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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석춘의 최근 생각들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가, 고민이 많고, 마음 고생도 싶했을 것 같다.
'정파적 신문 읽기의 함정'이라는 제목을 가진 여는 글에서는 노무현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놓고, 그러면서 이 책을 준비하면서 그가 생각했을 마음의 고통 같은 것들이 잘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정파적인 것들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그 자신은 정파적인 방식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아슬아슬한 선타기가 첫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마침 오늘은 유시민이 신당에 평당원으로 가입한 날이다. 손석춘과 유시민, 어떤 모습으로 두 사나이가 만나게 될 것인가?
2.
안 그래도 신문사를 한 번 정리해볼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으면서도 밍기적 밍기적거리고 있던 중에, 손석춘의 언론의 지식의 눈을 통해서 정리된 언론사는 흥미로웠다. 몇 가지 내가 궁금해하고 있던 것들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럴 때면 선배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신문의 등장, 대중신문의 등장, 광고의 등장, 이 과정들은 짧게 서술되어 있지만, 핵심적이었다.
4월 7일이 한국에서 언론의 날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당연히 그날이 독립신문 창간일이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독립신문에 대한 몇 개의 얘기들은 알고 있는 것이지만, 손석춘의 독립신문에 대한 해석은 흥미로웠다.
3.
손석춘의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끌고, 또한 그가 근간에서 쉽게 평가하듯 그렇게 간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진실(truth)이라는 말이다. 그는 이 말을 세 번을 강조해서 썼다.
우리의 프레임에서는 흔히 진실의 자리에 '팩트'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는 이것을 몇 년 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는데, "신문은 내 분야야!"라고 말하는 손석춘은, 역시 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Last Concert'의 강연 주제가 진실이었는데, 이 때 차마 팩트와 관련된 몇 가지 얘기들은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 꺼내지 못했다.
이 얘기를 '언론과 정당의 경제학'에서 할지, 아니면 '사회과학 르네상스'에서 할지, 그렇게 생각하던 중, 진리라는 손석춘의 얘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4.
머니 투데이가 이렇게 오래된 것인지는 처음 알았다.
경제면에 대해서 손석춘 버전으로 '신문읽기'가 한 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손석춘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
한 문장으로 하면...
조선일보를 대하듯, 경제신문을 대하라.
5.
국제기사에 대한 분석은, 전체적으로 좀 약해보였다.
손석춘은, 해외발 기사에 대해서 약간 좁게 보는 것 같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을 것 같은데.
6.
안티 조선 - 통칭적으로 - 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늘 어렵다.
손석춘도, 불안하게 선을 탄다. 역시, 어려운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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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는 빨리 읽어버리기 아까워, 화장실에 놓고 보는 책이다. 즉, 하루에 한 두 페이지 이상 읽기가 어렵다. 아마도 몇 달 동안, 진중권 읽기가 계속될 듯하다.)
진중권은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면서, 사진 작품에 두 개의 층위가 있음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나는 그 용어를 layer라고 보통은 사용하는데, 포토샵 용어에서 가지고 왔다. (아직은 무엇이라 번역할지, 마음을 정하지는 못했다.)
롤랑 바르트의 studium과 punctium은, 내 용어로 하면 1st layer와 2nd layer 정도, 그리고 나는 3rd layer에 더 중점을 두는 편이다.
하여간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뭔가가 있고, 이것은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해석되는 것이다.
자,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내가 한 공부로 다시 돌아와보게 된다.
나의 경제학은 맑스나 아담 스미스 위에 세워져 있지 않고, 케인즈 위에 서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다 통합했다, 예를 들면 지금의 경제원론 체계를 만든, 베블렌의 제자인 슘페터의 제자이자, 스위지의 동창이었던 폴 사무엘슨처럼, 그렇게 통합을 기원한 것도 아니다.
나는 딜타이 위에 세웠고, 조선일보의 이한우가 번역한 딜타이 책 보다는 폴 리쾨를 통해서 만난 딜타이 위에 세웠다. (폴 리쾨르는 파리 10대학 총장이었는데, 그가 책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자마자 은퇴를 하고 파리 근교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폴 리쾨르의 삶은, 내가 도달하고 싶은 궁극의 이상향이다.)
물론 해석학을 세운 것은 딜타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쨌든 딜타이-리쾨르로 이어지는 간결한 선 위에 나의 학문을 일단은 세워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수리생태학의 population theory와 최근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오스트롬까지 이어지는 evolutionary game theory 같은 것들을 올려놓았다.
해석학이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 의심을 받은 것은, '해석의 독점'이라는 관점으로 알고 있다. 말은 복잡하지만, 해석을 누구도 독점하지 말고, 그 독점에 대해서 악랄하게 조롱하고, 저항하라. 아마 그런 게 대체적으로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해석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대체적인 흐름일 것 같다.
(물론 대개의 많은 학문들이 그렇듯이, 그 조롱은 다시 독점적으로 사용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진중권이 < 교수대 위의 까치>의 앞 부분에서 강조하고 또한 다시 환기시키는 것은 '해석의 독점'에 저항하고, 스스로 해석자가 되라고 하는 말이다.
다시 한 번 롤랑 바르트의 용어를 사용하면, punctium을 회복, 발견, 혹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와 같은 것을 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맨 처음의 인상이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그것에 환원되지 않는 화가와 우리들 사이의 특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매번의 특수 관계는 개인에 따라서 동일하지 않게 생산되는 것이고, 이것에 재생산이라는 특수성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해석을 독점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런 논쟁이 숨어있게 될 것 같다.
나는 해석은 독점되어서는 안된다는 편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해석을 조금 쉽게 '주석'이라고 바꾸면, 아주 오랫동안 주석은 독점되어 왔다. 독점된 정도가 아니라, 독점된 주해를 따르지 않으면, 목을 치는, 아주 살벌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이건 우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정약용의 경세유표는 예론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이게 주석이 독점된 시기에, 가장 맨 위의 보편화된 또 다른 기표로 자신의 담론을 세우는, 목 날라기 싫은 사람의 눈물나는 수법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진중권의 주문대로라면, 이제 교수대 위의 까치는, 정확하게 이 책이 팔려나간 부수만큼의 그런 새롭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punctium에 의해서, 그만한 부수의 책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질 때, 저자의 기도가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진중권이 보라고 하고, 새롭게 puncium 혹은 관계를 만들어보라고 한 그 작업을 하기 보다는, 그를 통해서 진중권만을 보려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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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4&cont=3925
yes24에 김훈에 대한 리포트가 하나 올라왔다.
와 재밌다.
장정일의 신작 소설책을 읽으면서 간만의 충격에 전율을 느끼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충격감과 절망감들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비교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잠시 김훈을 떠올렸다.
김훈, 참 재밌는 사람이다.
김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전히 뻥은, 한국에서 김훈이 최고다. 조선일보는 황석영, 백기완 이런 사람들을 구라꾼이라고 부르지만, 원단 구라는, 김훈이 원단 구라이다.
옛날 사람들 중에서, 김훈의 원형에 해당하는 사람을 생각해보면, 아마 이병주가 아닐까?
장정일은, 구라와는 또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여간 아직은 충격파에 휩쌓여, 생각이 잘 정리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간만에 펌질이다.
(나는 김훈의 팬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스토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내가 알고 있는 진짜 김훈의 모습은, 김훈은 그의 소설에서든, 간담회에서든, 단 한 번도 꺼내지를 않는 것 같다. 딱 한 번,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사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그 김훈은 내가 아는 김훈의 모습과 가장 유사했다.)
그랬다. (할 수)없는 것은 (할 수)없는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성립되지 않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써지지 않는 것들, 말로써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으며, 육하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다가갈 수 없고, 긍정할 수 없는 죽음도 있으며, 해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죽음도 있었다. 바다사자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일어설 수 없는 몸을 일으키려는 몸부림도 쳤다. 아들의 개죽음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오금자도 있었고, 딸의 개죽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방천석도 있었다. 추적할 수 없고 전할 수도 없는 세상을 말할 수밖에 없는 문정수도 있었고,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노목희도 있었다.
『공무도하』(김훈 지음/문학동네 펴냄)는 그랬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억지로 설명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폭력적이 되곤 한다. ‘나를 설득해 봐’라며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책은 그런 태도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어쩐 일인지 뜬금없이, ‘세상에 해가 되는 일을 하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하는.
지난달 26일 서울 홍대 부근의 ‘카페 홍’에서 『공무도하』 출간 기념으로, ‘김훈, 소설가로 사는 법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독자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아주 분명하고 의심이 없는 태도로 일관했던 그는, 좋아하지도 않을, 힘들었을 이 만남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행사는 출판사의 상업적 동기가 있다. 책을 써서 원고를 서랍에 넣어둔 게 아니고 출판사에 넘긴 것도 상업 행위에 가까운 거다. 왜냐면 나는 소설을 썼을 때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잖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업적 유통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럴 때 상업적 유통망은 건전한 거다. 상업적 동기가 있다는 것도 건전한 거다. 상업적이라고 해서 비루하고 추잡한 게 아니다. 이런 자리에 나온 것이 비루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상업적 동기를 놓고, 비루하다, 고매하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상 속에서 필요한 것이다.”
나 역시 이것은 삶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 쪽도 편들지 않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당신의 마음에 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않는다. 독자들과 김훈 작가가 나눈 만남을 그저 나의 시선으로 전할 뿐. 독자들이 던진 비슷한 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묶었다. 막막하긴 해도 최소한 치사하지는 않아서 나는, 썼다. “그래도 기사는 쓰지 마. 치사해. 막막한 쪽이 치사한 쪽보다는 견딜 만할 거야.”(p.129) 당신이 싫어도, 나는 어쩔 수 없다. (※ 사진제공 : 문학동네)
『공무도하』, 40여 년을 묵혀둔 발효소설
『공무도하』는 40여 년 마음에 남아있던 것을 끄집어낸, 말하자면 ‘발효(숙성)소설’이다. 언젠가는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알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공무도하가」라는 고전가요에서 비롯됐다.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 사고에 대한 이야기. 출전문헌인 『고금주(古今注)』는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백수 광부가 강에 뛰어들어 죽고, 백수 광부의 아내가 함께 죽었다. 그 광경을 뱃사공인 곽리자고가 보고 자신의 아내인 여옥에게 이야기했고, 여옥이 그 여인의 슬픔을 ‘공후’라는 악기에 맞춰 노래한 것이 공무도하가이다.
“(백수 광부) 부인의 죽음은 백수 광부를 말리려다 그런 것인지, 백수 광부가 죽은 것이 슬퍼서 투신자살한 것인지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 그 경위가 항상 궁금했다.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슬프다. 여옥이는 뱃사공 아내인데, 공후라는 하프 같은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가정에서 보기 어려운 악기였을 텐데 뱃사공 아내가 그걸 탔고, 노래는 삽시간에 동네에 퍼져, 매우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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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Timeless라는 단편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다.
20분짜리 단편 영화였지만, 나야 류승완 감독의 무조건 팬, 게다가 그는 그런 단편 영화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아, 정두홍!
씨바.
정두홍은 요즘은 볼 때마다 눈물 난다. 언제 하반신 마비가 올지 모른다고 얼핏 들었는데, 연골이 빈 자리를 근육의 힘으로 버티는 중이라고 한다.
여전히 정두홍은 "너 왜 그래"라고 한 마디가 입에서 자꾸 튀어나올려고 하지만, 어쨌든 아주 조금, 짝패보다 아주 조금, 연기가 나아지기는 했다... 고 믿으려고 한다.
정두홍을 잘 알고 있으면, 정두홍을 본다는 이유만으로도 영화는 재밌게 볼 수 있고, 정두홍표 액션을 원껏 볼 수 있다. 그 날 것.
하여간 예전에 BMW가 그렇게 한 것처럼 모토로라에서 홍보용 영화에 대한 지원을 해준 것인데, 이게 해석이 좀 어렵다.
류승완 감독이 요즘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다고 들었는데, 모토로라 측에서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별로 신경 쓰이게 하지는 않았다는 후일담이고, 모토로라 측에서 들은 얘기로는 최대한 류승완 감독이 불편하지 않게 하도록 상당한 배려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짝패>에 나오는 대사대로,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영화, 줄줄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방에서 곡소리 튀어나오는 이즈음, 사무실 경상비를 대기 위해서 모토로라 손이라도 잡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고.
나는 극장에서 봤기 때문에 영화 감과 질은 아주 좋았고, 또 몇 가지 형식 실험 같은 것들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돈 주고 봤으면 봤겠냐고 물으면. 대답이 애매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B급 영화나 보는 사람이라서, 아마 봤을 거고, 정두홍 나오면 또 무조건 본다.
일단은 나쁘지 않은 합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이런 식의 모델이 어느 정도 일반화되고 보편화될 수 있을까, 그야말로 문화경제학이라는 눈에서 좀 복잡하게 생각을 해봤지만. 아직은 조금 더 지켜볼 일일 것 같다.
모토로라 클래식이라는 모델이 출시되면서, 모토로라를 모티브로 만들어본 영화인 셈이다.
(모토로라 홈페이지에서 공개되어 있어서 누구나 바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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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우스 끝나다! (5) | 2009.10.12 |
며칠 동안 카펜터스의 베스트 앨범과 사운드 오브 뮤직 ost만 계속 돌리다가, 오늘은 큰 맘 먹고 앨범을 좀 바꿔보았다. 되는 대로 잡아보니, 데카에서 나온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한 베토벤 심포니 9번이 걸렸다.
9번이 워낙 시간이 길어서 더블 앨범 형식으로 되어있다. 교향곡 한 번을 듣기 위해서 3번을 뒤집는 일을 해야 하지만, 앉아서 9번을 다시 한 번 듣는데 그 정도의 수고야.
베토벤 9번은 더는 얘기할 필요가 없는, 전국민이 다 아는 음악일 것이다. 어쩐지 말러를 들어주지 않으면 좀 궁상맞다는 얘기가 10년 전에 유행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한 때의 말러 열풍도 지나간 것 같고, 모짜르트 열풍도 지나간 것 같다. 나는 한동안 바그너를 열심히 듣기는 했는데,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바그너를 모티브로 썼다가, 책 판매가 영 신통치 않은 것을 보고, 괜히 바그너 듣고 있으면 짜증이 생겨나는 증상이 생겼다. 원래도 바그너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히틀러의 등장을 즈음한 독일의 분위기들을 연상하기 위해서 일부러 들었던 것인데.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아마 이 책이 좀 팔렸으면, 다 바그너 덕이다라고 그랬을지도 모른, 그런 천상 속물인 셈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이 베토벤 9번에서 가장 즐겁게 듣는 장면은, 말할 것도 없이 합창 교향곡이 바로 그 시원한 합창이 터져나오는 장면일 것이다. 말러의 소프라노가 돋보이는 교향곡들도 좋지만, 촌놈이라서 그런지, 나도 역시 합창이라고 하면 역시 9번의 시원스러운 합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내가 9번에서 가장 좋아하고, 또 궁상맞게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오려고 하는 장면은, 바로 1악장이 시작하는 부문의 튜닝에 가까운 가벼운 음맞춤이 진행되는 장면이다. 이 아주 긴 심포니의 시작을 위해서 잠깐의 몸풀이 그리고 바로 튀어나오는 튀어져나갈 듯한 총주.
이 대목은 영화 <이퀄리브리움>에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약품에 의해서 감정을 인위적으로 억제당하고 무감정한 상태에서 파시즘을 유지하는 '감시자'가 역할을 하던 주인공이 LP로 베토벤을 들으면서 눈물을 되찾게 된다. 그 때 흘러나온 대목이 바로 베토벤 심포니 9번의 첫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나서 턴테이블을 다시 샀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나의 LP들을 다시 수거해와서 LP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그릴 일은 없겠지만...
우리에게 LP를 뺐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뺐고, 결국은 음악을 비롯한 예술을 앗아가고, 그런 이후에 파시즘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음모와 관련되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베토벤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심포니 9번의 첫 장면은 절대로 내가 파시즘의 세계와 타협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들었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심포니 9번의 전곡을 듣는 것은 일년에 몇 번 안된다.
음악은, 맥락이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심포니 9번은 영원히, <이퀄리브리움>의 파시즘에서 벗어나기 위한 예술을 되찾기, 그 첫 순간의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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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체처럼 패션지에서 사용하는 문체는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나 때론 그런 문장이 더 편할 수가 있다.
책을 내고 싶거나, 책을 내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들에게 김학원의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그야말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1.
책과 관련해서, 나에게도 고민이 많다.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은 아직도 잘 해결을 못했고, 출판사와 에디터와의 관계, 그리고 어떻게 하면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불만들을 해결할 것인지, 좀 생각해보는 편이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내가 가졌던 질문에 대한 모든 해답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즉...
저자들에게는 필독서이다. 저자와 작가, 즉 author와 writer 사이에는 약간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픽션과 논픽션이라고 재미없게 구분하는 방법들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는 더 미묘한 것 같다.
작가에게도 에디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회과학이나 인문서적을 만들 저자들에게, 이 책은 사실상 필독서이다.
이건...
무조건 봐야 하는 책이다.
2.
김학원이 그리는 출판계는 유토피아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상적인 상태이다. 물론 나도 그리 세상이 움직일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생각하지만. 내가 만난 현실은 책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터프'했다.
출간과정이 우아한 일들의 연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멱살을 잡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냥 침묵하거나. 그런 터프한 의사결정 과정이 몇 번은 등장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냥 참고, 속으로 삭이는 편이다.
아마 상대방도 같은 상황일 것이고, 그럴 때 싸워봐야 결국 답이 안 나오는 그런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 뻔하므로, 내 경우에는 어지간하면 참는다. 그러나 참는다고 해서 그 감정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보다는 에디터 쪽에서, 그리고 출판사 쪽에서 참는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런 팽팽한 신경전에 관한 책이지만, 어쨌든 문체는 우아하고, 그려진 상황은 이상적이다.
3.
어쨌든 저자들은 저자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생긴다. 그리고 동시에 에디터들 역시 에디터들의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다. 두 개의 네트워크가 충돌하면, 대책이 없다. 그런 싸움을 최대한 피하면서, 책들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에디터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다. 어쩌면 저자들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되어있는 셈인데, 저자들이 에디터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훨씬 적은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4.
한 때는 나도 출판사를 차리는 것이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유학 시절부터, 아주 오래되었던 로망이다.
이 로망을 접었다. 너무 어렵고, 너무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출판사의 로망을 접었다.
직접 출판사를 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한에서는 모든 에디터들과 친구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출판사를 내겠다고 하는 순간, 잠정적 경쟁자로 바뀌면서 친구같이 지냈던 에디터들을 잃게 되고, 잘 되어봐야 사장과 에디터의 관계로 돌변하게 된다. 별로 이문이 남는 행위는 아닌 것 같아보였다.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출판사의 꿈을 깨끗하게 접었다.
그리고 잡지를 만들고 싶은 꿈을 꾸었다. 이 꿈도 접었다.
잡지의 편집장이 되거나 아니면 출간인이 되면, 너무 많은 사람들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이래저래 다 접고 나니, 마흔이 되고 나니, 할 일이 사라져버렸고, 하고 싶은 일도 사라져버렸다.
뭔가 하기 위해서 억지로 꿈을 만드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할 일이 없으면, 그냥 쉬면 된다. 그리고 아주 적게 먹으면 된다.
그래도 아직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꿈은, 갈리마르 같은 프랑스 출판사에서 종종 하는, 콜렉션의 디렉터가 되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없지만, 유럽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콜렉션에는 학자들이 디렉터 역할을 맡는다. 언젠가 그런 걸 해보면 좋겠다는 꿈은 아직 버리고 있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로망은 오랫동안 책과 잡지라는 두 개의 매체와 관련되어 있었다.
영화는...
팬으로서 열심히 지지하고, 재밌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좋은 감독들이 있고, 그들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아주 지랄맞다록 극장에 자주 가거나 DVD를 열심히 사주는 것, 그런 일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5.
어떤 사람은 책이 재미있어서 본다고 하는, 정말 부럽고도 부러운 경지에 올라가신 것 같다.
나는 그런 경지는 아니다. 내가 보는 책들은, 정말 재미없고, 또 어지간하면 전화번호부를 가볍게 넘어갈 정도로 두껍고, 정말로 내가 필요한 내용은 그 중에 딱 두 세 페이지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 두 세 페이지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연필로 열심히 무엇인가를 풀어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리하고, 재미없고, 게다가 두서없이 이어지는 라이벌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 누군지도 모르는 그 라이벌을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부 찾아봐야 한다면, 우와. 자본론이 사람들에게 쉽게 잡히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렇다.
존 스튜아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 같은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책의 1/3 분량은 대부분 생시몽에 대한, 약간은 치사하면서도 끈질긴 공격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이 생시몽의 인용은 몇 페이지씩 끝없이 이어지는, 불어 원문으로 채워져 있다. 영어와 불어를 동시에 읽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쩌란 말이냐.
재미없고, 흥미도 없고, 게다가 내용도 어렵고, 틈틈히 왜 내가 이걸 읽고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가득 드는 책들이 내가 읽는 책들이다. 난 아직 이런 책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정말 읽기 싫고, 지겹지만, 참고 읽는 책들이다.
김학원의 <편집자란 무엇인가>는, 다행히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위트가 많고, 아, 그랬구나, 책과 출판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알고 있으면,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다.
이보다 100배는 재미없었다고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꾹 참고 읽었어야 할 것 같은데, 다행히도 책은 무척 재밌다.
6.
출판사와의 communication, 특히 에디터와의 communication은 언제나 숙제이다. 난 그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편이다. 불만이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 나는 불만이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내가 참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상대편에서는 훨씬 많이 참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원래 파트너 사이에 이런 오해와 긴장이 많기 딱 좋은 관계이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로 돌아볼 기회가 되었고, 나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하는 책인 것 같다.
이런 기술적인 얘기들까지, 책으로 간편하게 볼 수 있으니, 진짜 한국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정말이다. '저자'들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예비 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최소한 2~3년간의 모색기의 오류는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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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스 포만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가 만든 영화를 모를 수는 없다. <아마데우스>가 좀 오래된 영화라서 못 봤더라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나이>라는 영화의 이름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체코 출신의 이 영화 감독은, 그 자체로 영화사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B급 영화를 주로 보니까, 그의 예술 영화들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고백하자면, <래리 플린트>를 이제야 보았다.
미국 수정헌법 제 1조 (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한 자유로운 신앙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영화 <래리 플린트>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중,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이미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정말로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는 재미있다. 정말로 겁나게 재미있다. 그리고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온 국민 <래리 필린트> 보기라도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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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천문학은 성직자와 비슷하다. 아무도 부름이 없이는 될 수 없다. 나는 그런 부름을 받았고 나에게는 2급이냐 3급이냐가 아니라 천문학자가 아니냐가 중요하다.
"나는 1급의 법률가보다는 2급의 천문학자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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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단지 남달리 호기심이 많았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영원의 신비에 대해서, 그리고 실재의 놀라운 구조에 대해 생각한다면 누구나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신비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해결하려고 매일 노력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전기작가 칼 셀릭에게...)
우리는 벽과 천장이 온통 여러 가지 언어의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에 들어가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이작 라비, 노벨상 수상자
나는 물리학자는 피터팬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절대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으며, 호기심을 버리지 않는다.
허블, 2급의 천문학자 (3) | 2009.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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