠을 날 볼 때마다 물고 늘어졌다. 아내도 이건 좀 하라고 했다. 그리고 후배들이, 간곡하게 부탁을

 

책 준비하는 데, 내 주변 사람들이 전부 매달려서 이건 좀 해야 한다고 그런 적은 없었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그 와중에,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3.

내가 아는 얘기는, 진짜로 탈탈 털어 넣었다. 처음 시작할 때 나하고 했던 다짐이, '하나마나한 소리'는 절대 안 한다

 

하나하나가 키우면 별도로 책 하나가 될만한 아이템들을 절 하나에 쑤셔 넣었다. 그게 이 몇 페이지에 들어갈까 싶은 것을, 줄이고 줄여서 쑤셔넣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템에 비해서 중량이 적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과감히 날렸다. 새만금에 앞으로 들어갈 돈이 대략 20조원쯤 되는데, 그 정도면 미니 아이템이다. 털어내버렸다.

 

앞 부분에 들어가 있던 이론적 얘기들도, 나중에는 다 들어냈다. 아담 스미스의 자연이자율 얘기는 이번에는 꼭 하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다 들어냈다. 다루어야 할 소재들을 위해서 분량 확보를 하느라고. 중간에 1/3 정도를 덜어내고, 비중 있는 것들을 꽉꽉.

 

키우면 책이 하나 될만한 아이템들도 절도 아니라 그냥 브리지 신으로 태워버렸다. 진짜, 주머니에 들고 있던 아이템들을 얘기를 강화시키는 부연설명 정도의 브리지로, 다 태웠다. 태우고, 또 태웠다.

 

4.

원고를 쓰는 과정에 내 생각이 바뀌었다.

 

언론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이 없었는데, 불가근 불가원. 방송도 불가근 불가원.

 

나는 학자의 길을 간다. 내 길과 언론의 길은 다르다. 가끔 교차하며 만날 뿐이다.

 

방송 제안도 약간은 있고, 고정 제안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게 내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에 쓰던 칼럼들도, 이래저래 정리했다.

 

나는 만드는 사람이다. 소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해도 된다.

 

책은 이슈를 만드는 매체 중에서, 가장 숨이 긴 매체다. 신문 기획기사, 몇 달 준비하면 정말 길게 하는 것이다. 방송사 다큐도 2~3달 정도, 특집 방송이라고 해도 6개월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책은, 1년이면 정말 짧은 거다. 짧으면 1, 보통은 2~3년 후에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얘기를 그 때 만드는 일이다. 어지간히 숨 길게 쉬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게 내 길이다.

 

중간에 사외이사 얘기도 몇 번 있었는데, 그런 것도 다 고사했다. 이제는, 내 길이 아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꼬질꼬질하게,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면서 굽신굽신 거릴 이유가 없다. 만드는 일이 내 일이다.

 

그리고 아주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도 없어졌다. 근심이 사라진 순간, 어쩌면 초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5.

초고를 끝내고 나니, 지난 몇 달간이 너무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이 끝나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지? 모르겠다. 그 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다.

 

큰 산을 정말 몇 번을 넘었는데, 그런 분석 과정이 즐거웠다. 내가 왜 태어났고, 왜 공부를 했고,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내가 나에게 납득이 되었다. 그게 즐거움이다.

 

지금 계약상으로 남아있는 게 두 권, 어지간하면 내년 여름이 오기 전에 다 끝난다. 그 뒤에는 리스트가 없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열 권 정도 리스트가 있었다. 어느덧 다 소화하고, 이제는 남은 리스트가 없다. 그리고 그걸 억지로 늘리거나 채우고 싶지도 않다. 순리대로 가는 게 제일이다. 뭔가 생기면 쓰고, 아니면 마는 거다.

 

에세이집은 매년 한 권 정도는 써볼 생각이 있는데, 경제학 책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이 생각한 게 없다. 이제 50이다.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의무감으로, 아니면 허전해서, 뭘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나이도 아니고. 유명한 어른들 중에는 빈 공간이 두려워서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나도 편안하고, 나를 보는 사람들도 편안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내 삶에 시간이 좀 더 남아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건 그런 거다.

 

<국가의 사기>를 쓰면서, 나는 정말로 편안하게 되었다. 약간씩 뒤틀어진 아픔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런 것도 다 사라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 너머의 일은, 내 영역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에필로그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그 마지막 토막을 쓰면서 눈물이 잠깐 났다. 문득, 내 인생에 이런 글은 다시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순간이 오늘 지난 것 같다.

 

그래서 행복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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