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원 세대, 새로운 책을 준비하며

 

150만원은 약간은 사연이 있는 숫자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불을 혼자서 받는다고 가정하고, 이걸 월급으로 바꿔보면 대충 그 정도 돈이 나온다. 문재인이 목표로 하고 있는 정규직 월급 수준의 절반도 대충 이 정도 규모이다. 그 정도 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견 수렴이 있었다.

 

숫자가 하나 더 있었다. 88만원에 2배를 곱하면, 176만원이다. 문캠 쪽에서 만든 숫자 중에는 174만원도 있었다. 처음 150만원을 얘기를 했더니, 청년들이, “선생님, 기왕 쓰시는 김에 조그만 더 쓰시지요.” 그래서 초반에는 150만원과 176만원, 두 개의 숫자가 왔다갔다 했다.

 

국민연대 상임대표직을 수락하면서 조국 선생과 같이 문재인 후보를 좀 길게 보면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150만원과 176만원, 두 개의 숫자를 모두 설명하면서, 150만원 쪽이 조금 더 현실적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 150만원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지원금을 주는 방식의 기본월급제에 대해서 문캠의 모든 경제라인이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좀 복잡한 논쟁과정을 거쳐, 결국 이게 공약으로 채택되고, 이것과 기타, 묶여있던 몇 가지 공약들을 묶어서 청년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1등 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조국 선생이다. 그의 엄청난 엄호가 아니었다면, 내 힘만으로는 그렇게 짧은 기간에 이걸 정리하고 공약으로 만드는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위 거버넌스라고 부르는, 집행체계와 관련해서는 청년청과 같은 별도 부서를 만드는 방법과 기존 부처에 일을 나누어주되, 종합대책 같이 만드는 방식에 대한 얘기가 좀 있었다. 나는 청와대에 청년특보 같은 자리를 하나 만들고,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편이 좀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이 건은 종합대책 형태로 가는 게 나아 보였다. 어차피 국회는 새누리당 세상이기 때문에, 정부 직제개편한다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면 아무 변화도 오지 않고 그냥 시간만 가는 결과가 생길 위험이 높다.

 

처음 국민연대 대표직을 맡으면서, 조국 선생하고 우리가 했던 다짐이 있었다. 12 19일까지, 즉 대선까지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대선이 지나면 지금의 권한을 전부 내려놓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 건강이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대선까지도, 이미 무리해서 안 움직이는 몸을 억지로 끌고 온 것이다.

 

어쨌든 이제 뒤로 물러 앉아서, ‘88만원 세대의 후속편으로 ‘150만원 세대를 살살 쓰는,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가 아닐까 싶다. 현역 경제학자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런 건 이제는 도저히 못하겠고.

 

참 독특한 경험이다. 책에서 그려 보여준 세상과 실제 세상이 내 경우만큼 기기묘묘하게 겹쳐지는 저자도 거의 없을 듯싶다. ‘88만원 세대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난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조금이라도, 어쨌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었다. 어쩌면 그런 내 꿈이, 혹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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