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이다. 지옥의 방학. 

나간 줄 알았던 두 소년이 부엌에서 다투고 있었다. 첫째가 둘째한테 욕을 해서, 크게 혼을 냈다. 이거 참 바담 풍이다. 나도 욕 허벌나게 했었다. 첫째는 중학교 2학년, 한참 욕 많이 배울 나이다. 

상황을 보니까, 밥통에 밥이 딱 한 숫갈 남았고, 점심 어떻게 먹을 거냐고 둘째가 물어보는데, 큰 애가 자기 먹는 건 신경 끄라고, 이러고 있던 중이었다. 답 없는 건 둘 다 마찬가지다. 

급하게 햅반 데우고, 국 남은 거 데워주고. 반찬이 남은 게 별로 없어서, 김치를 꺼내줬는데. 이것들이 김치는 반찬으로 안 친다. 신 깍둑이, 완전 서자 취급이다. 영 반찬이 그래서, 후식으로 복숭아 하나씩 깍아줬다. 

어제 공주에 갔다왔는데, 두 시간짜리 수업을 연짱으로 했더니, 아직도 정신이 헤롱헤롱. 마이크도 상태가 안 좋고, 목소리도 잘 안 나왔고. 선생님들 연수 수업인데, 이래저래 수업이 별로였다, 내가 뭘 잘 못한 것인가, 이래저래 생각이 복잡했다. 비슷한 내용이 다른 데서는 열광적인 경우가 많았고, 얼마 전에 교장 자격 연수 때에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중학생들도 재밌게 들었던 얘기인데.. 최근에 내가 한 강연들을 돌아보면서, 세상이 바뀐 건데, 내가 아직 바뀌지 못한 건가, 아니면 정치적인 얘기를 빼고 가니까 재미가 덜한 건가,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인권 경영에 대한 책을 새로 읽으면서, 최근의 인권 경영에 대한 시스템을 머리 속에서 재구성하느라고 머리고 한층 복잡해져 있었다. 

첫째한테 욕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참 설명해주고, 밥 새로 하고 다시 자리에 앉으니.. 뭐 하다가 일어났는지 아무 생각이 없다. 

그 와중에 잡지에 연재하는 도서관 칼럼 최종본 검토해달라고 메일이 와 있어서 후다닥.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기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도 적지 않다. 

오후에는 둘째랑 간만에 반찬가게 가기로 했다. 근처에는 반찬 파는 데가 없다. 전에는 슈퍼에서 간단한 반찬 정도는 팔았는데, 슈퍼가 장사가 잘 안 되고, 매장 일부를 다시오 매장으로 바꾸었다. 차로 20분은 가야 시장에 있는 반찬가게에 갈 수가 있다. 그나마 시장에 골목으로 빠져 있는 반찬가게라서, 그 앞에 바로 차를 잠시 세울 수 있다. 생각해보니까 몇 달 전에 가고 간 적이 없다. 

방학 때는 아직 이래저래 힘들다. 그래도 둘째 한참 입원하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거지만, 그 대신 내가 하는 일들이 조금 더 많아졌다. 그리고 공부해야 할 것도..

인권 경영 같은 주제는 그냥 그런 거 있나보다 해도 되는 거였는데.. 10대들에게 인권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기업 상황을 알려주려다 보니까.. 그래도 최근 정보로는 업데이트 헤야, 부랴부랴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인권 경영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는 경제학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물론 나도 다 보는 건 아니지만.. 태평양 전쟁사 보면서 또 한 편으로는 인권 경영 찾아보는 게, 너무 가혹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막상 책은 한 번에 하나씩 쓰지만, 뒤에 쓸 책에 대한 기초 연구는 틈 날 때마다 하는 게, 오랫동안 가져온 일종의 루틴이다. 

가을부터는 좀 움직여볼까 했는데.. 여러가지 형편과 준비 상항이, 아직은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올 때까지는 주변을 좀 더 정돈하고, 밀린 일들도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닌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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