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출간 일정을 뒤늦게 잡았다. 뒤로 미룰 걸 좀 미루고, 순서도 재배치했다. 

1. 제일 먼저 나올 책은 출산율과 노동 시장의 변화에 대한 책이다. 저출산과 저출생을 구분한다면, 저출생에 관한 얘기일 것이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에서 연결되는 책이다. 올해 나올 책 중에서는 가장 이론이 많이 나오고, 가장 혁신적인 책이다. 제목이 마땅치가 않다. 제일 땡기는 제목은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 이건데, 좀 길다. 

2. 고심 끝에 도서관 경제학을 상반기에 먼저 하고, 젠더 경제학은 다시 내년으로 넘겼다. 개인 일정도 좀 그렇고, 저출산 책에서 연결되는 내용들이 좀 있어서, 아예 거리를 확 떼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도서관 책도 몇 년째 밀리고 밀렸는데, 오세훈을 비롯한 보수 아저씨들이 도서관 닫느라고 한참 열내고 있을 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원래는 ‘책에 대한 책’ 정도의 가제로 책에 대한 가벼운 글들을 모아서 에세이집을 하나 할 생각이 있었다. 그걸 없애고, 책에 대한 얘기들도 다 도서관 책에 몰아넣기로 했다. 중간에 여유가 되면 펜실베니아에 갔다 올 생각은 있는데, 그럴 형편이 될지는 모르겠다. 맨 처음 구상을 할 때, 책 앞머리는 펜실베니아에서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사이에 내 형편이 쪼그라 붙어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3. 이것저것 다 내년으로 넘기고 여름부터는 죽음과 늙어감에 대한 얘기들을 모아서 간만에 에세이 한 권 내기로 하였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제 한참 치매가 진행 중인 어머니 모시고 살아가는 내 애기이기도 하지만, 늙어가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내 생각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원래는 작년에 해보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귀찮아서 그냥 시간만 끌고 있던 주제다. 정태인 선배의 죽음이 꽤 영향을 미쳤다. “형도 이제 환갑이네요.” 쓰러지기 직전에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다. 그때는 나나 정태인 선배나, 그렇게 인생이 덧없이 지나갈 줄 몰랐을 때였다. 

장례식에 우리 집 어린이들 다 데리고 갔었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집에서 장례 치룬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장례식이 아주 익숙했다. 삶이란 그렇게 덧없는 것. 이재영 죽을 때는 벌써 10년 전이다. 안 되었다는 슬픔만 많았지, 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은 많이 안 들었다. 환갑 넘자마자 정태인 선배 쓰러지면서, 나도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살았는데, 나라고 무슨 고래 힘줄처럼 강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일부러 한 건 아닌데, 살다보니까 자살에 대한 연구도 꽤 하게 되었고,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자문을 벌써 3년째 하는 중이다. 얼마 전에 자살특위 위원장을 해달라고 해서, 나에게는 과분하다고 물린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르다고 하지만, 안락사에 대한 얘기도 좀 하고 싶다. 죽을 날 기다리면서 그냥 앓다고 죽는 건 좀 그렇다. 지금도 연명치료에 대한 서약이 제도로 있다. 이거 신청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안 받아도 된다. 남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어렵지만, 나에 대한 얘기들은 할 수 있고, 이제 나도 그런 나이가 된 것 같다. 

좌파 에세이 쓰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많이 털어낸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런 얘기 없이 좀 어정쩡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좌파 에세이에서 그런 사회적 짐을 많이 덜었다. 이제는 좀 편안하게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얘기인가, 아닌가, 이제 그런 생각만 하기로 했다. 내가 편안해야 읽는 사람도 편안할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편안해야 더 어려운 얘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박찬일의 노포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게 많다. 잠깐 성공할 수 있고, 잠시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오래 가서 50년 넘게 망하지 않은 가게는 그렇게 화려한 데는 아니다. 박찬일의 예전 책도 좀 봤는데, 확실히 노포 얘기를 다루면서 박찬일의 스타일도 좀 변했다. 

내가 다루는 애기는 쉬운 얘기도 아니고, 그렇게 인기 있을 얘기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얘기를 편안하게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아니다. 트렌드와 한 발 떨어져서 가는 게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별로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변하는 사람은 나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박찬일 책을 읽기 이전에 나는 그런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올해 쓸 책들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좀 편안해질 수 있는 데 신경을 좀 쓰려고 한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 잘 못 했다. 나도 좀 배운 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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