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단상'에 해당되는 글 397건

  1. 2019.01.27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한 메모.. 1
  2. 2019.01.27 보람과 재미..
  3. 2019.01.24 뼈다구 만들기.. 1
  4. 2019.01.23 노트를 샀다 2
  5. 2019.01.21 희한한 50대를 보내는.. 1
  6. 2019.01.18 새 만년필은 언제나.. 1
  7. 2019.01.10 참하게 2~3년 보내기로 7
  8. 2019.01.08 서평을 쓰기까지.. 4
  9. 2019.01.07 가판대 그랜드 슬램
  10. 2019.01.07 책과 만년필

몇 달 전부터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 중이다. 진짜로 멋있다. 살면서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도 이제 50. 내 삶도 누군가 걸었던 삶을 따라 걷는 삶은 아니다. 별 볼 일 없더라도, 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

나이 먹으면,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엄청 좋아했었다. 그러나 나이 먹으면 그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영원한 소년처럼 노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성숙하고, 그 성숙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말년을 보내고 싶다. 나는 나이먹지 않는다, 그런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기회가 닿으면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한 평전을 쓰거나, 그의 인터뷰집을 내거나,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내가 얼마나 잘 나고, 얼마나 깊이가 있고, 얼마나 천재적인가.. 그런 건 별로 재미 없는 얘기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걸 보이고 싶어서 오늘도 몸부림을 친다. 그렇지만 별로 재밌어보이지는 않는다.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는 사람은 종종 보는데, 그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그처럼 잘나거나, 대단한 삶을 살지는 못할 것..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처럼 늙어가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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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시사인 편집국장 했던 김은남 기자네 집에 애들 다 데리고 놀러갔다. 식구처럼 지내는 집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요즘 시사인에서 책 담당한다고 한다. 사회과학, 이 쟝르가 우리나라에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한다. 사실 그렇기는 하다. 내 책은 경제로 분류해도 되고, 사회과학으로 분류해도 되는데, 그래도 사회과학자로서의 존심 때문에 사회과학으로 출간한다.

남들 다 트렌드 따라 옮겨가고, 돈 버는 직정으로 넘어가고, 힘 쓰는 자리로 넘어가는.. 그래도 출간 쟝르 하나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버티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오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내 삶의 자부심이, 트렌드를 쫓아간 적이 한 번도 없는. 그리고 매 번은 아니라더라도 가끔은 트렌드를 만들기도 하는. 이제 나도 51세,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만 한다. 재미도 있으면 더 좋겠지만, 내가 하는 일이 늘 재밌는 것만은 아니다. 보람은 있다. 보람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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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성격이 좀 다르다. 좋아하는 것도 좀 다르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돈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는 뭔가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원래 그런 걸 좋아했다. 그리고 만드는 단계 중에서도, 정말 대책 없이 새로운 걸 만든다고 막 고민하는 그 단계를 좋아한다. 그래서 몇 개의 실마리를 잡아서 얼키설키, 소위 뼈다구 만드는 그런 때가 가장 기쁘고 재밌을 때다.

이런 일들은 보통의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이 뼈다구 다음 단계 혹은 최종 제품을 팔거나, 혹은 자기 도장을 찍는 일을 좋아한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도장 찍는 순간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좀 머슥해지거나, 누군가 눈치를 주면 "국회의원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는 것"이라는, 되도 않는 개소리를 한다. 꽤 유명한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조문 작업을 좀 더 해야겠네요, 다음에 만나실 때에는 그걸 좀 더 하셔서." 옆에서 지켜보다가 얄미워서 진짜 머리 한 번 때려줄 뻔했다. 야, 그건 니가 해야하는 거 아냐? 이게, 그냥 거저 날로 먹을려고 그러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가끔은 있다. 정세균이 바닥부터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가 해놓은 것에 숟가락 얹는 것을, 체질인지, 성격인지 혹은 또 다른 이유인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머슴의 자식이었던 그는, 국회의장이 되었다.

50이 되면서 알았다. 나는 초고 정도가 아니라, 스케치 정도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얼키설키 뼈다구를 만드는 그 일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은, 부자 되기는 어렵다. 영광을 보기도 어렵다. 이런 건 도장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된다. 체질적으로, "내가 다 했어", 이렇게 말해도 불편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같이 뼈다구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세상이 공평한 것은, 밥은 먹고 살기 때문에 그렇다. 계속 만들면, 밥은 먹고 산다. 물론, 조금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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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다시 만년필을 꺼내 쓰기 시작했고, 오늘은 노트를 샀다. 노트는 많이 있었는데, 아내가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아직 몇 개 남아있기는 할텐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새로 샀다.

 

살면서 공부를 내가 언제 했더라? 잠시 생각을 해봤다.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를 좀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무슨 평가시험 같은 것을 봤는데, 전국 석차로 28등인가 나왔던 것 같다. 3 때 공부 조금 하고, 다시 공부를 한 건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였다.

 

사실 난 경제학이 뭔지도 모르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냥 점수 맞춰 아무 데나 갔다. 서울대 국문과 정도 갈 생각이었는데, 딱 공부도 그만큼만 했다. 근데 등록금 내줄 아버지랑 식구들이랑 국문학이나 역사학 같은 것은 안 된다고 생지랄들이시다. 정 그럴 거면 육사 가라, 아니면 공사라도. 내가 모아둔 돈도 없고, 세상을 진짜 안이하게 살았다는 작은 속상함 (그 때 술 처먹기 시작한 게 아직까지도 술을..)

 

방법 없어서 그냥 아무 데나 점수 맞춰 갔다. 어차피 재수할 거면 연대 경제학과나 고대 법대 가라고. 내 인생에 마지막으로 아버지 애기를 따른 순간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 얘기는 들은 적도 없고, 같이 살기도 싫었다. 결국 대학교 3학년 올라가면서 집을 나왔다.)

 

고대는 집에서 너무 멀었다. 세상 끝까지 가는 것 같았다. 서울대 적당한 데 내고 재수할까 싶었는데, 여기도 대충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집에서 제일 가까운 연대에 갔고, 거기서 제일 점수가 높다는 경제학과에 갔다.

 

고등학교 선배가 아주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공부는 겁나 잘 했다. 나중에 cpa랑 행정고시랑 그런 거 몇 개를 붙었다 (그렇다고 좋은 인생 사는 걸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양반이 서울대 경영학과에 갔다. 그래서 경영학이 뭔지는 좀 알았는데, 경제학이 뭔지는 정말.. 이게 뭐야? 이걸 왜 해? (그래서 지금도 청소년을 위한 경제학 책, 이런 거 부탁 오면 청소년이 무슨 경제학이냐.. 그러고 안 쓴다. 나도 그런 거 안 봤다. 심지어 나는 경제학이 뭐였는지도 몰랐으니까..)

 

대학교 1학년 때는 그냥 술만 마셨다. 그나마도 5월에 교통사고가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 때 나에게 공부 좀 하라고 이것저것 챙겨준 누님이 두 분 계셨다. 한 분은 나중에 공부해서 지금은 경기연구원에.. 내가 세상에서 본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누님이다. 내 인성은 물론 경제학의 성격은 거의 다 누님의 인성에서 배운 것 같다. 자주 보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그리고 그만큼 존경했던 누님이 나중에 대장금의 작가가 된 김영현, 늘 웃었다. 그리고 인상 좀 쓰지 말라고.. 책은 잠깐만 읽고, 술만 마셨다.

 

대학교 1학년 겨울, 삭발을 했다. 술 먹고 일어난 아침,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내 손으로 머리를 밀었다. 뭐 이것저것 속상할 일이 겹쳐서 벌어지기는 했는데, 총체적으로,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듯 싶었다. 그리고 강릉으로 갔다. 여인숙에서 하루를 자고, 동해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아주 예전의 7번 국도.. 속초까지 걸어가서, 거기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며칠간 우셨다. 삭발을 한 후,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집안에서 아무도 없었다.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 외에는 친척은 아무도 안 만났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친척은 아무도 안 만난다. 그렇게 살았다.

 

학교로 돌아와서 학교 매점에서 바인딩 노트를 비롯해서 노트 열 권 정도를 산 것 같다. 그리고 비싼 건 아니지만 만년필 세 자루와 형광펜 두 자루를 샀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책 살 돈 달라고 했다. 그 시절에는 복사본이라서 원서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선형대수 등 수학책을 포함해서 원서 교과서 30권 정도를 산 것 같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되었다. 그 때 내 생각은, 경제학과를 계속 다닐지 말지는 잘 모르겠는데, 경제학이 뭔지는 알고나 그만두어야겠다는. 한 학기 다녀보고 경제학 재미 없으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 그래도 뭔지는 알고나 그만두는 게 맞을 것 같은.

 

그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한열이가 죽었다. 그래서 나의 공부도 그걸로 쫑. 다시 술 먹고 놀기 시작했다.

 

대학을 통틀어서 진짜로 공부한 건 그 한 학기였던 것 같다. 나중에 보니까 경제학이 의외로 간단한 거였다. 한 학기가 공부 했는데, 대학원 시험 보는 데 아무 문제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경제학 대학원 시험이라는 게, 전세계적으로, 뻔하다. 심지어 박사 코스웍 때 게임이론 추가적으로 공부한 거, 나중에 미분방정식 공부한 거, 이 정도를 빼면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공부한 걸로 박사 졸업할 때까지 특별히 뭐가 더 어려운 거는 없었다. 문과 수준보다는 조금 어려운 수학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거야 하면 되는 거고. 선형대수 보고, 집합론 보고, 토폴로지 조금 더 공부하면, 경제학과 박사 코스웍까지는 약간의 미분방정식 말고는 더 어려운 거는 안 나온다.

 

어떻게 보면 2학년 1학기 때 몇 달 공부하고, 결국 그걸로 박사 코스웍까지는 무난하게. 심지어 나는 박사 과정에 1등으로 들어가서 코스웍 시험까지는 1등이었다. 심지어 처음 유학 가서 치룬 석사 입학 시험과 석사 1학기 시험 몇 개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과목이 1등이었다. (프랑스는 시험 보고 나면 점수를 다 과사무실 앞에 붙여서 공개한다.)

 

자본론은 2학년 2학기 때 도서관에서 읽었다. <국부론>은 유학 가서 읽었는데, 하여간 그 시절 나온 책은 다 읽은 것 같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건 공부라기 보다는 독서에 가까웠다.

 

노트를 다시 산 건, <촌놈들의 제국주의> 준비를 시작하면서 산 것 같다. 지금 쓰는 크로스 아포제 만년필이 그 때 산 거다. 좀 쓰다 잃어버릴 줄 알았는데, 어캐어캐 아직도 내 몸에 붙어있다.

 

<불황 10> 때부터 노트를 안 쓴 것 같다. 큰 애 태어난 시기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시기가 대충 비슷하다. 하여간 노트고 뭐고, 죽지 못해 사는 시기였던 것 같다. 나도 내가 뭐하는 줄 모르고 대충 산 시기이고. 노트만 안 쓴 게 아니라, 가방도 안 썼다. 방송하면서 가방을 쓰기는 했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방송할 때 합숙갈 때 외에는 빈손으로 다녔다. 당연히 노트도 쓸 수가 없었고.

 

물론 그 시기에도 노트를 아예 안 쓴 건 아니다. 인터뷰할 때에는 노트를 쓴다. 그리고 라미 만년필을 썼다.

 

<당인리>를 준비하면서 만년필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노트를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보령이라는 도시가 끼어들면서 도저히 내 머리만으로 정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당인리>2년 정도 준비한 거라서, 기본적인 얼개는 물론이고 자료 준비까지 다 끝났다고 생각을 했다. 요이 땅..

 

그런데 뭔가 잘 안 된다. 전사로 설계해놓은 것을, 동료들은 그걸 뒤에서 흩어서 보여주지 말고 그냥 셋업에서 사용하자는 거다. 고래에?

 

보령이라는 도시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는데, 보령이라.. 이건 또 뭐지? 에 또, 에 또..

 

2016년 봄, 둘째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내가 하던 일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리를 할지, 아내에게 그냥 피박쓰라고 하던지.

 

그 때 애들 다 데리고 아내와 보령의 한화콘도에 며칠 갔다. 그래서 보령에 여행을 간 적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때는 내가 머리가 복잡해서, 바닷가 풍경 잠깐 본 거, 재래시장에서 물고기 산 거, 그런 작은 풍경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태안과 당진은 좀 안다. 서산도 좀 알고. 그런 데 얘기로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바뀌면서 보령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왔다.

 

머리가 혼돈스럽다는 표현을 쓴다. 살면서 머리가 혼돈스럽다는 생각을 한 적은 별로 없다. 난 언제나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었고, 설령 방향이 크게 바뀌더라도 뭘 준비하거나 아니면 그냥 기다리거나, 어쨌든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설사 뭘 해야할지 모르더라도, “그냥 버틴다혹은 기다린다아니면 움직인다”, 이런 최소한의 원칙이나 기준을 늘 정해놓고 있었다. 머리가 혼돈스러운 경험은 별로 없다.

 

내가 진짜로 혼돈스러웠던 순간, 그건 대학교 1학년 2학기 끝나고 삭발을 하기까지의 그 며칠 간이었다. 유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며칠 생각해서 간다, 안 간다, 원칙을 정하고 학위 받을 때까지, 지지리 고생은 했지만 혼돈스러운 적은 없었다. 시간강사하던 시절도 그랬다. , 이건 아닌 것 같다, 취직을 해야겠다.. 그래서 제일 먼저 갈 수 있는 곳에 갔다. 물론 괴로운 시간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혼돈스럽지는 않았다.

 

보령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접하고, 잠시 혼돈스러워졌다. 2년 전에 내가 설계를 잘 못 했다는 건데.. 된장. 그래, 나도 이제 50이다. 이제 더 이상 내 머리도 노트 50개쯤은 머리 속에서 동시에 기록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태가 아니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노트를 사러 갔다.

 

평생 노트를 샀다.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된 것도, 모닝 글로리를 가지고 썼던 짧은 꽁트였다. 이화여고 얘기를, 이화고녀로 뒤틀어서 모닝 글로리의 창업 스토리를 짧게 쓴 글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그 때 나가 천재인 줄 잘못 알았던.. (지내보니까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절절하게 알게 된. 그 정도가 아니라, 이런 병신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딨냐 싶은.. 아내도 살아야겠다, 일단 돈부터 몰수!)

 

그래도 노트를 사는 순간이면, 삭발하고 대학교 매점에서 노트를 고르던 그 열아홉 살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난 그 때 경제학이 뭔지도 몰랐고, 이걸로 평생을 살아갈지도 몰랐다. 마르크스, 아담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살아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멀고 먼 길을 돌아서, 다시 노트 앞에 선다. 새로 산 노트 앞에 맨 처음 쓸 글자는 보령이다.

 

그리고 맨 처음 생각나는 장면은, 박경리 선생이다. 이 양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원주 사람들 잔디밭에 모아 놓고 대화 비슷한 강연을 한 게 방송으로 남아있다. 겁나게 재밌고, 느껴지는 것도 많은 방송이다. 토지 문학관에 가서 좀 지내도 된다고 했는데, 나는 회의만 하러 갔다.

 

일산에서 인공폭포를 지나 광화문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 벌어진 얘기는,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얘기는 통영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 통영 얘기는 좀 실망이었다. 통영을 러시아 대문호들 얘기를 섞어서 문장과 문체에 대한 얘기를 하시는데, 그 얘기를 저렇게 어렵게 밖에 못하실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죽기 전에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해야 한다면 저렇게 어렵게 얘기하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리고 어렵지 말고.

 

노트를 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말고, 어렵지 말고..

 

초등학교 3학년이면 알아먹을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다. 난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얼마나 복잡한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렵지 말고, 그건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노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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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은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까 뭘 안 한다고 하는 일이 내 일 중에서 제일 크고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조그만 경제방송을 준비하는 게 있는데, 자문은 해줄 수 있지만, 진행은 못 하네요.. "네, 당연히 안 하지요." 몇 년 전 같으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네 고맙습니다, 그러고 했을 것 같다. 그 몇 년 사이에 나도 참 많이 변했다.

책은 요즘 인기도 없고, 사회과학은 비주류에서 더 비주류로 내려 앉았다. 당연히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제 뉴스 거리도 아니고. 공보식 논리로 하면, 뉴스 밸류가 없다. 아예 없고, 전혀 없다.

좀 화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갑갑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원래도 비주류의 비주류. 비주류로 살아가는 게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그래도 술은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당당한 주류.. 왜 이러고 사는지 몰라.)

공부라는 게, 화려한 거 좋아하는 성격의 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씨 뿌리고, 김 매기까지 하는, 그런 노가다성 농사일과 공부가 비슷하다. 추수의 보람은 있지 않느냐? 추수절이 다가오면 누군가 차떼기로 도리를 쳐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입에는 들어가지 않았겠어, 이렇게 농사 노가다 일을 보람으로 생각하는 성격,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하기가 어렵다.

철학은 그래도 때로 폼이라도 좀 나지, 사회과학은 그렇게 폼 나는 일도 별로 없다 (서울대 김상환 선생이 박사과정 들어갈 때 철학과로 안 가고 그냥 경제학과로 갔다고, 니가 그럴 수 있느냐고 쓴 편지를 얼마 전에 아내가 짐 정리하다가 찾아냈다. 참,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지..)

그래도 쭈구리고 앉아 책 읽고, 종이에 뭔가 도표 같은 거 정리하고, 억지로 시간 내서 아이들하고 산책하고.. 이런 삶이 나에게는 잘 맞는다.

가끔 좀 더 화려한 데로 나오라고 하는 얘기들이 있기는 한데.. 나는 그렇게 무대에 서는 것보다는, 그냥 이론들 정리하고 숫자 비교하는 그런 공장일 같은 거, 뭔가 만드는 게 더 좋다. 그러니 지금까지 명랑을 잃지 않고, 웃으면서 살아올 수 있었던 거고.

뭔가 만드는 게, 그 순간이 나는 좋다.

연구원장 같은 제안은 심심치 않게 온다. 듣지도 않고, 싫어요, 그러고 만다. 지금 이 나이에 원장 해서 뭐하게. 남들 연구시키는 게 일이 되면서 50대의 마지막 기회를 낭비하면서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

연구는 자기가 해야지.. 물론 나도 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기는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냥 살살, 조금씩 해도, 우리나라 어느 연구원장보다는 더 생산적이고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 연구시키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고속버스로 수십 대분 이상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나도 그 줄 중의 한 명이 되고 싶지는 않다.

책 쓰는 연구원장이 어딨냐? 신문 기고도 자기가 안 쓰는 판에..

팔리는 건 나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직장 민주주의 책 정도의 의미와 품질을 가진 책, 3~4권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모피아'급 수준의 얘기도 3~4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화려하고 넉넉한 삶 보다 내게는 100배는 가치 있어 보인다.

그러다보니까, 뭘 안 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 상대 심통나지 않게 하는 게, 요즘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빈번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희한한 50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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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쓰던 만년필 두 개. 하나는 내가 샀고, 하나는 학생들에게 선물받은 라미. 크로스는 필기감 개판인데, 그래도 기념으로. 요것보다 한 단계 위를 사고 싶기는 한데. 몇십만 원 그냥 써도 괜찮을 정도의 책을 쓰면 사기로 했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흘렀다. 돌아보면 참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다. 몽블랑이나 샤퍼에 비하면 정말 싸구려 만년필 하나 사도 괜찮을 정도의 책을 아직도 못썼다. 오죽 고민이 심하면 뭐야, 이게, 싸구려 같으니, 그렇게 던져놓은 작법책을 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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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요즘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이제 일을 좀 줄이라고 말했다. 사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 전에도 일을 많이 했지만, 지난 2년 진짜 너무 많이 했다. 이제는 건강상, 무리다. 애 두 보면서 이리저리 짤린 시간에 뭘 하려니까 너무 무리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들은 긴장도가 아주 높다. 어디 딱히 물어볼 데도 없는 경우도 많고. 내가 사실상 자문들의 자문이다 보니까, 내가 모르면 그냥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

 

줄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보니까 여성가족부 회의를 두 군데나 나가는데.. 무슨무슨 회의나 포럼에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게, 그야말로 나래비를 서 있기는 한데, 그렇게 나가기 시작하면 진짜로 죽는다.

 

다큐 얘기가 몇 개 오고 가고는 했는데, 이것도 무리데쓰.

 

책을 비롯한 일 몇 개로 하는 일들을 확 줄여놓기는 했는데, 일하는 시간이나 강도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다. 하긴.. 내 주변을 아무리 돌아봐도 내 나이에 자기가 책도 읽고, 엑셀작업 등 분석도 직접 하고, 인터뷰도 직접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람들 연락해서 일정 잡고, 타임 스케쥴 짜는 것도 별 방법이 없어서 직접 다 한다. .. 내가 제일 한가해 보이기도 하고, 결국은 정보가 나한테 다 모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고.

 

그냥 올해는 씨 뿌리는 해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모른다고 하고 자빠질려고 한다.

 

오랫동안 안 보던 사람들하고 오후에 차 한 잔 마시는 일을 몇 달 정도 했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없애야 할 것 같다. 애 키우면서 하려니까 차 마시는 것도 이제는 부담된다.

 

집필할 때 문 걸어 잠그던 사람들이 이제는 좀 이해가 될 것 같다. 몸이 너무 힘든겨..

 

저녁 먹고 나서 일을 좀 했는데, 그것도 없애기로 했다. 그냥 쉬기로.

 

일단 앞으로 2~3년간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참하게 지내기로 했다. 몸도 좀 추스리면서. 진짜, 몇 년간 너무 무리 했다. 그 뒤는? 모른다. 일단은 놀면서, 쉬면서, 되면 되는대로, 말면 마는대로.

 

 

 

(애들 보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몇 년째 계엄령 내린 것 같은 비상 사대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나도 긴장도를 좀 낮추고, 쉬엄쉬엄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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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에 쓰는데, 하여간 욕은 옴팡지게 먹었다. 욕이야, 뭘해도 먹는 게 욕이다. 뭘 하면 한다고 욕 먹고, 가만히 있으면 수수방관한다고 욕 먹고.

어쨌든 애들 둘 보면서 책을 별로 못 봤는데, 서평 쓰니까 책은 야무지게 읽게 된다. 막상 글을 쓰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일단 읽어야 쓰니까 절대 시간을 쓰게 된다. 그리고 뭘 읽을지를 알아야 읽는데, 이게 참.. 읽어야 뭘 읽을지를 알게 된다는 또 다른 딜레마가.

책 고르는데 원칙이 있나? 없다. 마음 가는데로. 박노자 책을 고를 때가 제일 힘들었다. 박노자 책 서평을 쓰고 나니, 마치 인생의 숙제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박노자가 몇 번 나를 비난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거는 박노자 생각이고, 나의 박노자에 대한 생각은 또 다르다. 박노자 때에는 편집국이 잔뜩 긴장했다. 쓴다고 몇 주 전에 알려줬고, 원고도 일주일 전에 줬다. 혹시 이거는 안 된다고 하는 경우, 대타로 쓸 책도 준비해두었다. 다행히 그대로 나갔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고르는 절반 정도의 책은 일반적인 조선일보 독자들이 아주 불편해하거나 싫어할 내용들이다. 그리고 많은 진보 쪽 독자들도 싫어할 내용이다.

그런 책을 준비할 때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긴장도 된다. 그리고 그냥 평이한 걸로 갈까 하는 꾀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마나한 얘기로 떼우면서 세상을 살지는 않았다. 크든 작은, 지면이 주어지면 내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얘기를 최선의 노력을 다 해서 만들어낸다. 그렇게 살아왔다.

몇 년 전, 하도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국방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자격이 되고, 추천해줄 장군들도 있었다. 전쟁사와 특히 해전 중심으로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 다닐까,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집에서 멀지 않아서 갈까 싶었는데.. 된장, 거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논산으로 이사간댄다.

인연이 아닌가벼..

그래도 서평을 쓸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은, 국방대학원이 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어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변화 때문에..

만약 지금 대학원 다니고 있으면, 애 보다 잠깐씩 나가서 수업 받고 오는 것 외에 뭘 더 할 수 있겠나?

인생이란 그렇게 알기 어려운 복잡한 우연들이 겹치면서 만들어지는 작은 소품 같은 것이다.

아내는 나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이 살았겠나? 이런 말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아내는 두 아이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다. 그리고 지금의 삶에 대해서 가끔은 감사하는 것 같다.

아내는 딱 15년만 더 일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마 그 정도는 어찌어찌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더 킹>에 감찰부 여검사가 나온다. 딱 아내 캐릭터다. 어마무시, 살벌 맥시멈,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그리고 남자들 특히 '개저씨' 스타일이 그냥 얼굴만 보고도 무서워한다. 본능적으로, 개저씨들도 누가 무서운지는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불이익을 많이 당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지난 일이다.

내가 국방대학원에 가지 않았고, 아내가 그래도 좀 편안하게 지내기 때문에 책을 좀 읽고, 서평이라도 쓸만한 여유가 생겼다. 소소하지만 매우 작은 우연들이 모여서,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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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터뷰 2시간 넘게 했더니, 피곤이 영 가시지 않는다. 끝나고 조금 쉬어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바로 애들 데리러 가서 다시 시달리고. 이제 인터뷰가 두개 남았나 했더니, 하나 더 남았다.

유명해지기 전의 일이다. 그 시절에는 여성동아 등 여성지, 패션지, 그리고 10대들 보는 쥬니어 패션지, 이런데 인터뷰를 많이 했다. 내 기사도 그런 데 주로 나왔고. 거기다 샘터나 그 비슷하게 생긴 잡지들에 주로.

생활 경제에 관한 작은 얘기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잡지들에서. 화장품 관련된 책을 준비하다가 '88만원 세대' 준비에 치어서 결국 화장품 얘기는 쓰지 못했다. 조향사와 관련된 얘기도 (조향사와 관련된 얘기는 결국 이번에 농업 경제학에서 일부 다루기로. 알고나면 진짜 음식에 대한 심미적 기준이 바뀔 수도.)

그 당시 잡지는 주로 가판대에서 팔았다. 주위에서 '가판대 그랜드 슬램' 했다고 놀렸다. 레몬트리인가, 중앙일보에서 나오던 쥬니어 패션지 느낌의 잡지, 그런 데가 주로 내가 놀던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잡지에서 환경이나 농업, 식품, 이런 데 관심 있는 젊은 기자들이 엄청나게 밀어주고 도와준 거였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렇다. 하다못해 신동아 같은 데에서 내 얘기를 다뤄주고, 막 그랬다.

그 후로 정말 오랫만에, 직장 민주주의 주제 가지고 그랜드 슬램 한 번 할 것 같다. 한참 때에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동시에 인터뷰한 적은 없었다.

그냥 나는 이렇게 밑바닥에서, "이게 중요하다", 이렇게 움직이는 게 체질에 더 잘 맞는다. 사회과학은 이렇게 바닥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고.

오늘 행주산성 자료 정리하는 걸 시작으로, 이제 나는 다음 작업으로 이동한다. 약간의 인터뷰 남은 것과, 강연 정도만 남기고 다시 이동한다.

행군 간에.. 군가는 없다. 그냥 조용하게, 다음 목표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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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만년필로 줄 그으면서 보고, 중요한 개념들은 책 맨 앞 페이지에 노트한다. 전에는 따로 독서 노트를 만들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는 못 하고 바로 책에다. 근데 뭔가 잘 안 되는 시절에는.. 책이 있으면 만년필이 안 보이고, 만년필이 있으면 정작 책이 안 보이고. 이래저래 책 안 볼 핑계만 대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상태가 며칠이 가기도 한다. 정작 시간이 잠깐 났을 때.. 애 키우는 순간의 아픔이다.

요즘 그렇다. 만년필이 대체 어디 간 거지? 30분째 이 지랄하고 있다.. 책 보기 싫은겨, 아마도. 그걸 만년필이 안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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