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에 집에서 좀 쉰다. 내일은 아내와 아기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다.
정신 하나도 없다. 고생은 아내가 혼자 했는데, 나는 덩달아 그냥 밤 새운다고, 나도 체중이 줄었다. 이거야 원…
야옹구가 집에 온 다음에 가장 길게 내깔려둔 셈인데, 드디어 잔뜩 골이 났다.
급하게 밀린 글 좀 쓸려고 앉았는데, 드디어 방문을 박박 긁기 시작했다. 수 없다. 한참 놀아주는 수밖에.
원래는 카메라를 아주 싫어하는데, 오늘은 카메라 끈을 다 붙잡고 놀았다. 낮에 쓰던 16미리 끼워놓은 틈에, 그냥 그걸로. 16미리로 찍으려면 정말로 가까이 가야 하는데, 야옹구는 카메라를 엄청 싫어한다. 그래도 오늘은 놀려니, 그냥 참고 카메라 끈이나 붙잡고 논다.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조금씩 애정결핍인지도 모른다. 말이 좋아 공동체지, 사실 공동체의 느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대부분 아니냐? 나도 맨날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하고, 아무도 안 보고 싶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모습은 아주 잠깐만 보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는 모습이다. 증오만큼 단기적으로 신나는 일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증오만큼 허전한 것도 없다. 증오 위에 무엇인가를 세우기가 쉽지 않다.
우린 조금씩 애정결핍이고, 가끔은 자기 정체성에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과도한 동일시의 짜릿한 기분에 빠지기도 하고.
야옹구는 자신에게 애정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걸 실천한다. 내 나이쯤 되는 남자들은, 이제 자신이 애정결핍이라는 사실 자체도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주변으로부터 그 존경과 힘을 인정받으려고 하지만, 이거 사실 서로 피곤한 일이다.
예전에 들은 얘기 중에, 구축함이 지나가면 상어들이 자기 크기를 대어보기 위해서 줄을 선다는 얘기가 기억이 난다. 아니 딱 보면 군함이 자기보다 크다는 걸 몰라, 그걸 꼭 대봐야 해? 그게 한국의 남자들이 아닌가 싶다. 메갈로매니아, 일종의 남근 크기에 의한 증후군이라 해야 할까.
그걸 내려놓으면, 이젠 또 자기가 발가벗은 것처럼 불편하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더 달달 볶게 된다.
놀자고 보채는 야옹구를 보면서, 그냥 솔직하게, 같이 놀자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내 주변 사람들 얼굴이 살짝 지나갔다. 뭐, 나라고 크게 다르겠나 싶고, 얼마나 내가 모범적으로 살았겠나, 그런 생각도 슬쩍 들고.
정말로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 사람은 십중팔구, 재미가 없고, 가슴을 끓게 하는 파토스가 없다. 사람이란 보통 그런 존재이다. 우리는 조금씩 부족하기 때문에, 좀 부족한 사람을 지지할 때 속이 편해진다.
명박의 진짜 힘이 그거 아니겠는가? 저런 인간도 대통령 하는데, 하물며 우리 같이 살짝 맛탱이 간 사람들의 작은 허물 정도야…
아주 환상적이고, 이상적이며 또한 기가 막히게 대중의 파토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치자. 그럼 되겠는가? 케네디가 그래서 죽은 거 아니겠나. 정말로 그런 기가 막힌 존재가 나타나면 총으로 빵.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 각국의 나라들은 벌써 요순 시대가 되었을 거다. 우린 조금씩 흠결이 있고, 조금씩 모나거나, 살짝 뒤틀어져 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애정결핍.
아, 가을 장마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폭우가 며칠 째 계속 내린다. 야옹구와 나 사이에는 애정결핍을 둘러싼 작은 신경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놀아줄거야, 안 놀아줄거야, 오늘 담판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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