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글 쓰기 시작하면서 아직은 한 번도 작업실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애들 태어나기 전에는 어차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애들 태어난 다음에는 애들 두고 집에 나갈 수가 없었고.

지나보니까 그래도 내 삶이 아주 빡빡하지는 않았던 게, 작업실 같은 것을 만들거나 유지하는 돈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한 때 카페에서 글을 썼던 적이 잠시 있었다. 돌이켜 보니까, 그렇게 카페에서 썼던 책들이 다 망했다. 이유는 모른다.

책 마무리하는 순간에 방법이 없어서 지방의 모텔 같은 데 가서 한 적도 있었다. 그 책들도 망했다.

얌전히 티 안 내고 그냥 고양이랑 같이 쓰는 방에서 쓴 책들이 성공했다. 하여간 뭔가 쓴다고 티 냈던 책들은 한결같이 망했다.

티 내고 쓴 책 중에서 유일하게 안 망한 책이 사회과학 입문서였다. 환경재단의 레이첼카슨룸에서 시민들과 함께 몇 달간 강연 프로그램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책은 안 망했다. 최근에도 체면치레할 정도는 팔려서 인세가 여전히 들어온다.

나머지는.. 다 망했다.

책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지난 책들을 이렇게도 분석해보고, 저렇게도 분석해본다. 시간 잘 간다.

공통점은 카페 등 장소 바꿔가면서 기분 좋은 곳에서 쓴 책들이 한결같이 망했다는..

역시 나는 궁상 떠는 게 스타일이다. 펜시하게, 후레시하게.. 다 아니다. 팬시하게 망하고, 후레시하게 망했다.

앞으로도 작업실 같은 것은 안 만들게 될 것 같다. 실증분석 결과가 그렇다.

뭐 좀 하고 있으면, 애들이 틈틈이 문 열고 불쑥 들어와서..

"아빠, 색칠 공부 뽑아줘."

그렇게 쓴 책들이 나름 성공해서, 체면치례 정도는 하게 해주었다.

지지리 궁상, 내 인생이 좀 그렇다. 갑자기 아닌 척, 이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언제까지 글을 쓸지, 나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작업실 같은 것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멋진 작업실,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랬다가는 제대로 한 번 망할 것 같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올해는 새 만년필이나 하나 살 형편이 되었으면. (아무 만년필이나는 아니다. '스타워즈' 만년필이라야 한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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