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쓸 책, 약간의 마음 정리

 

1.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되든 안되든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편이다. 좀 심하다고 할 정도로,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움직인다.

 

해마다 간이노트를 겸하는 다이어리에 날짜를 빼곡히 적어가면서 움직이는데, 올해는 1월 말이나 되어서 다이어리를 사러 갔더니 이미 올해 것은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올해 뭘 어떻게 해야할지, 사실 생각해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대선 이후의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안한다, 그런 간단한 생각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아기 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기는 인정사정 봐주는 법이 없다. 아내와 둘이 매달리는데, 그래도 어른 둘이서 쩔쩔 맨다. 아기가 워낙 힘이 좋아서 그런지, ‘늙은 아빠는 정말로 죽을 지경이다. 아기와 지내는 시간의 대부분은 즐겁다. 그렇지만 평생 마사지나 이런 것에 대한 충동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나도, 근육통을 느끼면서, 마사지 아니 온천이라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2.

이래저래 벌려놓은 일들은 오지랍 많기도 하다.

 

모피아는 원래는 3권짜리 책이다. 이제 1권이 나간 건데, 2권과 3권은 주제만 정해놓았지, 아직 프레임이나 플롯 등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모피아드라마 판권이 팔리게 되면서, 2권은 아직 교육 얘기를 한다는 것 외에는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판권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데가 몇 군데 생겼다. 1권 후에 1년 간격으로, 어쨌든 처음에 계획한 3권까지는 가보려고 한다.

 

3.

생각만 해놓고 전혀 구상하지 못한 얘기들 중 정리해야 하는 게 동화책들이 좀 있다. 이게 좀 사연이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일인데,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는 얘기들이 끼면서,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애초에 내가 생각한 것은, 고양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지금은 몇 가지 버전이 왔다갔다 하는데, 아직은 도통 오리무중이다.

 

(사실 성인용 책과는 달리, 어느 출판사에서, 누구를 파트너로 해야할지, 결정을 못한 게 헤매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는 하다. 막상 겪어보니, 아동책 움직이는 방식이 내가 익숙한 성인용 책과는 많이 달랐다.)

 

파트너로 일하는 화가가 있어서, 어쨌든 정리는 하기는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로 유아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는 하다. 이념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바른생활 스타일도 아닌, 건들건들, 정말로 아동들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그런 세계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4. 경제대장정 시리즈

 

큰 맘 먹고 12권으로 기획한 경제대장정 시리즈가 있다. 8권을 건너뛰고 9권까지 왔는데, 10권인 농업경제학부터 대기 중인 게 벌써 1년이 넘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9권인 문화경제학의 실패가 뼈아팠다. 여기에는 시간과 돈을 많이 들였고, 실제 인터뷰 작업도 엄청나게 많이 했는데

 

좀 모질게 말하자면, 원가의 1/10도 이 책으로 건지지 못했다. 물론 원가 상관없이 쓰는 책이 많기는 한데, 이 책은 내가 돈을 너무 많이 들였다.

 

게다가 이 책 준비할 때만 해도 아직은 엑셀 파일 그대로 열어서 쭉 자료분석할 정도는 되었는데, 그새 노안이 심해져서 이제는 그렇게 수치표를 순식간에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대선 정국을 맞으면서, 이것보다는 중요한 것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래저래 미루어두었던 시리즈이다. 사소하게는 파트너로 일하는 에디터가 아기 낳느라고 출산 휴가 중이기도 했고

 

8권은 건너뛰거나 완간이 끝난 다음에 쓸 생각이다. 그야말로, 손이 안가는 책이기도 하다.

 

어쨌든 올해는 이 책의 10권에 해당하는 농업경제학은 하반기에 출간할 생각이다. 이 책 앞 권들은 한 번에 두 권씩 발간할 정도로, 나도 30대라서 힘이 좋았는데,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다. 눈도 잘 안 보이고, 그 때만큼 체력도 안 된다. 기분 같아서는 내친 김에 끝까지 한숨에 달리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다.

 

상황 봐서, 농업경제학을 올해 발간하는 정도

 

11권은 과학 경제학이다. 좀 길게 보고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화여자대학교의 에코과학부의 연구원 등록을 하였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익숙한 이공계 사회로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대학에서의 주요 활동은 원래도 공대 건물에서 했고, 나는 이공계 건물이 대학으로는 더 익숙하다.

 

어쨌든,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기왕에 시작한 거니까, 마감을 지으려고 한다. 노무현, 이명박,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정책적으로는 비슷한 시기라서, 어느 정도 내용은 잡아놓았었다.

 

박근혜 시대는, 아직 도통 모르겠다. 실제로 어떻게 갈지, 좀 봐야할 것 같다.

 

그래서 상황도 보고, 전개과정도 보고,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시리즈 완성을 시키려고 한다.

 

5. 이재영 평전

 

운동권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한국의 운동권은 이재영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재영을 좋아하는 사람, 이재영을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이재영을 모르는 사람.

 

월요일날 이정희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재영이 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그와 밥을 먹지는 않았을텐데, 그의 죽음을 보면서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세상 참 묘하다문재인의 두 번째 광화문 유세, 그 날이 나의 친구 이재영이 장지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의 공동 장례위원장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내가 정말로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의 마지막 날에도 나는 같이 하지 못했다.

 

짧게 잡으면 20, 길게 보면 25, 인민노련 시절 이후로 오랫동안 우리들의 지도자였던 사람이 이재영이다.

 

그에 관한 평전을 쓰는 것은 의무감과는 좀 다른 일이다.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사람을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그걸 책으로라도 남기고 싶다.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기록물처럼 할 생각은 없다. 한 사나이의 매력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좀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심상정 처음 만났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는 이재영을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집에서 이재영과 노회찬이 마당에서 같이 삼겹살 구워먹던 순간도 떠오른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노회찬, 심상정, 모두 이재영과의 우정의 연장선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다.

 

6. 기타 등등

 

5년은 길다. 나의 40대 초반은 명박과 함께 지나갔고, 그 뒤는 박근혜와 함께 지나간다.

 

기분 더럽다.

 

그렇다고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도모한다고 해서, 뭐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아기 아빠로, 아이 돌보면서 너무 무리하지 않은 일을 내가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일들이 아직은 많다. 그러나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 둘째 아이를 낳으려고 아내와 이것저것 작전을 세우는 중이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은 어차피 뻔하다.

 

그 사이사이에, 영화와 관련된 일을 좀 하게 될 것이다. 기회만 하게 될지, 아니면 제작자로 직접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게 될지, 아직 그것도 모른다. 영화에 대해서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연출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간 무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들을 가급적이면 편안하게 풀어보려고 한다.

 

내가 이 시대, 아니 정확히는 박근혜 시대, 세상에 무슨 대단한 기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나 서 있는 곳에서, 그냥 그렇게 서 있는 것. 만약 누군가 나중에 어느 인적 드문 외딴 바닷가에 서 있는 등대 같은 인간이었다고 이해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큰 길을 내가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아주 길을 잃지 않도록, 한 쪽 구석을 지키고는 있으려고 한다.

 

대선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고양이들 돌보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대선은 졌고, 박근혜 시대는 너무나 급박하게 우리 곁으로 밀려왔다.

 

어쨌든 내가 할 일을 조금씩 정리해볼 필요를 느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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