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세협상은, 겉으로 보면 경제 협상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군사 협상에 더욱 가깝다. 한국이 뭘 했다기 보다는, 미국이 결정을 내린 것에 가깝다. 윤석열과 했던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가 처음 한 얘기가 그 얘기였다.
결국은 중국과의 경제 갈등은 1차적인 문제고, 그 밑에는 바다에 대한 패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 그런 문제라고 본다. 한 때 미국이 해군도 강했고, 조선업도 강했다. 그 시절에는 유럽도 강했다. 그 시절이 끝났다.
몇 년 지났지만, 야마토함을 만들었던 쿠레 조선소에 갔던 적이 있었다. 그 일대가 전부 늙어가고 있었다. 주민 체육관이나 보육 시설 등은 정말로 너무 잘 되었다고 할 정도로 놀라웠지만, 실제로는 세금 낼 여력이 없는 노인들과 아주 약간의 어린이들만 있는 도시 같았다. 일본 해군을 떠받드는 것 같은 쿠레의 노화를 보면서 아주 복잡한 심정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도 일본은 조금은 버티고는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조선업은 정말로 뿌리까지 흔들려서 흔적도 보기 힘들다고 해야할까? 몇 년 전에 미국에 조선업 투자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아주 간략하게 했던 얘기가.. 다른 건 차지하고라도, 일단 용접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산업의 기반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항공모함을 비롯한 군함을 만들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수리 등 유지보수도 하기 힘들다. 반면에 중국은 조선업이 한참 급성장 중이다. 두 나라 사이의 해군력이 역전될 것이라는 것은, 굳이 수치를 보지 않아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몇 년 전에 여수 등 조선업이 한참 위기일 때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사양산업이 되었으니까, 적당히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나는 한 번 밀리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데, 세계적으로 두세 번 더 사이클이 올 것이기 때문에 버텨야 한다는 의견을 냈었다. 어쨌든 한국 조선은 그 시절 제일 큰 위기를 넘겼다.
이번 건은, 한국이 미국을 고른 게 아니라, 미국이 한국을 해군의 전략적 파트너로 고른 것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믿을 수 없는 상대에게, 그리고 능력이 딸리는 상대에게 군함을 맡기기는 어렵다. 대체적으로 트럼프가 후보 기간에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게 무슨 엄청난 비밀인 것은 아니고. 실제로 미국이 한국에게 원한 것은 조선업의 전략 파트너로의 약속과 투자고, 나머지는 모양 내기에 가까워 보인다. 농업이나 기타 분야까지 굳이 들어올 필요가 없었던 것은, 미국이 가장 원한 것은 해상 패권의 파트너로서의 한국의 선택, 그것도 매우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선택. 한국 정부는 그 선택을 내렸다. 사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내걸 것이 없기도 했고.
좋은 싫든, 한국은 중국과는 한 걸음 더 멀어지게 되었다. 경제적인 것으로 포장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군사 기반에 관한 것이다. 협상이라는 것은,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게 되어있다. 우리가 받은 것은 다른 산업 분야에 대한 적당한 타협이고, 내준 것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의 손실이다. 물론 장기적 측면에서 그렇다.
아주 큰 눈으로 보면.. 이번 정부의 관세 협상은, 한국이 처음으로 선진국이 되었다는 선언과 비슷해보인다. 70~80년대, 한국은 세계의 공장처럼 돌아갔었다. 그냥 하청공장 같은 것이었다. 그 사이에 여러 산업이 약진을 하였는데, 성과가 분명히 존재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세계 전체의 흐름에 주요한 한 축으로 한국이 기능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21세기 중반의 세계 질서의 모습을 결정지을 한 축이 이렇게 결정되었다. 19세기 이후로, 세계의 향방은 바다가 가장 큰 요소였다.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한국은 좋든, 싫든, 그 핵심적 요소가 되었다. 우리가 의식을 하든 못하든, 우리에게 처음으로 바다의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게 이번 미국과의 관세협상의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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